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도시 (아이작 아시모프)

위 글은 제가 대학교 4학년때 도시학개론 리포트로 제출한 글입니다. 도시학에 관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는데 SF소설을 읽고 리포트를 냈습니다(왕뻔뻔). 그래도 학점 잘 나왔음.

“강철도시”(The Caves of Steel)는 1953년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발표한 책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당시 소련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콜롬비아 대학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과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여러 편의 SF 소설과 수학, 천문학, 물리, 생물, 기술 등에 관한 대중적 과학입문서, 과학백과사전, 전기사전, 추리소설 등의 숱한 저술을 남겼다. {강철도시}는 그의 대표적인 SF물로 꼽히는 책인데, 수 세기 뒤에 지구에 건설된 도시를 배경으로 그 도시 속에서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과 그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갈등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도시는 제목 그대로 강철로 뒤덮인 동굴과 같은 도시로, 책 안에서는 주로 ‘시티’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 시티는 하나의 거대한 돔으로 이루어진 도시로, 말하자면 시티에 사는 사람들은 시티라는 거대한 주택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지구는 이제 시티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고, 도시나 농촌, 어촌 등의 구분은 사라졌다. 시티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절반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거의 자급자족하는 상태이다. 시티의 구조는 빈틈없는 과학적 건설계획에 의해 세워졌는데, 우선 시티의 중앙에는 방대하고 매우 복잡한 행정관서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 외곽으로는 주민을 위한 거주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단지의 위치는 시티 전체와 각 거주지구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하여서 결정된다. 그 사이로 자동고속도로와 지선도로가 거미줄처럼 달리고 있으며, 그 외곽으로는 여러 가지 제조공장과 수경농장, 효모농장, 발전소 따위가 죽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는 상 하수도, 학교, 감옥, 상점, 동력선, 통신망 같은 것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런 시티가 건설된 배경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중세기의 도시는 가장 큰 경우라 하더라도 인구가 1천만 정도밖에 안 되었고, 대부분의 경우 1백만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몇만 개나 되는 그런 군집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주 비효율적인 주거형태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지구는 효율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는 그래도 생활수준을 조금씩 낮춤으로써 20억, 30억, 심지어 50억의 인구까지도 부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전체 인구가 80억에 육박하자, 전부터 이미 반쯤은 기아상태에 있었던 인류에게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인류의 문명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더군다나 다른 행성국가들(이들은 불과 1천 년 전까지 지구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다)이 지구로부터의 이민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게 됨에 따라 그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급격한 변화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시티를 건설하였다. 그 일은 1천 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효율을 높인다는 말은 곧 규모가 확대된다는 뜻이다. 시티 이전의 중세기에도 보다 덜 의식적이긴 하지만 이런 일들이 이루어져 왔다. 가내공장은 공장에 합병되고, 소규모의 공장은 다시 다국적 대기업에 자신을 내맡겼다.
한 예로 몇십만이나 되는 각 가정마다 독립된 주택을 보유하고 살아가는 경우와 똑같은 인원을 수용하고 있는 거대한 거주지구를 비교해보라. 독립된 주택의 비효율성이 확실히 드러난다. 각 가정마다 갖추고 있는 빈약한 필름책 장서와 거주지구에 모아놓은 방대한 규모의 필름책 보유고를 비교해보라. 또 각 가정마다 따로따로 독립된 영상설비를 갖추는 것과 현재의 집단영상시스템이 갖고 있는 경제적이고도 기술적인 이점을 비교해보라. 나아가 어리석게도 똑같은 부엌과 욕실을 몇십만 가정 하나하나마다 설비하는 것과 현대 시티문명에 의해 가능해진 완벽한 메뉴의 식당과 샤워실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라. 모든 것이 분명해지지 않는가.
(“강철도시” 본문 중에서)

