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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서른살 남자가 봤더니

2002년 2월 5일

자유민주주의사회,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라는 썩 괜찮은 타이틀을 달고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과연 내가 계급이 없는 사회에서 태어났는지 의문을 가지곤 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의문은 나라는 존재에 이 사회에서 상당히 미약한 존재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나는 사회의 메인스트림에 걸맞는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일단 우리 집은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도 그냥 없는게 아니라 서울에서 손꼽히는 달동네인 신림동에서 살았으니, 이미 주민등록증에서 강남이나 (물론 내가 어렸을 때는 강남이 잘나가기 전이었지만…) 기타 부촌(富村)에 사는 사람들에게 꿀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울 변두리에서 사는 것도 모자랐는지 부모님의 고향은 전라도였다. 한국사회에서 전라도라는 위치, 요즘은 김대중이 대통령되고 하니까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는 모양인데, 전혀 아니다. 거슬러올라가면 고려 태조 왕건의 십훈요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은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김대중에 의해 계속 키워져왔다. 일단 “전라도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나는 “서울 토박이”라고 우길 수 있었음에도 굳이 “전라도 출신”임을 고집하는 삐딱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댓가가 심히 가혹하기는 했지만) 인간적인 모멸에서 사회적인 좌절까지 숱하게 늘어선 고난들을, 비전라도인들은 샷다마우스해주시기 바란다.

돈없고 지연없고, 학연이라도 어떻게 하나 잘 잡았으면 어땠을까마는, 서울 변두리지역에 뭐 변변한 학교가 있겠는가. 역사가 채 20년도 안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줄줄이 졸업한 덕분에 내가 내세울만한 – 사회적으로 성공한 – 학교 선배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국민학교 중학교는 아는 선배도 없고 중학교 후배인 축구선수 안정환이 그나마…
글쎄, 고등학교 코피터지게 공부해서 서울대라도 갔으면, 이제까지 내가 징징거린 모든 콤플렉스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내가 합격한 대학은 서울시립대학교였다. 비슷한 학력고사 점수대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대나 성균관대를 말하면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이, 서울시립대라고 말하면 (아직까지도) 산업대? 라고 되묻는, 그렇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대학을 다녔던 것이다.

글쎄, 그래도, 취직 잘된다는 건축과를 나왔으니, 부모님 소망대로 대기업에라도 취직해 명함이라도 뻔쩍뻔쩍거렸다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망할놈의 IMF 덕분에 건축경기 바짝 얼어붙었고, 나는 두세군데의 대기업에 쭈르르 낙방하고 자의반타의반 인터넷 관련업으로 직종을 돌리고 말았다. 나름대로야 첨단사업을 걷는다고 찡찡거려보지만 명함을 내밀면 회사 이름 들어봤다는 사람 아무도 없다.
쪼잔하게 덧붙여보면 집에서도 장남도 아닌 둘째아들이요,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 다 놔두고 하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만 거창한 나라에 태어나 약소국민의 비애까지 느끼고 있다는 점까지.

이렇듯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메인스트림 비스무리한 것도 걸쳐준 적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그런 것에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냥 팔자려니, 받아들이고 살았다는 점인데,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본적도 서울인 주제에 굳이 부모님 고향을 들먹이며 전라도 출신이라고 우겨댔고, 취직해서 멀쩡하게 출근하면서도 놀고먹는 백수 행세를 하기도 하는 등 내 스스로를 “비주류”로 만드는 일을 즐기는 수준이었다. (자학적인 의미는 아니었고… 단지 나는 나에게 좌파가 어울릴 뿐 가진 것도 없으면서 보수우파 행세를 한다면 꼴같잖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몇년전부터는 바로 이 “메인스트림”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분명 달동네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부모님 덕분에 세 끼 걱정은 하지 않았고, (학교친구 중에는 굶고다니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군대에 가서는 내무반에서 손꼽히는 고학벌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지방 출신인 직장동료로부터는 “서울사람은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진지하게 듣기도 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보기에도 내가 메인스트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공무원이라는 번듯한 직업의 부모님이 계셨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4년제 대학을 나와 멀쩡한 직장 다니고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것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은 모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바로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몰개성적인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며 아침에 일찍 나와 팀장 책상이나 닦아주고, 커피 심부름 도맡아하는 사무실의 대졸여성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들 수가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커리어우먼(Career Woman)이 되고 싶었는데 캐리어우먼(Carrier Woman)이 됐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런 현실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혁명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내 계급에 대한 안주”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좌파가 되지 못했다) 말은 입에 혀처럼 착착 붙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사람은 (그것을 스스로 버리기 전까지는)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라면 혹시 또 모르지만)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현실에 대한 만족도를 더해간다면 모를까.

이 짧은 한마디를 하려고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영화 개봉 전부터 “한국영화계를 위해서 정말 필요한 영화지만, 흥행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위에 말하고 다녔는데, 불행히도 예상은 들어맞고 말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고있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끼니 걱정 없이 살아 4년제 대학 나오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 다니는 30대 남자가, 인천에서 사는 여상 출신 스무살 여자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구역질 나는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