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0일

방명록에서 “군삼녀”라는 소릴 들어서 이건 또 뭔소린가 찾아봤더니

아마 모TV(뉴스?)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하다가
지나가던 여자 한 명이 “군대 2년 너무 짧은 거 같다. 그 시간동안 뭘 배우겠냐”고 말한 화면을
캡처받아서 돌려보는 모양이다.
요새 무슨녀, 무슨녀 식으로 (그런 식으로 이름붙는건 무조건 여자들이다) 이름붙이는 게 유행이다보니
이름하여 군삼녀, 이렇게 부르는 모양인데.

에… 그걸 보고 든 생각 두 가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2000년쯤,
그때만 해도 인터넷만큼이나 PC통신이 활발했으니까,
나우누리로 기억하지만 확실치는 않은 어떤 PC통신 게시판에
여중2학년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이
군대가면 월급받는다면서요. 그런데도 고생 많이 하는 것처럼 말하니 웃기다라는 글을 올린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과 달리 PC통신은 글을 쓴 사람이 어느정도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그 글을 보고 분기탱천한 수많은 남성유저들이 거침없는 쪽지를 날려
온갖 (구체적인) 협박과 분노의 저주를 퍼부었던 모양이다.
며칠 지나서 문제의 당사자(여중생)가 사과의 글을 쓰는 걸로 상황이 종료되었던가.

여기서의 핵심은,
그 여학생의 문제점은 “정확히 모르고 글을 썼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철이 없더라도 아마 자기 한달 용돈보다도 적은 돈을
월급이랍시고 받는 줄 알았다면 저런 글을 썼을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들 분노했는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그 여학생에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그냥 “월급”이라고 그러면 누가 생각해도 왠만큼 받는 거 같다)
무책임하게 흘린 것이 사실 문제라면 문제지
그 여학생이 잘못 알았다는 것이 그렇게까지 큰 문제겠느냐는 거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해보면 당시 여학생의 글이 일종의 “유머”로 떠돌고 있는데
아 잘모르니까 이렇게 썼네, 정도로 웃어넘기는 여유가
쪽지로 저주를 퍼부은 사람들에게 부족했던 것이 오히려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군삼녀 이야기를 보고 갑자기 그때의 여중생사건이 떠오른 이유는
대상자가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성이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흥분부터 하는 것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게 첫번째.

두번째는 그 생각이 좀더 발전해서,
오히려 대상자가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성이기 때문에 흥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거다.
만약 군대 갔다온 남자가 과연 저렇게 말했으면, “군대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하냐!”라고 흥분했겠느냐, 라는 의문이 생겼다는 말이지.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여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는 거다. 뭣도 모르는 애들이 저런 소리를 뿍뿍 해대는 것 자체가 열불이 난다는 말이다.

그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키면,
여자들이 군대 안가는 게 화가 난다는 거다.

좀더 구체화시키면,
군대도 가지 않는 여자들은 군대 문제에 대해서 아가리 닥쳐라.

이게 정답일테지.

솔직히 말하면, 뭐 내가 페미니스트도 아니니까,
여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쉽게 말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고,
그거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문제와 별개로,
대한민국 남성이 갖고 있는 군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가 이중적이냐 하면,
대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에 다녀온 기간에 대해서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다.
내가 창창한 젊은 시절에 군대를 갔다오면서 손해를 봤다, 피해를 입었다,
이런 인식이 있기 때문에 군가산점혜택이라거나 기타 군복무에 대한 지원/혜택에 민감하다.
잘못 그런 거 건드리는 놈들(주로 여성단체)은 아주 개박살이 나지.

뭐 그거야 일정부분 당연하다고 본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보상받고 싶은게 당연한 심리고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보상하는 것도 당연한 거다.

근데 여기서 꼭 한 발짝 더 나간다.
나만 피해입은게 억울하니까 다른 놈들도 다 같이 피해보자고 한다.
심심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여자도 군대가라”는 이야기.
여자가 군대 간다고 해서 자기가 보상받는 거 하나도 없다.
(심리적 보상이 좀 있을까나)
그러구서는 자기가 억울해서 물귀신처럼 물고늘어지는게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기 위해
군대를 미화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의 마찬가지다.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군대에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절반이고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 구실한다는 이야기가 또 절반이다.
그게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서 그러는게 아니고
한 사람 입에서 두 말이 나온다.

쓰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전자의 경우, (고생했다는 이야기) 자기 입장에서 얘기를 많이 한다.
후자의 경우, (군대갔다와야된다) 군대 다녀오지 않은 사람을 씹을 때 많이 한다.
나는 군대 가서 고생 직싸게 하고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손해를 봤는데
군대 안간 저놈(년)은 군대를 안갔다와서 저 모양이고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
이게 군대를 갔다온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이 갖고 있는 이중적 태도다.

쉽게 말해서 나는 그게 궁금한 거다.
대한민국 남성에게 있어서 군대란
지켜야할 성역인가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인가.
군삼녀라는 특정인을 비판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군복무기간 단축인가 여성의 군복무인가.
그런 거다.

군삼녀가 했다는 말,
군복무기간이 길어야 된다 짧아야 된다 단순히 그게 문제가 아니고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애가 생각없이 말한다,
그걸 이슈로 삼고 싶은 거라면, 나는 동조할 생각 없다.
수년전 PC통신의 여중생 같은 경우는 자기가 적극적으로 통신에 글을 올린 경우기라도 하지
얘는 길가다 방송카메라 보고 헤벌쭉 웃으며 물어보는 말에 생각없이 대답한 거밖에 없지 않나.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식의 인터뷰를 따서 국민의 의견인양 방송하는 방송국이 훨씬 생각없는 거지. (씨방새라던데 확인한 바는 없다)

추가로,
군대 보직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비교적 땡보직이었던 나같은 경우는 1년 지나니까 솔직히 더 배울 거 없더라.
아니, 내 밑에 쫄병 녀석은 오히려 보직이 꼬여서 나한테 1년도 못배우고 선임이 됐는데
군생활 잘만 했다더라.
그런 차원에서 군삼녀가 한 발언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군대 2년이면 배울만큼 배운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