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뮤 비단 – 그만의 전쟁

건담 시리즈를 통해 건담을 탑승한 파일럿 중, 누가 최강의 파일럿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주장이 다르겠지만 올드건담팬들은 아무로 레이와 카미유 비단 쪽으로 기울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카미유 비단 쪽이다. 아무로 레이는 초반에는 건담의 성능 덕을 많이 보았고, 후반에는 뉴타입으로 거의 유일하게 각성된 상태였다는 프리미엄이 있었다. (전장에 투입된 뉴타입 중에 그를 제외하면 라라아와 샤리아브르 밖에 없다. 샤아는 아직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렇지만 카미유 비단은 다르다. 전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던 초반에 탄 기체는 다른 모빌슈트에 비해서 그다지 성능이 뛰어나지못한 건담 MK-II였다. 카미유가 간이 싸이코뮤라는 바이오센서가 탑재된 Z건담을 타고 나타났을 때는 라라아나 샤아와는 격이 다른 뉴타입 펩티머스 시로코, 하만 칸이 싸이코뮤가 탑재된 모빌슈트 지오, 큐베레이를 타고 그에게 맞서고 있었다. (물론 최강의 뉴타입으로 라라아를 꼽는 시각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라라아와 아무로간의 전투보다 시로코-하만과 카미유의 전투가 훨씬 살벌하지 않은가) 아무로와는 상대해온 적들의 레벨 차이가 난다, 난 이렇게 단언하고 싶다.

어쨌든 건담시리즈의 양대 기둥인 아무로와 카미유의 공통점은 건담 개발에 참여한 사람의 자녀이면서 (카미유의 경우에는 굳이 그런 설정이 필요없을 수도 있었는데, 거의 관습적인 설정이 아닌가 싶다) 우연찮게 건담에 탑승하게 되는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아무로는 싸이드 7을 기습한 자쿠로부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건담에 탔다고 할 수 있지만, 카미유는 그린노아에 침입한 샤아의 릭 디아스에 동조하기 위해 건담을 탈취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동조의 이유라는 것도 이름에 대한 컴플렉스를 건드린 티탄즈의 중위(제리드)와 자신을 거칠게 취조한 헌병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라는 사소한 것이었다. 시작부터 뭔가 이상한 성격의 주인공이 탄생한 것이다.

그 후에는? 처음의 그 삐딱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우고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작전이었던 건담 탈취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주었으면서도 그는 에우고에 가담하기를 거부한다. 뉴타입의 능력을 보여준 그에게 에우고 지휘관들이 관심을 갖자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부정한다. 한마디로 그는 신경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재능은 있지만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의 한가운데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 그가 탈취한 건담 MK-II라는 모빌슈트의 전략적 중요성이었다. 도로 건담을 탈취하기 위해 티탄즈는 카미유의 어머니를 인질로 내세웠고, 카미유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는 제리드의 손에 살해당한다. 연방군인이었던 카미유의 아버지는 잠시 에우고로 도망쳐나오지만 결국 릭 디아스를 탈취해서 다시 연방군으로 되돌아가려다가 대함 포격전 와중에 죽었다. 참으로 복잡하게 꼬인 상황 한가운데에서 에우고는 건담 3기를 모두 탈취하는데 성공했고, 카미유 비단이라는 걸출한 파일럿을 손에 넣었지만 카미유의 부모를 희생하고 만 셈이었다.

부모를 양쪽의 손에 잃은 상태에서 카미유는 에우고도 티탄즈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외쳤다. 비록 몸은 이미 에우고에 있었고, 에마나 레코아, 크와트로(샤아), 아스트나지 등과도 마음이 통한 상태였다고 하지만 그는 레코아의 지구 침투를 위해서,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 제리드와 싸웠을 뿐 정식으로 에우고의 군인이 되는 것을 계속 거부했다. 자신이 뉴타입의 실험대가 되는 것을 거부했고, 스페이스노이드의 참극을 보고서도 그 뜻은 변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에우고에 가담한 뒤에도 자신을 뉴타입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발한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 부정이었다. 워낙이 삐딱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런 카미유를 그나마 에우고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지탱하도록 이끌어주었던 것은 끊임없는 티탄즈에 대한 적대감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를 잃었고, 친구인 화의 부모도 티탄즈에게 억류당했고, 레코아를 뺏아갔고, 사랑했던 강화인간 포우를 잃었다는 사실이 그가 티탄즈와 싸우는데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다른 상대에겐 카미유가 위협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뉴타입인 하만 칸과 전투 도중 마음이 통한 뒤 그는 하만을 죽일 수 없다고 고백하는데, 같은 뉴타입이면서도 하만은 오히려 카미유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카미유라는 인간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라는 것에 제대로 적응이 되어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사라의 죽음과 레코아의 배신이 없었다면 그는 시로코마저 죽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에우고와 티탄즈, 거기에 액시즈까지 가담한 로봇물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삼국지 구도. 그 숨가쁜 전쟁과 인간들의 군상 속에서도 카미유는 줄곧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전투에 참여했다. 티탄즈의 싸이드 2 독가스 공격을 막기 위한 작전 도중 자신과 마음이 통한 로자미아를 쫓아 대열을 이탈해 콜로니 안으로 들어갔고, 지구권으로 낙하한 백식을 구하기 위해 단독으로 지구권으로 돌아가는 등의 파격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람이 이름없이 숨져가는 전쟁 속에서 카미유 비단은 어떤 면에서 지나치게 순수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서 죽어간 사람들로 인해 고뇌하고, 그 분노와 집착을 포연 속에서 폭발시킴으로써 존재해왔으나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그의 내면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말았다. 전쟁이 종료된 시점에서 식물인간으로 남겨진 카미유는 어쩌면 전쟁의 비극을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