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정민철 이강철 선동열 김원형 김용수 조계현 정민태 김시진 김상진
한용덕 윤학길 김수경 장호연 정삼흠 임창용 손민한 최동원 이상목 이상군
30년 가까운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한 투수들의 이름들이다.
한때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다…고 할만한 투수들은 거의 다 들어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으로 주로 나왔던 선수들을 제외한다면)
다만 아쉽게 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을 잠시 열거해보면
롯데에게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던 불멸의 에이스… 염종석.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93승을 마지막으로 올해 유니폼을 벗었다.
역시 롯데의 에이스로 데뷔 7년간 77승을 수확했던 주형광.
이또한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후 7년간 고작 10승을 보태고 87승으로 은퇴했다.
OB의 에이스이며 프로야구 원년 MVP, 22연승 신화의 주인공 박철순도 부상 탓에 통산 76승에 그쳤고
한시즌 유일한 30승 달성자인 너구리 장명부도 그후 3시즌동안 25승을 추가하는데 그쳐야했다.
삼성의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았던 김상엽도 부상으로 결국 통산 78승.
이렇듯 대부분 충분히 100승을 넘겨줄 것 같았던 투수들을 주저앉힌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부상이었더랬다.
기아 타이거즈의 “Ace of Ace”로 불리는 선수 이대진.
거창한 별명과 달리 현재 그의 위치는 무려 6번째 선발투수.
왠만한 팀에 가면 1선발도 문제없을 투수들로 5선발을 채운 팀이라 밀린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의 구위는 어느 팀에 가도 4,5선발에 불과할 거다.
그런데도 왜 그는 에이스 오브 에이스로 불리는가.
앞서 말한 주형광이 7년간 77승을 올렸다면
이대진은 6년만에 76승을 달성한 투수였다.
1993년, 1996년, 1997년 해태 타이거즈 우승의 주역이면서
10타자 연속탈삼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주인공.
6년간 20번의 완투와 6번의 완봉승을 거두고 819개의 탈삼진을 뺏은
선동열의 뒤를 확실히 이어준 해태의 에이스, 그 중에서도 에이스였기 때문이었다.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넘지는 못했던 걸로-_-)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로 상대타자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갔던 그는
1999년 전지훈련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1년간의 재활을 거친 그는 2000년 8승 13세이브를 거두며 재기에 대한 희망을 알렸지만
예상보다 빨랐던 복귀에 대한 후유증, 거기에 멍청한 구단 탓에 무리한 등판을 자초하게 되어
이대진은 다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게 됐다.
여기서 멍청한 구단 탓이란,
1999년 한 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재활만 했던 이대진에게
연봉을 절반으로 뚝 잘라버린 뒤 승과 세이브를 거둘 때마다 옵션으로 연봉에 더해주겠다고 했던 것.
그 덕분에 이대진은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은 경기에서 강판을 거부하다가
밉보인 김응룡 감독이 마운드에 내버려두는 바람에 무려 180개가 넘는 공을 던지고 10점인가 내주면서
완투패를 하기도 했다.
완전히 망가져버린 어깨에 수차례 칼을 대고
2001년을 통째로 재활에 매달려보고도 진전이 없자
고교시절 한가닥 했던 타자로 전향을 선언하고
당시 최강 마무리였던 LG 이상훈을 상대로 잠실구장 펜스를 맞추는 역전 3루타를 뽑아내기도 했지만
(이 경기는 타이거즈팬들에게는 손에 꼽을만한 명경기 중 하나)
역시 타자로는 실패, 다시 투수로의 재활에 들어가고
2003년, 2004년 시즌마다 잠깐잠깐 복귀하면서 몸상태를 점검했다가 다시 재활하기를 반복하고
2005년을 다시 통째로 날리고 2006년 시즌 막판에 다시 잠깐 나와
딱 1이닝 던질 동안 홈런포함 3안타를 두들겨맞으며 2실점하고 내려오는 그를 보면
“에이스 오브 에이스”라는 이름은 이제 추억 속의 훈장처럼
그에게 그저 남아있는 흔적 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더랬다.
하지만 2007년 시즌, 이대진은 “이제 아프지는 않다”며 당당히 선발투수로 돌아오고
잠실구장 LG와의 개막 2차전 경기에 나선 이대진을 위해 타이거즈 팬들을 노란 종이비행기를 하늘 가득 날려보내주었다.
경기는 이대진의 해태시절부터 동료였던 장성호의 투런홈런과
대졸신인과 고졸신인의 처지라 입단동기면서 선배이기도 한 이종범의 3안타 맹활약을 등에 업고
6이닝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버텨내 9-2로 승리했고
이것은 이대진이 2003년 이후 4년만에 거둔 선발승이었다.
6년간 76승을 거뒀던 투수가
그후 9년만에 10승을 더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통산 86승째)
과거의 불같은 강속구, 폭포수 같은 커브는 이제 없어졌지만
노련미를 앞세운 완급조절과 제구력으로
이대진은 꾸역꾸역, 선발로 7승6패의 성적을 거두며 2007년을 마쳤다.
2008년에는 다시 선발로 나서 5승10패, 작년만 못한 성적을 거뒀지만
그래도 “마운드에서 던진다”는 자체만으로도 타이거즈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어느새 통산 97승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2009년 시즌이 시작됐을 때
팀이 무려 6선발을 돌리는 와중에서도 이대진에게 선발 기회는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뜨문뜨문 돌아왔고
결국 6월28일, 세번째 선발등판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통산 98승째를 거뒀다.
