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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단순하면 되잖아?

2008년 8월 1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은 영화 개봉전, 아니 제작에 들어간다고 할 때부터 정우성-이병헌-송강호라는 초호화출연진으로 이미 충분히 주목받고 있었더랬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 웨스턴 어쩌구는 솔직히 상관없다. 정우성-이병헌-송강호가 한꺼번에 나온다는데! 게다가 감독이 스타일리스트 김지운이라는데! (아, 이건 별 거 아닌가) 그런 상태에서 여름 시즌을 앞두고 예고편이 쫙 깔리는데 야, 이게 속된 말로 “간지나더라” 이거지. 다른 영화 보러 극장 갔다가 <놈놈놈> 예고편 틀어주길래 보면서 그랬다. 이 영화, 내용이고 뭐고를 떠나서 일단 대박은 나겠네.

처음 이런 영화 찍는다고 제목 들었을 때부터 이게 <속 석양의 무법자>와 비슷한 이야기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속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목은 <The Good, The Bad, The Ugly>) 근데 감독은 <속 석양의 무법자>보다는 이만희 감독의 옛날영화 <쇠사슬을 끊어라>의 오마쥬에 가깝다고 하더라. 막상 영화를 보니 (<쇠사슬을 끊어라>는 보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기본 캐릭터 설정 및 전반부 풀어가는 방식은 <쇠사슬을 풀어라>에서 따오고, 결말은 <속 석양의 무법자>로 마무리한 것이 아닌가 뭐 대충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런지, 내가 느끼기에 초반에 풀어가는 이야기와 막판에 마무리짓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덜컹덜컹하다가 대충 끝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니, 딱부러지게 말해서 막판에 세놈이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되는 상황에 대한 개연성이 아주 바닥을 핥는다. 중간까지 신나게 해오던 이야기가 보물지도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뚝! 끊어지더니 야 우리 셋이 여기서 할 일도 없는데 총이나 쏠까? 이따위로 마무리짓는게 영 불편하더라 말이지.

그러나, 이야기가 좀 덜컹거린다고 해도 영화 보는 내내 쏟아지다시피하는 “간지나는” 장면들에 허우적거리다보면 영화 끝났을 때 “오, 재밌다!”라는 감탄사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된다. 왜 저렇게 총들고 싸우는지 별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총소리가 우당탕탕 터지기 시작하면 바로 몰입된다. 싸우는 모습도 각 캐릭터별로 설정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 각 놈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구구절절 읊어대지 않았어도 대충 싸우는 스타일을 보면 답 나오게 되어있다. 그게 잘 살아있는 부분이 하이라이트인 추격씬보다 중간에 나오는 마을(귀시장?)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다.

대충 좋은 이야기 하나, 나쁜 이야기 하나 정도 한 것 같다. 예전엔 영화 한 편 보고나면 거품물면서 씹어대기 바빴는데 많이 사람 된 거지. 하여튼 이상은 <놈놈놈>을 본 사람들이면 대충 다 비슷하게 느낀 점들을 정리한 정도고, 다른 이야기를 추가로 하나 더 해보자. 예전에 <쉬리> 보고나서 썼던 이야기랑 대충 비슷할 거 같은데, 어쩌면 우리나라 영화판에서는 돈 좀 쥐어주고 니 맘대로 해봐라! 라고 하면 다들 똑같은 문제점을 드러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얘기냐면, <놈놈놈>의 기본골격만 놓고 봤을 때 영화 전반적으로 스케일을 너무 키워놓은 티가 심하게 난다는 거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칸느영화제 상영버전에서는 좀더 간략하게 편집했다가 우리나라 관객들은 내러티브를 너무 따져서(?) 그런저런 사연들을 추가하다보니 20분 정도라던가 추가로 들어갔다던데, 물론 그러고도 관객들이 아 내러티브가 부족해 이런 불평을 한다고는 하던데,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오히려 반대쪽이다. 왜 쓸데없이 이런저런 사연들을 늘어놓으려고 했냐는 거지.

이게 스케일 크면서 사연깊은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감독 혹은 제작자의 욕심인지, 단면적인 캐릭터보다는 뭔가 입체적이고 사연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던 배우들의 욕심인지, 감독 말마따나 내러티브를 너무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의 성향 탓인지 원인은 모르겠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놈놈놈>에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거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다보니 대충 나오다마는 배우들도 여럿 있다. 독립군으로 나왔다가 흐지부지 없어지는 엄지원은 특별출연이니까 그렇다 치고, 오달수나 이청아는 비중 좀 있어보이는 우정출연 수준이다. 엉뚱하게 병춘 역을 맡은 윤제문의 비중이 꽤 크다. (그냥 감초코믹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너무 비중이 높아졌다 싶었는지 중간쯤에 뚝 잘라버린다) 아편굴 이야기도 사실 쓸데없고 (월드컵 박수 한번 보여주려고?) 과감하게 쳐내려면 일본군과 독립군들도 사실 필요없었다. 물론 일본군이 안나오면 막판 추격전의 스펙터클이 많이 줄어들었겠지만 덕분에 생뚱맞아진 거는 어떡할 건데.

이야기를 억지로 엮어가려고 했다기보다 각 놈들마다 무슨 사연을 담으려는 무모한 시도가 낳은 손가락귀신도 그렇다. 그럴려면 정말 차라리 설명이라도 자세하게 하던지. 대충대충 넘어가놓고서 막판 대결은 또 손가락귀신 때문이다. 아 막 공감안간단 말이지. 정말 극초단순하게, 세놈 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고 폼은 그럴싸하게 잡을지 몰라도 사실은 다 돈에 미친 놈들, 이렇게 설정해놓고 그냥 보물지도 따라다니다가 꽝되니까 다 미쳐버렸다, 이러면 이야기 깔끔해지거덩. 영화상영시간도 2시간 안짝에서 깔끔하게 떨어질 수 있을 거고.

그게 그냥 돈에 미친 총잡이 역할은 이미지상 못맡겠다고 배우들이 데모라도 한 탓인지, 아니면 감독/각본가가 그런 류의 이야기가 먹힌다고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간지나게 영화 뽑아놓고 이야기로 욕먹는 건 억울하잖아. 애시당초 우리 이야기는 극초단순! 간지로 승부하겠다! 이러구서 나왔으면 몰라도, 아니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일부 관객들도 그렇게 동조된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그렇게 믿어주기엔 중간중간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 쓸데없이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그냥 쌈마이식 액션영화로 만들기엔 배우들 이름값이 너무 높았던 건가. 근데 저런 배우들 집어넣지 않았으면 아무리 화면이 간지나도 이만큼 주목받고 흥행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결국 이야기는 한국영화판이 문제라는 식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