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일기 열한번째

[봉대리의 일기]

12/09 (목) 흐렸다 갬

갑자기 황 대리가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점심시간에 공식적인 황 대리의 금연식이 있었다.
팀원들의 박수 갈채 속에 황 대리가 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갑을 책상 위에 내려
놓더니
하나씩 꺼내서 미리 준비된 물컵에 하나씩 던져넣는 것이 금연식 절차였다.
뭐 화형식을 시키자니 담배냄새가 나서 괴로울 거 같다나.
워쨌든 의욕적으로 시작한 행사(?)니만큼 팀원들이 모두 박수로 환영해줬다.
여자라고 티 되게 내는 지화자 씨는 오빠 오빠 외쳐가며 열광해줬다.
어찌 된 일인지 울 사무실에는 피 부장하고 나, 황 대리만 담배를 피우고
나머지 남자 직원들은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제일 골치 아픈 사람들만 담배를 피운다고 신입사원 전유성 씨가 헛소리 했다가
황 대리의 체중에 깔려서 압사당할 뻔한 이후로
담배피우는 행위에 대해서는 별 터치를 받지 않았는데
황 대리가 어제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더니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사 나야 하루 한갑… 준수하게 피우는데 저 인간은 하루 두세 갑도 거뜬하게
태워없애버리니…
문제는 금연식이 끝나고나서…
지난 주말 골치썩였던 그 보고서 건으로 황 대리가 다시 피 부장에게 열라 깨졌다는
거다…
우리는 조용히 숨죽여 황대리의 날라차기를 기대했건만
황 대리는 말없이 깨지고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한참을 지나도 안들어오길래 나가봤더니…
아까 물에 담궈버렸던 담배 한 개비를 창가에 내놓고 말리고 있더군…
그게 니 맘대로 끊어지는게 아니라니까…

[피 부장의 일기]

12/09 (목) 어? 지금은 깜깜하네?

담배를 배운 지가 거진 40년.
일찌감치 까져갖구 국민학교(요샌 초등학교래매?)때부터 담배에 입맛을 맞춰갔고
중학교때는 골초.
고등학교때는 학생부 단골.
하여튼 내가 살아온 날보다 내가 태워없앤 담배개비 수가 훨씬 더 많을 거 같다.
날이 뭐야? 시간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3~40개비를 피우는데 하루는 24시간
이니까…
그런데 요즘 신세대니 뭐니 깝작대는 것들은 이 좋은 담배를 안피운단 말야.
하여튼 여직원들이랑 비흡연자들이랑 작당해서 사무실에서 담배도 못피우게 하고…
담배 피울라면 계단실로 쫓겨가서 피워야되고… 부장 체면이 뭐야 이거?
방을 따로 칸막이를 해주던지 하면 몰래 피우기라도 하지…
그나마 꼴보기 싫긴 해도 봉대리 황대리 두 골초들이 내 휘하에 있어서 그나마
외롭지는 않았거늘…
오늘 황대리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금연식을 한다네?
담배를 죄다 수장시키면서 결연한 의지를 내세우던데…
얼마나 가나 보자…
원래 지난 주말에 문제가 됐던 보고서는 봉대리한테 넘겨버릴라고 했던 건데
날라차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황대리를 불러 만신창이로 깨버렸다.
솔직히 아랫도리가 조금 후들거렸는데 황대리의 날라차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사무실을 터덜터덜 나가는 황대리의 모습…
담배 땡기지?
어딜 담배를 끊을라고…

SIDH’s Comment :
이 글을 썼던 1999년만해도 슬슬 금연구역이 넓어지고는 있었지만
담배피우는 사람이 그렇게 적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담배피우는 사람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냥 눈에 안띄는 건지도 모르지만.
(워낙 금연구역이 많아져서…)
하여튼 담배피우는 사람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정말 저때만 해도 샐러리맨=담배는 무슨 공식 같았는데.
지금은 회사에서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워낙 없다보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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