아시모프가 상상해낸 강철도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철저한 사회주의적 공동사회이다. 시티의 주민들은 등급이 분류되어 거주지를 배당 받는다. 이 등급은 시티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거주지는 물론 식권이나 샤워실의 배당에도 영향을 미친다. 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등급이 높은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와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끼리만 식사를 할 수 있다. 공동 샤워실도 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대중목욕탕 같은 넓은 곳에서 씻어야 하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개인 욕실을 따로 배정 받는다. 등급이 낮을수록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시티에서는 샤워실에서 지켜야할 에티켓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개인용 욕실에 들어가서든지 밖에서든지 다른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문을 꽝 닫지 않는다거나 하는 친절한 행동도 남을 의식한 행동으로 여겨져 상대방을 몹시 불쾌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모든 주민들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동고속도로에서도 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시티에서 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등급에 따라 발급되는 배당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돈이 사라졌다고 해서 생존경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강철도시의 효율이라는 것도 아주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것일 뿐, 실제적으로는 이론대로 운영되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티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몇몇 분구(分區)의 맨 위층은 자연일광욕실이었다. 그곳에는 가동식 금속 받침대가 붙은 석영 격벽이 설치되어 있어서 외부 공기의 유입을 막고 햇빛만을 받아들였다. 그곳은 시티의 고급 관리나 회사 중역의 부인들만이 일광욕을 즐기는 곳이었다. 매일 저녁 그곳에서는 다른 데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광경이 펼쳐진다.
밤이 찾아오는 것이다.
시티의 다른 곳에서는 그저 거만스러운 시간만이 끝없이 회전하고 있을 뿐이다(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인공일광욕실까지 포함해서 다른 곳이 모두 그렇다. 이 인공일광욕실에서는 수백만 명이 엄격하게 할당된 시간 동안에만 인공광선에 몸을 드러낼 수 있다).
시티의 업무는 여덟 시간 3교대제, 또는 여섯 시간 4교대제이기 때문에 ‘낮’이든 ‘밤’이든 일을 시키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시킬 수가 있었다. 빛과 노동을 요령껏 병행시키면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능률이라는 면을 고려해서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개혁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사회적인 관습들 중 경제적이고도 능률적인 견지에서 포기된 것들이 많이 있다. 공간 점유, 개인의 사생활, 그리고 자유의지의 많은 부분들 그것들은 모두 인류문명의 소산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1만 년을 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진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밤에 잠을 자는 습관은 인류의 역사이래 계속되어온 것이었다. 따라서 이 습관만큼은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저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워질 시간만 되면 아파트의 불빛은 희미해지고 시티의 고동소리는 잦아들었다. 밀폐되어 있는 시티의 길거리에서는 그 누구도 자연현상을 통해 대낮과 심야를 구별해낼 수 없지만, 인류는 시간이라는 손이 빚어내는 구획에 조용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자동고속도로에는 인적이 끊기고, 생활이 내는 소음은 가라앉아 버리며, 모든 길을 뒤덮고 있던 바쁜 군중들은 사라져버린다. 뉴욕 시티는 지구의 알 수 없는 그림자에 조용히 덮이고, 사람들은 잠이 든다.
(“강철도시” 본문 중에서)

이처럼 애초에 강철도시를 건설하면서 계획되었던 부분은 실제로 적용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공민주의(이 책에서 사회주의를 대신해서 쓰이는 말인데, 사회주의와 다른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큰 줄기에서는 다르지 않다)를 이상으로 삼고 건설된 시티는 공민주의의 한계인지, 시티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앞서 말했듯이, 성장 배경만을 봐도 사회주의에 호의적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공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강철도시”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분의 상승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선물들을 이것저것 안겨주었다. 그 사소한 선물이란 보다 안락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든가, 좀더 좋은 부위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든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등등을 말한다. 심오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이 그렇게 힘겹게 얻어내야만 하는 값어치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심오한 철학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일단 이런 특권을 획득한 후에는 아무 고통없이 이것들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현대의 정치 평론가들에게는 중세의 ‘금권주의’를 두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들은 생존경쟁은 야만적인 것이라고, 복잡한 현대의 사회는 ‘돈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긴장 때문에 유지될 수 없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여기에 대비되어 현대의 공민주의가 고도의 능률과 문화적인 면에서 높이 치켜세워져 한껏 조명을 받고 있다. (중략) ‘아무리 돈 때문에 과거의 인간들이 고통스럽게 투쟁했다 하더라도, 과연 현재 시티의 거주자가 일요일 저녁식사에서 닭다리 한 점, 진짜로 살아있는 닭에서 얻은 신선한 닭다리 한 점을 얻을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했을까? 그리고 돈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권리를 잃었을 때만큼이나 큰 것이었을까?’ (“강철도시” 본문 중에서)

