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일기 스물여덟번째

[봉대리의 일기]

12/30 (목) 맑다

오늘은 꼭 토요일에 출근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일하려는 사람이 없고… 다들 넋놓고 창밖만 바라보거나…
인터넷으로 이상한 자료나 디비거나…
물론 우리 팀은 요상시런 종무식 준비한답시고 요술풍선 비비꼬는
연습에 한창이었지만… 업무를 한다는 느낌은 별루 없어서…
피부장의 특명은 ‘요술풍선으로 회사 로고 만들기’와 ‘요술풍선으로
사장 얼굴 만들기’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 로고는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데… 얼굴을
어떻게 만들어…
황대리와 나란히 앉아서 그 문제로 길게 얘기를 나눠야 했다.
개를 만들어서 사장이라구 우기면 어떨까? 아니 차라리 악어는 어때?
그것보단 황소개구리가 낫지 않을까? (이 말을 들은 황대리가 지나친
과민반응을 보여 얼른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끼리는 어떨까?
역시 말이나 소가 낫지 않을까?
하여튼 별 사람같지 않은 건 다 끄집어내서 얘기를 나눠봤는데…
별 무소득이었다.
다른 모양들도 어렵게 구한 교본을 보면서 겨우겨우 만드는
수준인데… 창작품을 만들어내라니… 어렵다구…
그래도 손재주가 좋은 지화자씨가 이런 저런 모양을 뒤섞어서 얼추
사장이랑 비슷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오오 지화자씨~! 바로 그거거덩!!
피부장이 은행에서 처리해야될 일이 있다고 일찌거니 퇴근하는 바람에
보여주지 못한게 한이 되네.
내일 사장이 좋아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이 안들지만…
종무식 짱짱하게 치러보지 뭐…

[피 부장의 일기]

12/30 (목) 맑다고 하자

아침에 나오는데 마누라쟁이가 처리해야될 일을 한보따리 안겨줬다.
뭐 Y2K 땜시 은행이 어찌 될지 모르니께 대출 받았던 거랑 계좌랑
잘 알아봐야 된다나. 하여튼 통장을 뭉텡이로 하나 안겨주더군.
그런데 왜 고삐리 딸년은 Y2K라는 말을 듣고 울면서 펄쩍펄쩍 뛰지?
확실히 Y2K는 무서운 건가 보다.
사장한테 종무식 이벤트로 요술풍선을 테마로 삼았슴다… 보고했더니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어이 피부장, 그걸로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건가?
아우 그럼요.(솔직히 잘 모르지만 내가 만드나. 아그들 족치면 되는
거지.)
그럼말야, 울 회사 로고하고… 고 밑에 내 얼굴을 만들어서 달면
어때?
웃기구 있네 씨방새 같은 넘.
…이라고 말하면 누가 내 밥줄 책임져주남?
아우 지당하신 말씀임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돌아나오면서 조까라… 씹어주긴 했지만, 까라면 까야지.
사무실에 돌아와서 아그들 모아놓고 아따 형님이 이런단 말이다…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가끔 사장이나 부사장한테 지시 받을 때면 조직폭력배 사회에서
명령하달 받는 기분이 들어서)
짜식들이 해보겠다며 열심히 하는군.
마누라쟁이가 맡긴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하기는 했는데…
글쎄 사장 얼굴이 제대로 나올까 모르겠네…
하긴 뭐 닮기는 했으니까 그 모양으로 만들면 되겠지만…
정말 그 모양으로 만들어버리면 종무식이고 뭐고 난리가 날텐데…

SIDH’s Comment :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연말이 되면
<새해에 이루고 싶은 소망 열가지>를 적어서 제출(?)하고
그걸 종무식날 발표하는 행사를 갖곤 했다.

처음 회사가 조그마할 때는
전 직원이 다 발표했는데
내가 입사할 무렵엔 회사가 너무 커져서
각 부서 대표 몇몇만 나와서 종무식날 발표하는
그런 수준으로 정리가 된 상태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해 종무식에선 내가 대표로 뽑혔다.
(그후로 해마다 나를 대표로 뽑으려는 음모가 창궐했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갔음)

항상 말하지만 나는 사장 있고 이사 있고 그런다고
쫄거나 눈치 슬슬 살피는 사람이 아니다.
단상에 올라가서 인사 꾸벅 하고 새해에 이루고싶은 열가지 소망을 주절주절 읊어댔는데
전 직원의 절반…은 좀 과장이고, 한 1/3 정도는 다 쓰러져버렸다.
마이크체질인가봐.
워낙 즉흥적으로 떠드는 스타일이라 그때 뭐라고 했는지는 거의 기억 안나는데
몇몇 생각나는 이야기도 그렇게 웃긴건 없었는데… 하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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