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자주 가는 일본의 건담팬사이트 중 “Quattro’s SIDE”라는 곳이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오듯 샤야의 팬사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데, 메카나 설정 등에 대한 복잡다난한 이야기들보다 캐릭터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칼럼 형식으로 풀어놓는 등 내 취향에도 얼추 맞는 곳이라 즐겨찾기에 넣어놓고 간혹 생각나면 둘러보곤 하는 곳이다. (앙케이트도 있고 퀴즈/게임도 있고 인기투표도 있어서 향후 홈페이지 업데이트에 많은 참고를 하려는 목적도-_- 분명히 있다)
이 사이트에 “혐오하는 캐릭터 워스트 5″라는 꼭지가 있다. 방문객들의 인기투표(?)로 뽑았다기 보다는 운영자가 자의적으로 뽑은 리스트인데, 이 리스트에서 당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카즈 고바야시다. 그래? 의외인걸? 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건담 윙>이나 <V건담> 등을 포함시키지 않고 통상 말하는 우주세기 정도에서 혐오캐릭터를 뽑아본다고 했을 때 보다 경쟁력 있어보이는(?) 후보들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하여튼 이 사람의 선택은 카츠다. (참고로, 이 운영자는 <Z건담> 49화에서 카츠가 암석에 부딪혀 죽는 장면을 가장 유쾌한 장면으로 뽑을 정도로 안티카츠(?)팬이다)
왜 카츠일까? (물론, 그 사이트에는 1위로 뽑은 이유도 나와있다) 길게 늘어놓느니 그 리스트의 후순위를 장식하고 있는 이름들을 살펴보면 쉽게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동전사 V건담>의 유명한 악역, 카테지나가 2위에 랭크되었고, 더블제타의 건담파일럿팀이 3위에, <샤아의 역습>에 나오는 하사웨이가 4위, <기동전사 Z건담>의 이랬다 저랬다 캐릭터 레코아 론드가 5위, 아깝게 순위에 빠진 인물로는 <건담 더블제타>의 엘피 플, 대략 이렇다. 어떻게 짐작이 가시는지? 이 홈페이지 운영자의 “혐오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그래서 앞뒤 안가리다가 뭔가 크게 실수하는 그런 종류의 캐릭터들이다. 첨언하자면 대략 “애들 캐릭터”가 한껏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도 여러차례 “애들판이 되어버린 더블제타”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평가하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으므로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Z건담>에서의 카츠가 혐오캐릭터 1순위라는 점은 많이 유감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카츠가 이곳 저곳 좌충우돌하며 사고 일으키고, 낄 때 안낄 때 구분못하고 나대는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나에게 카츠의 모습이 진실되게 다가오는 것은 “전쟁에 대한 내적 깊이가 없는 상태에서 외적으로 깊게 전쟁에 빠져든”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카츠가 1년전쟁의 화마를 매우 직접적으로 겪은 아이이긴 하지만 화이트베이스라는 곳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그렇게 뼈저리게 느끼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화이트베이스, 전사자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카츠가 전쟁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은 전쟁영웅 아무로 레이에 대한 극대화된 환상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에 비추어 초라해진 아무로를 질책하고 새로운 영웅으로 건담 Mk-II의 파일럿인 카미유를 선택해 동경했던 것이다. “전쟁으로 죽어나가는 생명”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오로지 전쟁영웅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카츠를 파일럿시켜준다며 우주로 끌고나간 샤아의 경우는 결론적으로 <샤아의 역습>에서 쿠에스를 끌어들였던 것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하다. (관련하여, 샤아는 예나 지금이나 유괴범-_-습성은 달라진게 없었다라는 주제의 칼럼을 별도로 준비중)
“전쟁영웅에 대한 환상”만 가득한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고서는 총을 함부로 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적의 에이스를 격추시키는 전쟁영웅”을 롤모델로 삼고 닮고 싶어하는 아이라면 시로코와 하만의 일대일 대결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고작 G디펜서를 몰고) 그 한복판에 뛰어들 것이며, “전쟁영웅은 무슨 일을 해도 용서된다”는 식의 비뚤어진 전쟁영웅관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었을 아이라면 적군의 간첩-포로를 몰래 풀어주는 것도 지극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앞서 “가장 유쾌한 장면”이라는 카츠의 최후 역시, 전투가 한창인 – 그것도 적에게 바짝 추격당하는 도중에 곁눈질을 한다는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행동이 원인이 되어 최후를 맞지 않았는가. 카츠는 자신 앞에 떨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걸맞는 선택을 하며 움직였을 뿐이고, 정확히 말하면 카츠의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은 샤아-크와트로를 비롯한 에우고의 모든 어른들이 져야할 것이다.
몇가지 부연하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는 이런 황당한 캐릭터가 왜 극중에 등장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답이야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짐작하기에는 전작인 <기동전사 건담>의 마지막 회에 답이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 회, 아바오아 쿠에서 탈출하는 아무로를 도와준 것은 뉴타입으로 각성한 세 꼬마들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뉴타입=우수한 파일럿의 이상한 등식을 갖고 있는 몇몇 팬들은 “저 꼬마들이 나중에 커서 건담을 조종한다면…?”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츠의 파일럿 데뷔는 어느 정도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자 하는 제작진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로의 각성에 대한 계기, 극의 갈등구조를 높이기 위한 말썽꾸러기 캐릭터의 존재 필요 등등의 더욱 타당한 이유도 있겠지만,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둘째로, 카츠에 대한 그런 관대함을 <더블제타>의 쥬도 패거리들에게도 적용시켜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한마디 덧붙인다. 카츠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별도의 캐릭터였을 뿐 전쟁 자체를 희화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쥬도 패거리는 카츠와 같은 말도 안되는 좌충우돌이 오히려 승리로 이어지는 어이없는 상황 연출로 인해 전쟁 자체를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시각이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카츠와 비슷한 성향이지만 아군을 죽여버린 하사웨이 역시 카츠와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츠는 그냥 아이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