제타건담 극장판 관람기 – 준비과정

2005년 5월 28일.
내 멋대로 역사적인 <기동전사 제타건담> 극장판, A New Translation “별을 쫓는 자”(도대체 어디까지가 제목인 건지…)가 개봉하는 날.
개봉하면 극장에서 보고 말겠노라고 다짐을 한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작 이 작품을 어느날에 가서 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일단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개봉기간은 약 2주 가량. 그러니까 주말에 시간을 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5월28일 개봉날 아니면 6월4일, 그 이후에는 이 작품이 개봉관에 남아있을지가 솔직히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니 제타건담 극장판 정도 되는 작품이 설마 2주만에 극장에서 내려가겠느냐 싶겠지만,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른 화제작들에 비해 개봉하는 개봉관 수도 적고, 개봉하는 극장들도 우리나라 개념으로 따져서 메이저 개봉관이라기엔 좀 하자가 있어뵈는 극장들이 대다수였기에, (객석수가 200석을 넘는 극장이 거의 없었다) 배급사 측에서도 <제타건담 극장판>으로 흥행에서 떼돈 벌려는 것보다는 이 작품을 빌미로 어떻게 프라모델이나 좀더 팔고, 기타 수익이나 좀 내보려는게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업무특성상 월말과 월초에 바쁘기 때문에, 만약 6월10일 이후에도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일부러 바쁜 주말에 일본에 다녀오는 것보다 바쁜 일 다 마치고 홀가분하게 휴가라도 하루 붙여서 일본에 다녀오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도대체 그러한 확신이 들지 않는 통에 전전긍긍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연휴로 진작에 일본행 비행기가 매진돼버린 6월4일이 아닌 5월28일, 대망의 개봉일로 일본 방문일정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개봉일로 관람일정을 잡고나자 이번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당연히 “흥행이 폭발해서 표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고민이었다. (이미 예매표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는 소식을 접한 후였음) 하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예매표와 현장판매표는 구분되어있고, 당일 아침에 극장에 가면 늦은 시각 상영표는 거의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고는 표를 구하지 못하는 최악의 불상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가끔 생각났지만)

그렇다면 이젠 어느 극장에서 볼 지를 결정해야했는데… 일단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므로 (일본은 처음이다) 동경 관광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영관 정보를 보면서 제법 번화가에 있는 극장을 세 군데 골랐다. 이케부쿠로에 있는 시네리브르 이케부쿠로, 신주꾸에 있는 신주꾸 조이시네마 3관, 시부야에 있는 시부야 시네팔레스 이렇게 세 극장이었다. 세 극장의 약도도 뽑아놓고 교통편도 완전히 숙지해놓은 상태에서, “무대인사” 예정극장에 시네리브르와 조이시네마가 포함된 것을 보고 뜬금없이 나의 선견지명에 감탄까지 하고 있었다.

출발 일주일 전, 세 극장에서 <제타건담 극장판>의 상영시간표가 발표되었다. 시네리브르의 첫회 상영은 9시였지만 이 회는 토미노 감독 이하 세 명의 주연성우들이 무대인사를 할 예정이었으므로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었다. (공식시간표에서도 빠지고 특별상영회로 편성되어있었다) 더군다나 예매도 하지 않고 당일날 극장에서 표를 구입할 내 입장에서는 무대인사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고민고민하다가 시부야의 시네팔레스에서 밤9시 상영회를 보기로 결정했다.

시네팔레스 9시 상영을 결정한 첫번째 이유는, 일본 극장들 대부분이 8시반 이후의 심야상영은 1,300엔 정도의 할인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매권을 샀으면 포스터도 하나 받았을 것이고 역시 1,300엔 정도로 티켓을 구입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정이 아니다보니 그냥 1,800엔짜리 현장판매티켓을 사야할 형편이었고, 환율 적용시켜보면 이건 우리나라 극장표값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것 아닌가.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번째 이유는 바로… 딸리는 일본어 실력 탓이었다. 일본어가 완전히 젬병은 아니지만 실전회화 경력 전무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영어 독해는 잘해도 리스닝은 잘 안되는 것처럼 일본어 책은 술술(까지는 아니지만) 읽어도 말하는 건 도통 알아듣기 힘든 대한민국 입시교육의 피해자인 관계로, 극장에서 “티켓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는 말이다. 물론, 표 파는 곳에 가서 “제타간다무”라고 하면 대충 알아들을 것이고, 시간도 몇시 몇분 정도를 못알아듣고 말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기에 대충은 구매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항상 돌발상황이 있게 마련. 혹여 “매진”이라거나 기타 예상 밖의 상황을 매표원이 나에게 설명하려고 들 경우 이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영 자신이 없었다. (기우였을지도…)
그런데 시네팔레스에서는 하루에 딱 한 번, 9시 심야상영만 하고 있었다. (개봉일은 특별히 아침 9시 상영도 하긴 했지만) 매표구에 가서 “제타간다무”를 찾았을 때 “몇시 상영 것을 볼 거냐” “그 회는 다 팔렸는데 다음 회를 볼 거냐” 식의 실갱이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겠다. 물론 한 번뿐인 상영이 진작에 매진되어버렸을 경우는 그냥 매표구 앞에서 쓸쓸히 돌아서야만 하는 팔자가 되어버리지만, 설마 아침 11시~12시부터 밤9시 상영표가 매진되겠으며, 알아본 바로는 시네팔레스에서는 인터넷 예매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현장판매표가 상당히 확보되어있을 거라는) 상식적으로 사람들도 하루종일 상영하는 곳을 선호하지 달랑 하루에 한번 상영하는 곳을 찾아오지는 않을 거다…라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한 끝에, 시네팔레스 밤 9시 상영분을 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관람기…에 앞서서 조금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는데, 원래는 준비과정부터 짧게 쓰고 극장 주변 이야기 쓰고 본격적인 관람기 쓰고 팜플렛과 OST CD 감상기 쓰고 그러려던 것이 본의아니게 이렇게 된 걸 보면 일본여행 준비기간에도 꽤 신경을 많이 썼던 모양이다. 다음 글에서 바로 극장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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