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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스토리

2009년 8월 20일

2001년 4월 21일에 얼터너티브 스포츠웹진 후추(http://www.hoochoo.com)의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새삼 8년전 글을 지금 왜 올리는지 이해되실 겁니다.

근검절약을 모토로 삼고 있는 가풍 덕분에
택시는 절대 타지말아야할 사회악 비슷하게 생각하고 성장해왔습니다.

(지금도 저희 어머니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으십니다.)
(관절염으로 절뚝거리시면서도 죽어도 버스, 지하철입니다)

그러나…

대학 들어가면서 술고래의 인생을 시작하자마자…
대중교통이 왜이리 빨리 끊어지는지 서울시를 원망하기 시작하고…
(그 원망을 그대로 학내투쟁에 승화시키기도… 서울시=재단이니까)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가끔 타게 되었습니다…

즉, 항상 알딸딸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다보니…
저는 택시를 타면 꼭 앞자리에 앉아서 기사아자씨와 농담따먹기를 즐깁니다…
택시기사아자씨들 말빨 좋아요…

그 숱하게 많은 분들중에 기억남는 분들을 세분 꼽아봤습니다.

3위… 순진한(?) 아자씨

이분은 암에푸가 한창일때 만난 분인데…
믿거나 말거나 중학교 체육선생님을 하셨다고 주장하시더군요…
이제 한 3개월 됐다고 하시는데
택시 운전 해보니까 벼라별 손님을 다 만났다고 자랑(?)을 하시네요.

제가 신림동에서 택시를 타며 양재동 갑시다! 그랬더니
아니 좋은 동네 사시면서 왜 이런 후진 동네(신림동 주민 죄송…)로 술을 먹으러 오냐고 묻더니만
그 동네가 잘살긴 잘사나 몰라도 별별 사람 다 있습디다… 그라믄서

전에 한 여자승객을 태웠는데 술이 꼭뒤까지 취해갖구
(나이는 이십대 후반처럼 보인다던데)
기사 아자씨 잘 생겼다고… (잘생기긴 개뿔이… 못나진 않았습디다)
아자씨 오늘 밤 나랑 연애하자고… 여관 가자고.. 뭐 그랬답니다.
나야 옆에서 아유 아자씨 그럼 바로 핸들 꺾어야죠… 그런 기회를…
이렇게 장단 맞추고 있었고… -.-;

그 아자씨 나 내리기 직전에 묻더군요.
“근데 여자가 연애하자는 말이 하룻밤 자자는 말이유?”
음… 술집 아가씨들하고 별로 안놀아본 아자씨인 모양임다…

2위… 조까튼 아자씨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홍보물(포스트잇)을 아침 출근길에 돌린 적이 있었는데..
회사는 교대고 작전지역(?)은 삼성역이었슴다…
그래가 아침일찍 집결해서 한 두시간 돌고 (삼성역 근처 근무자는 그무렵 저를 봤을지도…)
9시반쯤 철수하면서 택시를 하나 잡았죠…
나랑 여직원 둘이 타면서… (다른 알바들은 보내고) 아자씨 교대요~ 했는데
하하 이 아자씨… 삼성역에서 교대(역말고 학교 정문)가는 길을 내가 뻔히 아는데…
막 이상한데서 꺾고 그러더니… 난데없이 서초역이 보이더군요…
(뭐가 이상한지 모르시는 분은 지하철 노선도를 꺼내보시길…)

넉넉잡고 5천원이면 충분한 길을 8천원 뽑아내더군요…
껄껄 웃으면서… 아자씨 엄청 돌아오시네요… 5천원이면 올 수 있는 길이니까
5천원만 드릴께… 그러구 5천원 내고 내렸습니다.

여자들이 타니까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방향치가 많죠) 물로 본 모양인데…
씹쌔끼더군요.

1위… 화끈한 아자씨

때는 바야흐로 1997년 12월 16일… 대통령선거 전날…
내일 쉰다고 종로에서 열라 뽀지게 술마시고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 입에서 자연스럽게 대선 얘기가 나오더군요…

아 나는 이회창 찍을 겁니다… 이회창이가 당선되야돼요…
김대중이 순 빨갱이라니까.. 그놈 되면 나라 말아먹을껌다…
손님은 누구 찍으실건가요?

아 저요… 전 김대중 찍을 겁니다…

…내려…

내렸습니다. 한남대교 앞에서…

다시 택시를 잡았습니다. (30분 걸렸습니다. 한남대교 넘어가려는 택시 중에 빈 택시가 있을리 없죠…)

아 씨바 아까 어떤 기사아자씨가 지는 이회창 찍는다고 나보고 내리라잖아요…
그래서 이 엄한 곳에서 택시잡느라 고생했네… 기사아자씨는 누구 찍으시나요?

지요? 지는 김대중이지라.
아따 그라죠! 김대중이 되야 된당께!

양재까지 웃으면서 편하게 왔습니다.

택시만 타고다녀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은 그냥 보이거덩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