다시 7월에 한번 선발 기회가 왔지만 패전,
8월에 다시 잡은 선발 기회에서 드디어 5.2이닝 3실점으로 99승째를 거두고야 말았다.
대망의 100승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8월13일 롯데전.
이대진은 5회까지 2실점으로 막으며 2:2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지만
6회 가르시아에게 3점홈런을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고만다.
다시 8월19일 히어로즈를 상대로 100승에 재도전했지만
2.1이닝동안 5피안타 1실점을 하며 조기강판, 역시 패전투수가 되고
8월 27일, 어렵게 잡은 세번째 100승 도전 경기에서는
한화를 상대로 4.1이닝동안 무려 7실점을 하며 또 패전투수가 된다.
이무렵 타이거즈는 11연승을 거두는 등 광란의 8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타이거즈가 8월에 거둔 20승 4패 중 3패가 이대진의 경기였으므로
(11연승이 끊긴 경기도 이대진 선발경기)
일부 타이거즈팬들은 이대진을 퇴물취급하며 이제 그만 꺼지라는 욕설도 서슴지 않게 됐다.
팀에서도 더이상 이대진에게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듯, 그를 2군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후 타이거즈는 에이스 윤석민이 부상으로 2군에 가게되는 악재가 터지고
5연패를 당하며 2위 SK에게 1게임차로 턱밑까지 쫓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화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양현종의 호투로 겨우 연패를 끊은 타이거즈는
윤석민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시 이대진을 1군으로 불러 올린다.
2009년 9월 11일. 이대진은 바로 직전 선발경기에서 7실점의 멍에를 씌운 한화와 맞서 마운드에 오른다.
상대 선발투수는 명실공히 한국프로야구 최고 투수 중 한 명인 류현진.
선발매치업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열세인 이 경기에서
이대진은 자신의 통산 100승이 문제가 아니라
5연패 끝에 겨우 1승을 거둔 팀에게 다시 패전을 안겨서는 안되는
어찌 보면 100승보다 더한 부담을 안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대진이 선발로 나오는 경기에선 꼭 더 잘해야한다고 외치는 동기이자 선배 이종범이
한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나 이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을 날려주며 이대진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준다.
심기일전한 이대진은 3회까지 무안타로 한화 타선을 막아내고
타이거즈 타선은 최희섭의 홈런 포함 2점을 더 보태주며 3-0의 리드를 안겨준다.
그러나 이대진은 4회부터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4안타에 볼넷 폭투가 겹치면서 1실점하고 2사만루 위기에 몰린다.
큰것 한방이면 역전인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은 예전 경기처럼 조기강판을 지시하는 대신 그냥 투수를 믿어주고
잘맞은 타구가 투수 글러브에 용케 빨려들어가며 이닝은 겨우 마무리된다.
다시 5회에 이대진은 안타 2개 볼넷 2개를 내주며 1실점, 3-2로 바짝 쫓기면서
2사 만루의 위기를 다시 맞게 된다.
이번에도 조범현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대진은 타석에 선 5번타자 이영우를 2루수 땅볼로 요리해내며 5회를 마치고
마침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게 된다.
이어진 6,7,8회는 류현진 투수와 구원으로 나선 손영민 투수의 팽팽한 투수전.
6회 류현진이 볼넷 2개와 실책 1개로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낸 걸 제외하면
양팀 모두 별다른 위기 없이 9회를 맞게 된다.
특히 최근 타이거즈에서 가장 믿을만한 불펜 중 하나인 손영민은
삼진 3개 포함 9타자를 모두 잡아내는 퍼펙트 피칭으로 선배의 100승 지킴이로 나선다.
마지막 9회, 2아웃 이후 대타로 나선 장성호가 역시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 홈런을 치면서
1점차 팽팽했던 경기는 4-2, 2점차로 벌어지게 된다.
이어진 한화의 마지막 9회말 공격. 타이거즈는 마무리 유동훈을 이틀 연속 올리는데
연투가 부담이 됐는지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다시 다음 타자에게도 중전안타성 타구를 맞지만
대수비로 들어온 2루수 김종국이 미리 자리를 지켜준 덕에 병살타로 처리되며
이대진의 100승은 9부 능선을 넘게 된다.
마지막 타자 이여상을 하프스윙으로 삼진 처리하는 순간,
수많은 타이거즈 팬들의 눈물섞인 환호에도 그냥 담담한 웃음으로 기뻐한 이대진.
17년만에 거둔 100승이며, 6년간 76승을 거둔 후 11년간 24승을 거둔 끝에 이룬 100승.
더 잘해준 선수들도 많지만, 당당히 오늘의 선수로 선정되어 TV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기억에 남는 패배를 묻는 질문에 앞서 말했던 “180구 완투패” 경기를 언급한다.
그 경기만 아니었어도, 그의 100승은 훨씬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라지만.
어쨌든 타이거즈의 진정한 “에이스 오브 에이스”는 이렇게 역대 21번째 100승 투수가 되었다.
앞으로 수많은 투수들이 넘어갈 100승 고지라지만
부상과 재활만 없었다면 통산 200승도 문제없었을 거라지만
역시 수많은 투수들을 100승 문턱에서 주저앉힌 부상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타이거즈 투수들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등판 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서
투수 중 맏형으로 역할을 성실하게 해주고 있는 에이스 오브 에이스.
그에게 100승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제는 타이거즈의 V10을 기원하며.
28년 골수 타이거즈팬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