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태극기 휘날리며] 늘어진 필름을 휘날리며

2004년 2월 17일

<실미도>가 대박행진을 벌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오늘 이시각 현재 아직 천만관중은 넘지 않았다) 꿋꿋하게 <실미도>를 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뭐 늘 그렇듯 "대박난 영화"라니까 쭐레쭐레 보러가는 짓을 하기 싫어서도 그렇고, 어렸을 때 <배달의 기수>는 질릴만큼 봤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기도 했다. 주말만 되면 KBS에서 어김없이 틀어주던 <배달의 기수>는 지금보면 유치하고 조잡할지 몰라도 전쟁장면 촬영이나 시대고증(전쟁 끝난지 20년 정도밖에 안됐으니 고증 얼마나 잘했겠나) 같은 측면에서 당시 수준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물량으로나 기술발전으로나 그때보다 더 나은 화면빨을 뽑아낼 수 있겠으나 기대심리라는 측면에서는 별 차이 없을 거고, 기본주제로 가도 <배달의 기수>나 <실미도>나 별 차이가 있겠냐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배달의 기수>로 충분하다, 굳이 <실미도>까지 볼 필요가 없다. 이런 결론을 내렸던 거다.

원래는 <태극기 휘날리며>도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고 당연히 안볼 생각이었다. 동호회 사람들이 이거 보자고들만 하지 않았으면 정말 안봤겠지만… 어쨌거나 봐버렸다. 사실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어찌나 보고 온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던지 심사가 뒤틀려있던 부분 솔직하게 인정한다. 평생 극장에서 영화보며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 보면서 펑펑 울었다느니, 민족의 비극과 형제의 아픔이 감동의 물결이 되어 밀려온다느니… 감상평만 읽어보면 이 영화 보고 별 감흥없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고 감정도 없는 개백정 취급받겠더라.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신파 수준의 영화밖에 될 수 없는데 뭐 이리들 오바질이야. 이거 다들 돈먹고 글쓰는 알바들 아냐. 이런 생각조차 들더라는 말이다.

