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의 고등학교 이야기

2003년 10월 3일



모 사이트의 토론게시판에서 교육문제 관련 토론 중, 분위기 전환 차 올렸던 글인데… 오랜만에 찾아서 다시 올려봅니다.

제가 졸업한지 오래된 (한 십년?) 고등학교 얘긴데요,
미친개, 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학교마다 미친개는 다 있게 마련이라죠)
저희 선배 한명을 패다가 그 선배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답니다.
보통 선생님들은 학생을 패다가 쓰러지면 양호실로 보내거나 해야할텐데
미친개는 쓰러진 학생을 짓밟은 걸로 유명합니다.
뭐, 기술적으로 밟았는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미친개 얘기 하나 더.
복도에서 떠들었다는 이유로 미친개가 소리치며 쫓아오자
당황한 제 후배 한명이 그만 4층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말았습니다.
다리 하나가 부러졌는데…
미친개한테 걸리느니 다리 하나 부러지는 쪽을 택한 셈이 됐죠.

가가멜, 이라는 선생님이 또 계셨는데
이분이 하이라이트 공업(참고서 이름)을 집필하신 분입니다.
첫 수업시간에 모세가 십계명 들고 내려오듯 참고서를 들고 들어오셔서
이 책을 내가 썼는데 앞으로 많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죽어도 사야됩니다.
시험문제가 다 거기서 나오거든요.

가가멜 얘기 하나 더.
이 선생님은 나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애를 야단치다가 꼭 덧붙이는 말이
“니 에미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이겁니다.
아무리 후레자식이라도 이런 말 들으면 기분나쁘죠.
한번은 좀 막나가던 녀석이 이 선생님한테 걸렸는데
또 그 소리를 했답니다.
순간적으로 울화가 확 치민 이 녀석이
앞뒤 안가리고 걸상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물론… 내리치려고)
다시 정신이 번쩍 들자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는
도망치듯 교실을 뛰쳐나갔답니다.
문제는 학생이 자기를 내리치려다가 교실을 도망쳐나가자
가가멜 선생님이 그 학생 뒤를 쫓아가며 했던 말이죠.
“야, 농담이야 농담!”

가가멜 얘기가 하나 더 있군요.
서울대 등 명문학교는 학력고사에서 제2외국어가 필수인데
저희 고등학교는 고3 정규수업시간에 제2외국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를 지망하는 몇몇 우등생은
실업(공업,상업,농업 등)시간에 일본어 교과서를 펴놓고 자기공부를 하곤 했죠.
그런데 이 선생님이 자기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저희반 1등이었고… 지금 서울대 박사과정에 있는) 계속 고개를 수그리고 자기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으니까
너 왜 수업시간에 졸고 있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분명히 졸았다고 우기시더군요.
보다못한 옆자리 친구가 이 친구 안졸고 필기하며 공부하고 있었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가가멜 선생님이 회심의 일격을 날리시더군요.
“너는 임마 왜 수업시간에 옆친구나 쳐다보고 있어?”
반 학생 모두가 소리죽여 웃었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선생님이 한분 계신데
(본명이 워낙 재밌어서 별명이 없는 분입니다)
이 분 수업은 거의 시한폭탄이죠.
열심히 설명을 하시다가
“야, 근데 말야” 이 한마디만 나오면
그날 수업은 종치는 겁니다.
그때부터 정말 공부에는 하등 도움안되는
여자 얘기 드라마 얘기 연예인 얘기… 뭐 그런 걸로 나머지 수업시간이 채워집니다.
이게 수업시작후 40분쯤에 나올때고 있고…
심한 경우 들어오자마자 시작하신 적도 있다는…

이 선생님의 명언이 생각나는군요.
“얌마들아, (저희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여자들이 남자를 만나면
첨엔 오빠오빠 그러다가 나중에 (애낳으면) 아빠아빠 그러잖아.
오빠와 아빠 사이에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
순진무구한(^^;?) 저희들은 “자기” “당신” “여보” “그이”… 뭐 이런 상투적인 단어를 남발해봤습니다만
고두봉 선생은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습니다…

“멍청한 시키들…
‘아파’야 임마!”

오오~~~~~~~~~~~~~~~~~

그순간 교실을 뒤흔들던 그 짐승같은 남자고교생들의 포효소리…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듯 하네요.

특전사, 라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자기 특전사 나왔다고 무지하게 자랑하는데
야부리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뻥이 심합니다.
그 숱한 거짓말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너무 벅차서
이 정도로 해두죠.

역시 성함을 밝힐 수 없는 국민윤리 선생님이 계신데
수업시간에 절대로 학생을 쳐다보지 않고
상방 15도만 주시하십니다.
정말로, 학생들이 죄다 졸아도 전혀 모르고 (엎드려서 자지만 않으면)
열심히 수업하십니다.
물론 목소리가 작아서 맨 뒤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수업을 다 듣고 다 필기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반에서 1등하던 녀석도 포기한 수업을…)

미친개 투, 라는 선생님이 계신데
먼저 저희 고등학교를 나온 친형에게서 이미 안좋은 소문을 들었었습니다.
과연 제가 3학년때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시더군요.
2학년 모반 담임이셨는데
자기 반 반장을 성폭행했다는…
참고로 저희 학교는 남학교입니다. 남녀공학 아닙니다.

비루스, 라는 선생님이 계신데
몇년째 교실마다 똑같은 강의를 하십니다. 무슨 대본 읽는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어느 대목에서 농담을 한마디 던지고 웃는 타이밍까지 똑같습니다.
이 선생님은 조금 심한 케이스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렇기도 하지요.

선생님 얘기만 너무 했나요.
학생 얘기도 좀 하죠.
제 짝이었던 녀석은 다른 공부는 뭐 그저 그런데
수학 하나는 기갈나게 잘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전국적으로 치루는 모의고사가 있었는데
수학이 유난히 어려워서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에서 딱 두명만 만점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둘 중 하나가 그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이 형편없어서 반에서 등수는 10등 밖이고요.
그 친구… 나중에 지방대학 갔는데
나는 너 수학과 가면 좋을 거 같다고 그랬지만
취직 안된다고 공대 갔죠.
그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마무리를 짓죠.
(사실 3탄 4탄 계속 쓸 수 있습니다만… 너무 긴 것 같아)
저 졸업하고 몇년 있다가
저희 고등학교 재단 이사장님이 TV에 나오시더군요.
무슨 부동산 사기 혐의로 구속당했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우리학교 이름 나오니까 반갑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