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골수 기증

2007년 10월 23일

확실히 우리나라는 연예인공화국.

연예인 최강희가 골수기증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나서 관련기사들이 넘쳐나고 감동받았다는 네티즌들이 넘쳐난다.

골수 기증이라.
사람이 사람에게 기증할 수 있는 것이 몇몇 있다만
골수라면 헌혈보다는 조금 어렵고
신장이나 간처럼 산 사람에게서 뚝 떼어내야하는 것보다는 좀 쉽지 않나 싶다.
사람이 죽어야만 기증 가능한 것들은 빼고.

골수기증이 아마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것이
예전에 성덕 바우만 씨라고, 해외입양되어서 미국사관학교 생도로 있던 사람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골수를 기증받아야만 살 수 있다고 KBS 등에서 엄청 때려댔던 적이 있었다.
벌써 한 십 년 넘은 것 같은데.

그게 아마 처음에는 가족을 찾아줘야된다, 뭐 이런 취지였다가
가족을 찾기도 어렵지만 찾아도 골수가 안맞을 수 있다, 뭐 이래서
골수기증서약캠페인 비슷하게 분위기가 흘러갔더랬다.
그런데 뭐 사람들이 방송에서 아무리 떠든다고 기증을 결심하기가 쉽나.
만만한 게 군인이라고 아마 그때 현역 복무 중이던 병사들 줄줄이 기증서약했던 걸로 아는데
재수없게(?) 그 중에 한 명이 걸려서 아마 미국까지 가서 골수 기증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기증자가 후유증으로 고생하네 어쩌네 하는 후속보도가 나오는 바람에 모처럼 불었던 장기기증바람이 산산히 흩어져버렸다던가.
(알고보니 기증자가 원래 허리디스크가 있었는데 후유증으로 디스크가 생겼다는 식으로 오해해서 비롯된 일종의 오보였으나… 원래 일단 보도가 나가고나면 해명보도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나올 때마다 항상 뒤따라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자기 살기만 바빠서… 장기기증은 커녕 헌혈도 잘 안한다…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있는데
제법 이름 알려진 연예인이 실제로 기증을 했다더라…
이러니 반짝 관심이 갈 만도 하다.
반짝 관심.

참 드물게도
내 주변에는 바로 그 골수 기증을 직접 한 사람이 있다.
작년까지 일하던 회사의 동료 과장이었는데
(편의상 L과장이라고 하자)
회사도 선교목적-_-으로 다닐 정도로 독실한 신자다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방법으로 아마 장기기증서약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골수라는 게 기증하겠다고 해도 아무한테나 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처음 기증하겠다고 결심한 시점과 실제 기증받을 사람이 나오는 시점이 아주 다를 수 있다.
그렇다보니 기증하겠다고 한 사람이 기증받을 분이 나타났으니 정말 기증해주시겠냐고 전화하면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 많다더라.
(옆에서 지켜본 바 당시 L과장도 고민깨나 했던 걸로-_-;;)

게다가 기증자가 최종동의를 해서 환자가 골수를 이식받을 준비(방사선치료 등)를 시작했는데
정말 막판에 기증자가 마음이 변해서 기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문제는 이럴 경우 환자가 사망한다는 거.
그러니까 차라리 안할 거면 처음 전화왔을 때 안한다고 하는 게 낫지
괜히 한다고 했다가 막판에 마음 바꾸지 말라는 말이겠다.

어쨌든 L과장은 골수를 기증하기로 결정했고,
골수은행측에서 우리 회사로 귀사의 L과장이 이러이러한 사유로 병원에 입원이 필요하니 회사의 협조를 바란다는 공문도 보내주더라.
그 공문을 보니 야 뭣같은 회사 다니면 골수 기증도 못하겠다는 생각 들더라.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회사 L과장이 골수기증했다고 플래카드를 내걸 수도 있을테고)

골수기증 마치고 출근한 L과장에게 들은 얘긴데
아프다더라.

그래도 기증자라서 그런지 입원도 1인실에 간병인도 붙여주는 등 특별대우를 받았다는데
(당연히 병원비는 한 푼도 안내고)
나중에 알아보니 기증자의 입원비 + 수술비 + 간병인 인건비까지
다 환자측에서 부담하는 모양이더라.
이런 식이니 골수이식비용이 높아지고 돈 때문에 골수이식포기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게 아닌가 싶다.
기증자한테 잘해주겠다는 마음이야 알겠지만, 그런 환자 & 환자가족들 심리를 이용해서 병원측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거 아닌가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상 횡설수설 골수기증이야기 끝.
골수기증할 생각 별로 없는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