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이야기] 컴퓨터를 뚜적거리기 시작하다

컴퓨터로 처음 한 일

나의 첫번째 컴퓨터에는 그 유명한 “테트리스”가 없었다. “헥사”만 있었다. 용산아저씨가 ‘이것두 있어여…’ 하면서 실행해서 보여줬으니 분명 알고 있었다. 컴퓨터를 켠 나는 일단 “헥사”부터 찾았다. 유일하게 아는 명령어 dir을 쳐봤다. HEXA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래서 HEXA를 쳐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ㅠ.ㅠ
아까 말한 책을 뒤졌다. 한참을 읽고나서 드디어 나는 “파일”과 “디렉토리”에 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HEXA는 디렉토리구나! 나는 cd HEXA(대문자로 바꿔서 쳤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고)를 쳐서 HEXA 디렉토리로 옮겨갔다. dir 해보니 파일이 세개 있었는데 전부 이름은 HEXA고 확장자만 달랐다. (물론 그때는 확장자가 뭔지 몰랐고 EXE가 실행파일이라는 것도 몰랐다) 다시 한번 막막해졌지만 나는 HEXA를 쳤고, 당연히 HEXA는 실행이 되었다. 내가 컴퓨터를 켜서 첫번째로 해낸 일은, “HEXA를 실행한 것이었다!!!”

CAD로 건담을 그리기 시작하다

어찌어찌해서 나는 EXE가 뭔지도 알고, 파일을 COPY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디스켓 포맷을 아는데에는 시일이 좀 오래걸렸다. 요즘은 디스켓이 포맷이 되서 팔리는데, 그땐 디스켓을 사면 반드시 포맷을 해야했으니까… 새 디스켓을 꺼내서 파일을 복사할 때마다 카피가 안되서 열받은 적 많았다. 나한테 불량품만 팔아버렸나 싶어서) 드디어 CAD를 실행했다. (그 당시 컴퓨터를 하면서 내가 경험한 철칙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실행해서 종료할 줄만 알면 다 배운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건담을 그리자!! CAD는 쥐뿔도 모르는 녀석이 건담부터 그리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그것도 3D로… 나는 도서관에서 CAD 관련 도서를 찾았고, 지금 생각하면 중급 이상 수준일 AUTO CAD 3D REFERENCE 라는 책을 빌렸다. (그 책만 그후 서너번 더 빌렸다) 그것도 앞 부분의 기초설명은 치워버리고, 뒷장으로 팍팍 넘겨서 3D MODELING 기초부터 펼쳐놓고 건담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몰라서 겁이 없었다.

무식하게 건담을 그리다

CAD는 좌표로 그려진다, 는 것을 하루 정도 씨름한 끝에 나는 알아냈다. 그리고 단순히 선으로만 그리면 모델링이 아니고, 3DFACE라는 명령으로 면을 형성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모눈종이에 건담을 정면도 측면도 배면도를 그려서, 그 좌표를 찍어서 일일이 입력하는 방법으로 건담을 그리자!!!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부를 그린 다음 렌더링을 해보면 (자체 렌더링 기능을 이용해서) 4점 좌표를 이용해서 그린 3D FACE가 평면이 아니고 구부러져있기가 일쑤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3점 좌표는 반드시 평면이지만 4면좌표는 이게 평면이 아닐 수도 있는게 아닌가. 나는 책꽂이에서 썩어가고 있던 “해법수학”을 꺼냈다. 고3때도 잘꺼내보지 않던 해법수학에서 “평면좌표의 방정식”을 찾아 4점좌표의 평면을 계산해내고 그대로 입력하는 방법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건담을 그리고 난 후 얻은 것

그렇게 건담을 완성하는데 꼬박 나흘 걸렸다. 그리고 그 나흘 사이에 내 캐드 실력은 상당히 늘어있었다. 뭐 훨씬 뒤의 일이긴 하지만, 바로 얼마 전 아래한글로 인쇄를 못해서 고생을 시켰던 손 모군이 나에게 “캐드 속도는 과 내에서 제일 빠르다”고 인정해줄 정도까지 발전하는 초석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나흘간의 악전고투로 요령만 잔뜩 늘었다는 말이 되겠다. (지금은 또 내가 손을 놓은지 오래 돼서 그 친구보다 느리겠지만)

아래한글 1.52에 대한 추억

아래한글 얘기로 돌아가볼까. 분명 우리 집에서 컴퓨터를 산 이유는 “큰아들의 논문” 때문이었지 “작은아들의 건담”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 컴퓨터에서 젤루 필요한 기능은 워드의 출력이 되겠다. 그런데 우리가 산 데스크젯 프린터는 당시 삼성-휴렛패커드(지금은 따로 놀지…?)에서 나온 신품이었는데, 데스크젯 전용 워드프로세서라며 “사임당”이 끼워팔기식으로 딸려와있었다. 어쩌다보니 우리 형님은 아래한글보다 사임당을 먼저 배웠고 (당시 도스운영체계에서는 파일이름에 띄어쓰기가 안되는데, 우리형님은 띄어쓰기를 하는 바람에 파일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친 적도 있었다.) 사임당은 “전용 워드프로세서”답게 출력이 잘됐는데, 나중에 “대세에 밀려서” 아래한글을 쓰려다보니 이넘시키가 인쇄가 잘 안되는 거다. 매뉴얼을 막 뒤져보니 데스크젯에서 아래한글을 인쇄하려면 djet이란 드라이브 프로그램을 따로 띄워야되는데 다른 프로그램에서 인쇄하려면 또 이넘을 죽여야되고… 졸라 골치아팠다. 친구넘이 아래한글 레이저버전을 깔아줬는데, 이거는 뭐 F10키를 누르면 드라이버를 안띄워도 되기는 하는데 귀찮기는 여전히 귀찮았다. 야… 아래한글에서 데스크젯용 드라이버가 나올 때까지 이 환장할 노릇은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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