아 뭐 요건 인정한다. <쉬리> 때도 그랬지만 강제규 감독이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풀어가는 능력은 확실히 있다. 비록 그 드라마틱이 조금은 신파조라고 해도, 어차피 대중영화라는 게 조금은 관객들의 상태도 고려해줘야 되니까, 그런 것까는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신파영화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관객보다 먼저 – 그것도 펑펑 – 울어버리는 배우들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표현하면 억지눈물을 짜낸다는 말인데…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이런 점을 유감없이 보여주지만 그렇게 배우들이 펑펑 울어야지 비로소 눈물 조금 흘릴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감정 메마른 관객들 수준도 생각해줘야하지 않겠나, 이 말이다) 그리고 – 돈이 더 많이 들어간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 <쉬리> 때와 비교해서 여러모로 나아진 모습도 많이 보이는 점도 인정한다. (<쉬리>는 솔직히 초보 티를 많이 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쉬리>에서 별로 나아지지 못한 부분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우선 여전히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다는 것. <쉬리>도 그랬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의 러닝타임은 정말 이해가 안갈 정도로 길어진다. 처음에서 중반 정도까지는 대략 흘러간다. 인물들 대사도 살아있고 심리도 살아있고 (공형진이 큰 몫 한다) 고립된 상황이라는 설정에서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적절하게 연기해준다. 그런데 중반 넘어가고 나면 반복되는 전쟁과 죽어넘어지는 사람들이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다. 참 사람 죽는 모습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은 감독 심정은 알겠는데 좁은 의자에 엉덩짝 붙이고 앉아있는 관객들 생각도 좀 해줘야할 것 아닌가. 전체 러닝타임에서 한 20분 정도만 덜어냈어도 깔끔했을 것 같은데, 질질 늘여놨다. 아무리 봐도 그 늘어난 분량의 주범은 불필요할 정도로 자주 터져나오는 전투장면과 폭파장면이다. 돈 들여서 찍은 장면 아까운 건 알겠지만 훌륭한 감독이 되려면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되는 법이다. (강제규는 이미 전작 <쉬리>에서도 불필요하게 액션장면을 길게 넣었다가 중간부분만 훌러덩 빼서 앞뒤 연결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전력도 있다) 전투장면을 겹겹이 넣어 그 포화 속에서 미쳐버리는 장동건의 모습을 형상화하려는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전투장면이 길어질수록 그 포화 속을 뚫고 다니면서도 씩씩하게 살아남는 장동건의 모습에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해봤나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오신 우리 어머니의 한 말씀. "장동건이 람보여~") 하여튼 그 겹겹이 나오는 전쟁장면 덕분에 전쟁을 통해 조금씩 미쳐가는 장동건의 광기는 참 설명이 잘 됐는데, 그 형을 보며 복잡미묘하게 변해가는 원빈의 심리묘사는 전혀 살아나질 못했단 말이다. (뭐, 그것은 전적으로 원빈의 "얼마면 돼"연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라.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하나의 명제에 집착해서 조금씩 미쳐가는 장동건의 모습은 장동건이 연기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관객들 정신 쏙 빼놓는 엄청난 포화+음향+흔들리는 카메라 등으로 얼마든지 형상화해줄 수 있다. 그 포화 속을 뚫고 으아아 뛰어댕기는 장동건한테는 감정이입이 잘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멀거니 쳐다만 보고있는 원빈을 위해서는 감독이 아무런 지원사격도 해주지 않고 그저 "얼마면 돼"만 요구하고 있으니, 관객들이 보기에 "아니 저 또라이는 형이 살려준다는데 왜 저래? 같이 죽자는 거여?"식으로밖에 반응 못하지 않겠나. 이건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장동건을 영웅 만드는데 급급해 원빈의 심리변화에 시간을 할애해주지 못한 연출진의 문제다. 그래놨으니 나중에 형이 쓴 편지 한 장 읽어보고 도로 전장으로 뛰어가는 원빈을 볼 때도 쟤가 형을 죽이러가는 건지 살리러가는 건지조차 감이 안오지.

참, 막판에 장동건과 원빈이 엉겨붙었다가 서로를 알아채는 장면은 <쉬리> 마지막 장면의 발전형이 아닌가 의심스럽더라. 양쪽으로 갈라진 연인과 형제… 원빈 손에 장동건이 죽었으면 <쉬리 2>로서 손색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런 짓은 안하더군. 영화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삐삐 메시지 들려주고 제주도에서 음악 들려주고 하던 질질 늘이기 버릇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했다. <쉬리> 때도 그랬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영화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돈은 잔뜩 바른 탓인가 제법 세련되게 보여지는 영화, 그게 <태극기 휘날리며>다. <쉬리>때부터 여전한 강제규의 ‘헐리웃도 아니고 한국영화도 아닌 어정쩡함’이 그의 장점이 될지 약점이 될지는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겠다.

PS. 제작진 왈 이 영화는 이념대립 같은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영화라고 했고,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그렇게 보이기에 남북분단의 현실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쉬리>에 이어 이번에도 남북분단상황을 소재로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해 지나가듯 한 마디만 덧붙인다. <쉬리>에서도 그랬지만 강제규는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에 대해서 깊게 고찰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이 두 편의 영화만 놓고 보면 그에게 있어서 남북분단이란, 영화화하기 썩 좋은 소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분단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같은 소재에서 출발시켜 히트시키면서도 두 편 모두 이념대립이라거나 사상논쟁이라거나 하는 문제에서 완벽하게 발을 빼고 있다는 점이 의심스럽다는 거다. 그게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것이건, 별로 아는게 없어서 일부러 그런 것이건, 어느 쪽이건 문제는 분명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