이처럼 시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상위 등급을 꿈꾸지만, 모든 주민들이 상위 등급으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티에서는 로봇을 활용해서 사람을 대신할 피지배계급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 로봇이 시티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시티 바깥은 광산이나 목장으로 둘러 처져 있지만, 평생을 동굴과도 같은 시티 안에서만 살아온 주민들은 시티 바깥의 확 트인 공간으로 나가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광산이나 목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로봇뿐이다. 결국 시티에서 1차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로봇인 것이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 로봇을 활용하던 단계가 지나가고, 차츰 로봇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효율을 느끼게 되면서(원래 시티라는 건조물 자체가 효율을 위해서라는 점은 앞에서 설명되었다) 로봇은 시티 바깥의 광산, 목장에서 시티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2차 산업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3차 산업에서도 단순 직종은 로봇들이 조금씩 먹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이상으로 로봇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실업자가 되거나 재분류되어 등급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라고, 상위 등급의 주민들은 더 이상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재분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에 반해 하위 등급의 주민들은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와 재분류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신분간의 갈등은 잦은 폭동과 비밀 집회 등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아이작 아시모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비칠 수도 있는 반정부 시위나 계급 투쟁에 대해서 우회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여기서 지구 정부는 아주 힘이 미약하고, 먼 옛날 지구에서 우주로 이주해나간 사람들이 건설한 우주국가가 오히려 더 힘이 강해져서 지구 정부에 간섭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시티의 하위 등급 주민들은 로봇화 정책에 대한 반정부적 입장을 우주국가에 대한 반발심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국가는 지구처럼 계급화되어있지도, 거대한 시티에 살고 있지도 않다. 우주인들은 지구로부터 우주로 나올 당시부터 철저하게 인구 억제 정책을 실시해 지구처럼 거대한 인구를 안고 살지도 않았고,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효율적인 시티를 건설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이다. 여러 행성에 흩어져 있는 우주인들은 모행성(母行星)인 지구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당장은 효율적이고 바람직해 보이지만 아직도 불어나고 있는 인구와 여전히 부족한 자원을 해결할 길이 없는 시티에서 지구인들을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소수이긴 하지만)이었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인구를 무기로 삼고 있는 지구인들을 끝까지 시티에 붙잡아 두던지, 아니면 우주국가의 영구한 안전을 위해서 아예 점령해버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우주국가는 50개 행성이나 되지만 고작 55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지구는 1개 행성에서 8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후자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지구를 도와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우주국가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국가였기 때문에 두 의견은 타협을 해야 했고, 그 답은 ‘로봇’으로 떨어졌다. 지구인들을 시티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사람들은 로봇으로 하여금 시티의 주민들에게 시티의 부당성을 깨닫게 하여 지구 바깥에 있는 새로운 우주로 진출할 것을 희망하였고, 지구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로봇들과 지구인들의 갈등을 증폭시켜 지구를 혼란에 빠뜨린 뒤 아예 지배해버리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시티는 후자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어, 시티의 주민들에게는 시티 안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자신들을 로봇과 경쟁시킴으로써 재분류와 숙정의 위험에 빠뜨린 우주인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구에 건설된 미래의 도시에 대해서 지금까지 설명했다. 여기서 우주행성에 건설된 우주인 – 지구인의 후예들의 도시(사회)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해야겠다. 우주인들은 우선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인구 억제를 실시했고, 시티처럼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로봇들을 완전한 피지배계급으로 삼아 모든 주민들을 지배계급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게다가 인구 억제를 시도함으로써 노인 문제라거나 기타 사회 문제를 해결해낸 것이다. 인구가 지나치게 적기 때문에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노인 병리학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신 산아율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아이들은 육체적인 결함이나 정신적인 결함이 없는 건강한 아이만 성장하도록 허락을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제거(?)된다. 우주인의 사회는 바로 이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렵게 선택받은 삶, 거의 3백 년에 이르는 긴 삶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중요시될 수밖에 없고, 사회적으로도 삶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갖춰주고 있기 때문에 우주인들은 길고 안락한 삶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안락함은 도시의 발전을 저해하고 퇴화만을 가져와, 우주인들의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인의 도시가 발전을 바라지 않는 시민들에 의해 발전이 정지된 도시라면, 지구의 강철도시는 발전에 대한 욕구에 가득찬 사람들로 꽉 메워진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물리적으로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강철도시가 처한 문제점은 지금의 지구가 처해있는 전체적인 위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폭발하는 인구와 부족한 자원 문제이다.

