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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여든다섯번째

2009년 9월 17일

[봉대리의 일기]

11/3 (금) 맑음

아침에 밥을 잘못 먹었나 출근하고나서부터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들락날락거릴 수밖에 없었쥐.
화장지가 없는 칸에 모르고 들어갔다가 바지를 막 내리고 앉으려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항문 밖으로 막 삐질삐질 나오려는 그 무엇인가를
억지로 도로 끌어댕기며 옆칸으로 옮겨갔던 스릴넘치는 경험도
해봤고,
우리층 화장실에 빈 칸이 없어서 금방 쏟아질 것 같은 항문을 부여
잡은 채 올라가지 않은 다리를 끌어댕기며 위층 화장실로 낑낑 이동
하는 경험도 해봤다.
화장실 자주 들락거리니까 인생이 새롭게 보이누만.
피부장은 내가 일은 안하고 화장실만 들락거린다고 눈꾸녕을 요사시하게
뜨고 나를 째려보는데,
그럼 사무실에 쏟아놓기라도 하란 말이냐…?
…생각해보니 피부장은 그걸 바랄지도 모르겠다.
나를 짜를 현실적인 이유를 얻는 셈이니.
윽…! 아직도 창자에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단 말인가…

[피부장의 일기]

11/3 (금) 흐렸던가? 맑았던가?

나의 아침 일과 중 하나는,
아침마다 (…마다는 아니지만, 이틀에 한번 이상은 있는) 벌어지는
간부회의(…말이 회의지, 위에서 아래 까부수는 시간이다. 일명
사장 및 부사장 브라더스의 스트레스 해소시간이라고들 한다)를
마치면 화장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래구멍으로 분출해내는 것이다.
쑴뿡쑴뿡 그 무엇인가를 뿜어낼 때마다 염통에 켜켜이 쌓였던 울분과
격정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그 느낌… 아는 시키만 알리라.
그런데 오늘 아침은 왠일로 화장실 칸마다 꽉꽉 차있는게 아닌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는데 맨 오른쪽 칸에서 귀에 익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봉대리 끝에 있나.
으….네으…
힘쓰지 말고 대충 싸고 빠져. 나 급해.
회사는 짬밥인지라 잠시후 얼굴이 똥색이 된 봉대리가 비틀거리며 나왔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네… 배탈이 났나 봅니다.
고것, 쌤통이로군.
나도 양심이 있지 위의 대사는 속으로 한 말이다.
어쨌든 봉대리가 막 나온 칸으로 쏙 들어가 편안하게 앉아서 울분과
격정을 그 무엇인가와 함께 뽑아내고 있는데…
으어어어억!!!
봉대리 놈이 휴지를 들고 나가버렸던 거시다!!!!
이눔시키가 빨리 나오랬다고 감정을 품은게 틀림엄따!!!
냉철하자.
옆칸을 두들겼더니 영업팀의 모 사원이다. 목소리는 많이 들었다.
휴지를 패스하라… 나 기획팀의 피부장이야.
앗, 피칠갑 부장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휴지를 달랑 한 칸 뜯어서 넘겨주는건 약올리려는 수작이겠지…
지랄을 한번 떨었더니 그제야 제대로 끊어서 넘겨준다.
하여튼 아랫것들이 이렇게 치받아대서야… 회사생활 명랑하게 할 수
있겠어?

SIDH’s Comment :
회사에서 화장실 관련 에피소드는 넘쳐흐르다보니…
그 중에서 가장 흔하고 재미없는 게 휴지가 떨어지는 상황인데
요번 에피소드 때는 별로 쓸 얘기가 없었나보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화장실에 (특히 큰 거) 갈 때까지는 그렇게 급하다, 급하다 싶지 않았다가
칸에 들어가서 바지 까고 앉으려는 순간에는
인간의 자제력이 무너지는지 막 터져나오려고 그럴 때가 가끔 있다.
그 순간 어 휴지가 없네, 이러면 참 곤란해지는 거지.
뭐, 화장실에(바깥에도)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그 상태에서 잽싸게 옆칸으로 튄 경험도 있긴 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