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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스스로 갇혀버린 사람들

2004년 10월 17일

미리 경고하는데 영화를 안본 사람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간만에, 정말 간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말하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그렇다고 해서 <빌리지>가 역사에 남을만한 걸작이라거나 내 인생에 기억할만한 수작이라거나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영화”라는 거다.

나이 삼십 넘어서 이젠 대가리도 다 굳어가는 마당에 뭔 생각을 그리 많이 했는가 궁금하실테니 썰을 풀어보도록 하자. 먼저 간단하게 영화 줄거리를 읊어보자. (결말을 대놓고 얘기할지도 모르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은 위의 경고문을 다시 떠올리시기 바란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있는 작은 마을, 이 마을에는 숲에 사는 괴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괴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으며, 간혹 호기심에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숲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누군가가 숲을 침범하면 반드시 괴물들이 마을에 나타나 어떤 징표 – 문에 피를 칠해놓는다거나 – 를 남겨놓기 때문에, 마을 원로회의에서 오히려 나서서 젊은이들을 숲에 가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야하는 입장이었다.

즈아, 이 영화의 감독이 <식스센스>의 반전으로 유명한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쯤에서 이 영화에서의 반전을 일차적으로 “괴물의 존재 유무”에 두게 될 것이다. 실제로 괴물이 존재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누구의 음모이냐 아니냐 수준까지는 미리 짚어보며 영화를 볼 거라는 말이다. 샤말란 감독이 전작들에서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쪽으로 결말을 주로 내려왔던 것을 십분 감안한다면 마치 괴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차 반전을 마련해놓고 나중에 진짜로 괴물이 있었다 식으로 이차 반전을 노릴 거라고 예측해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너무 쉽거든. 솔직히 샤말란이 아니어도 (뭐 샤말란이 대단한 감독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이 정도의 결말로 끝맺는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볼 수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거다.

과연, 샤말란 감독은 괴물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영화의 결말을 이끌어갔다. 지금껏 초자연적인 어떤 힘의 존재를 끊임없이 동경(?)해오던 것에 비하면 파격이랄 수도 있겠다. 뭐 그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기로 하고, 영화의 반전은 바깥세상(?)에서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살면서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괴물을 창조해내 자신과 가족들을 그 마을에 스스로 가둬버렸다는 정도(사실은 좀더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 영화를 안봤으면서도 여기까지 줄기차게 읽고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여기까지만)에서 사실상 끝이 나고 있다. 반전의 정도가 샤말란 답지 못하다, 극히 예상 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이야기는 다시 말하지만 뒤에 다시 논하기로 하고 그냥 이 반전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이것만 갖고도 나는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거든.

마을의 원로들이 만들어낸 괴물 이야기. 사실 그 거짓말은 어떻게 보면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 괴물이라는 존재는 바깥 세상의 사람들 – 이 마을의 존재가 알려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마을에 침입해서 그 마을만의 순수성을 해칠지도 모를 – 을 통칭하는 것이니 쌩판 거짓말도 아닌 셈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거짓말은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물증을 필요로 했고, 점점 강화되는 거짓말과 비례해서 마을 젊은이들의 호기심도 커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까지 낳게 되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바깥 세상과 달리 때묻지 않은 마을을 만들어보겠다던 원로들의 생각은 그 마을만의 순수성에 기댄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 대한 공포감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비약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보안법 어쩌구 하는 난리법석이 이 영화에 참으로 시의적절했다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불현듯 들어버렸던 거다. 우라질,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우월성에 기대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빨갱이에 대한 공포심으로 지탱되는 나라구나 라는 사실을,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영화에서까지 이렇게 이야기하니 또 한번 곱씹어보게 되더란 말이다. 자기들이 만들어낸 괴물, 물론 처음엔 그것이 전혀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물증 없이 과거의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세뇌시키려다보니 빨갱이는 늑대다 식의 만화영화까지 만들어서 상영해줘야되고, 그런 구라성 이야기가 반복반복되면서 이제는 스스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갇혀서 지랄발광하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북한이, 빨갱이가, 실제로 우리나라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지 않느냐고 정색을 하고 반문하고 싶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부연하는데, 내가 구라라고 말하는 것은 “북한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더 재밌는 것은, <빌리지>를 보고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느니 뭐니 지껄여대는 관객들의 행태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관객이라는 것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갇혀서”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반전이 찐해야만 제대로 된 샤말란 감독의 영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제 샤말란 감독이 내 영화는 마지막의 반전으로 승부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냐. 왜 자기들 맘대로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정해놓고 지랄들이야. 뭐, 백 번 양보해서 어떤 감독을 평가함에 있어서 전작과의 비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겠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그 비교라는 것이 고작 반전이 쎄냐 약하냐라는 건 너무 유치한 것 아닌가. 세상에 누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을 놓고 반전이 쎈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평가하더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