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에는 출처모를 악기가 하나 있었다. 연주하는 사람도 없고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를 그 악기, 하모니카는 이 서랍 저 서랍을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가끔 내가 기분나면 대책없이 뿜빠라뿜빠 불어대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신경써주는 사람 없는 그런 존재였었다.
애들용 장난감도 아닌, 그것도 내가 인식했을 때는 이미 꽤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는 중고품이었던 이 멀쩡한 하모니카가 왜 우리집에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래도 가끔 생각나면 ‘하모니카가 어디 있더라…’하면서 이 서랍 저 서랍 또 뒤져보고, 찾으면 ‘아 있네’ 하고는 다시 던져버리는 그런 존재감 정도는 있었더랬다. 그나마의 존재감조차 없어져버린 건 대략 군대 다녀오고 2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부터였나보다.
‘우리집에 하모니카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 지가 벌써 3년 정도 되나보다. 오늘 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가만히 따져보니 그 정도 된 것 같다. 지금 또 하모니카를 찾아 이 서랍 저 서랍 뒤져보다가 찾으면 ‘역시 있군’하며 다시 던져놓는 그 생활이 반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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