뉴욕 같은 시티는 용수를 얻고 하수를 처리하는 데에만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로부터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우라늄의 수요는 계속 늘어가기만 한다. 게다가 시티의 식량 사정도 심각하다. 시티는 효모농장에서 사용할 목재 펄프와 수경식물 재배에 필요한 미네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공기는 단 1초도 쉴새없이 순환시켜야 하고…… 시티는 지금 여러 측면에서 위협받고 있다. 서커스의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뉴욕 시티의 물자 유입과 폐기물 송출이 단 한 시간이라도 정지한다면 시티는 어떻게 되겠는가?

원시사회에서의 개개의 인구 군집은 모두 주위의 농장에서 나는 수확물에 의존하여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그 군집은 홍수가 난다든가 위험한 전염병이 돈다든가 지독한 흉년이 든다든가 하는 돌발적인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큰 위험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사람의 군집이 커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런 류의 국지적인 재해는 다른 군집의 도움을 받아 쉽게 극복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점점 넓은 범위의 지역들은 상호의존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상에 있었던 여러 도시들은 아무리 규모가 큰 것이라고 해도 비상식량이라든가 비상시에 대비한 생활필수품을 최소한 1주일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쌓아놓고 있었다. 하지만 뉴욕이 처음으로 시티로 발전했을 때, 뉴욕 시티는 단 하루 분의 식량과 물자만을 갖출 수 있었고, 이제 뉴욕 시티는 단 한 시간도 견딜 수 없다. 만 년 전까지만 해도 불편을 끼치는 정도였고 천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우려할 만한 정도였던 재해란 것이, 백 년 전에는 심각한 것이 되었고 이제 와서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강철도시” 본문 중에서)

강철도시를 헐고 다시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지구에 더 이상의 시티를 건설할만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티는 폭발 직전의 포화상태를 유지한 채로 위태롭게 운영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거대화되면서 주위의 농어촌들이 축소되는 것은 모든 것을 통합하는 강철도시의 개념에서 어느 정도 해결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도시의 성장을 억제해버렸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시티의 거주자들은 두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는 일명 회고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흙으로 돌아가자’를 모토로 삼고 로봇을 몰아내자는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참으로 부드러운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책 속에서 무척 과격한 혁명주의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로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티 안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은 열린 공간에 대해 잠재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진짜로 흙 – 열린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번째는 무척 낙천적인 생각들로, 아직은 시티가 그렇게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물론 당장 시티가 포화상태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금방 무너지겠느냐는 일종의 ‘설마’ 이론이었다. 우라늄이 바닥나면 우주행성으로 수입을 하면 될 것이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책 속에서조차 실현이 불가능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에너지였다. 천연 그대로의 광물질이라면 태양계 안에 있는 무인행성에서 가져올 수도 있다. 물이 부족하면 목성의 위성에서 가져오면 된다. 더구나 대양의 물을 얼려서 얼음으로 만들어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물은 언제나 이용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한편으로 물이 없어진 대양의 밑바닥을 개척할 수도 있게 된다. 주거지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탄소나 산소 같은 물질은 지구상에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토성의 제6위성 타이탄을 덮고 있는 메탄가스나 천왕성의 위성 움브리엘에 있는 고체산소를 가져와서 이용하면 더욱 풍부하게 쓸 수도 있다.

지구의 인구는 1조, 아니 2조까지도 불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재의 80억이라는 인구가 지구상에서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아니, 겨우 10억 정도의 인구조차 상상할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중세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맬더스주의에 입각해서 멸망을 예언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그들이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1조의 인구를 가진 세계라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람들은 수입해온 공기와 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5천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복잡한 에너지 축적장치로부터 공급되는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의 장래는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까. 태양계 전체에 걸쳐 있는 수송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의 사소한 고장으로도 지구는 파멸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강철도시” 본문 중에서)

‘강철도시’란 개념은 사회학자도, 도시학자도 아닌 단순한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가 자신의 과학적 지식에 입각해서 상상해낸 미래의 도시에 불과하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아시모프는 이론상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도시를 창조해냈지만, 그 자신도 그의 책에서 강철도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강철도시는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는 죽은 도시이다. 그러나 도시란 살아있는 것이고, 아무리 효율이 높다고 하더라고 쇳덩어리로 뒤덮어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시티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바깥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중략) 그 쇳덩어리들, 콘크리트 더미들, 그리고 인간성을 뚫고 보이는 것. 사람들에게 어서 나오라고 유혹하는 찬란한 빛. 그것은 벌거벗은 태양이었다. (“강철도시” 2부 — “벌거벗은 태양” 결말 부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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