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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영화시상식을 보며

2004년 12월 13일

옛날에는 무슨무슨 영화제 그러면 괜히 한 번 예상평도 써보고 시상 이후 상이 어떻게 갔네 저떻게 갔네 잘난 척도 해보고 그랬는데, 워낙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주제에 잘난 척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대충 그런 생활 접고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얼마전, 그런대로 굵직굵직한 두개의 영화시상식 –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는 청룡영화상과 MBC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영화대상 – 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벌어지는데, 어쩔 수 없이 + 자연스럽게 관심이 그리로 쏠려버리고 말았다.

먼저 어쩌다가 이런 굵직한 영화상이 모 개그맨 눈코입처럼 확 몰려버렸는지가 궁금해서 작년도 일정을 한 번 찾아보았다. 올해는 청룡영화상이 11월29일, 대한민국영화대상이 12월5일에 거행되었다. 그런데 작년에 개봉되었던 <올드보이>가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심사대상으로 올라 당당히 작품상을 거머쥐었는데, 청룡영화상에서는 <올드보이>가 이미 작년 심사대상에 올라 감독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조금 뭐랄까, 거슬렸다기에는 너무 건방져보이고 찜찜했다는 정도로 표현할까, 하여튼 그랬었는데, 작년 일정과 심사기준을 보니 어느 정도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작년에는 청룡영화상이 12월11일, 대한민국영화대상이 11월30일로 청룡영화상이 일주일 이상 늦는 일정이었기도 했고 심사기준도 대한민국영화대상은 2002년 10월1일 ~ 2003년 9월30일 개봉작으로 한 것에 비해 청룡영화상은 특별한 기준 명시없이 기냥 “당해년도”라고 얼버무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올드보이>가 여기 들어갔다 저기 들어갔다 할 수 밖에. (그나저나 요번 12월15일에 개봉하는 <역도산>은 내년도 청룡영화상에서 볼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영화대상이 왜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어졌는지, 청룡영화상은 왜 일주일 이상 빨라졌는지는 큰 상관없는 일이니 시상식 본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자. 앞에서도 말했지만 뭐 워낙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데다 안목도 별로 없는 인간이므로 누가 상을 받은게 잘했네 못했네 이런 소리는 안할란다. 다만, 절대 공정하다고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국가단위 영화시상식의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오래 봐온 시각에서 도대체 우리나라 영화시상식들은 왜 그 모냥들인지, 이런 이야기나 좀 할란다.

그보다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네… 간혹 나만도 못한 자칭 영화매니아들께서 “영화제”와 “영화시상식(영화상)”을 혼동하시는 안타까운 경우를 왕왕 발견하게 되는데, 영화제는 말 그대로 영화의 축제다. 칸느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뭐 이런 넘들은 국제영화제로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초청해서 한 자리에서 보고 즐기며 때로는 판매도 하고 홍보도 하는(이게 더 중요한 건가…) 이런 것들이 주목적이지, 그 영화들을 모아놓고 상 주고받는게 뭐 그리 대단한 거 아니다. (상 안주는 영화제도 얼마든지 있다) 물론 상을 받으면야 좋기도 하고 국제적인 지명도도 올라가겠지만, 간혹 상은 못받았어도 개막작이니 폐막작이니 뭐 이런 홍보문구를 들고 들어오는 영화들도 유심히 봐둘 필요가 있다는 거다. 다른 나라 넘들은 안그런다고 내가 딱부러지게 말 못하겠지만 뭔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영화제에서 상 받는 일을 무슨 올림픽에서 메달 따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굳이 한마디 하는 거다. 하지만 영화시상식, 영화상은 시상이 주목적이고 영화상영이나 판매 뭐 그런 거 전혀 없다. 연말가요대상이나 연기대상, 그런 거하고 똑같다는 말이다.

다 아는 이야기 혼자서 열심히 잘난 척 했으니까 주제로 들어가 보자. 우선 영화상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삐딱하게 TV보기> 카테고리에서 주절거리고 있는지부터 해명해볼까. 물론 TV로 봤으니 당연히 그렇기도 하지만 -_-; 내가 굳이 다른 카테고리가 아닌 <삐딱하게 TV보기>에서 이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름은 “영화상”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TV방송프로그램으로밖에 안보이더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거다. 모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행사가 있으니 방송국에서 카메라 들고가서 찍어서 내보내는 “실황중계”가 아니라, TV 방영을 당연전제로 하는 일종의 쇼로 보였단 말이다. 보였다기 보다 그냥 쇼라고 해도 큰 상관없을 것 같다. 아 물론, 아카데미 뭐 이런 것들도 TV방영이 주요한 수입원이 되니까 TV에 대해서 신경 많이 쓰고 그런다. 옛날에는 수상소감을 한 시간이나 한 사람도 있다던데 요즘은 시간 딱딱 맞춰서 오케스트라가 노래 틀어버리고 뭐 그러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하긴 뭐, 요즘같은 추세로 계속 간다면 아카데미 시상식도 변질되지 않는다는 보장 없다) 어디까지나 영화인의 축제라는 기본전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 거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시상식에서는 왜 비, 옥주현 같은 가수들이 나와서 생뚱맞은 노래나 불러대는 거냐 이 말이다. 왜 영화시상식에 가수 팬클럽들이 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무대에서 괴성 깍깍 질러대고 그러냔 말이다. 아니 뭐 물론, <서울시민의 밤> 이런 행사를 해도 가수 부를 수 있는 거 맞다. 요즘은 대학 축제에서도 유명가수 부르는게 뭐 대세라더라. 그런데 그런 행사에 가수를, 연예인을 부르는 이유가 뭔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아닌가? 이렇게 유명하고 삐까번쩍한 유명가수를 비싼 돈 들여서 모셔왔으니 졸라 많이 모여서 행사장 꽉꽉 채워주라 뭐 이런 거 아니냔 말이다. 그럼 영화상으로 말을 옮겨볼까? 영화상에 초청된 영화배우들이 가수 비, 옥주현 이런 애들 보고싶어서 그 행사장을 꽉꽉 메워주시나? 뭐 영화배우 중에서 가수 팬 없으란 법은 없다만 만약 그렇다면 이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니냔 말이다. 영화인의 축제에 영화인들이 뜻을 맞추어 모이는게 아니라 가수나 보러 온다면 말이다. 졸라 바쁜 영화인들 유명가수 초청하면 한두 명이라도 더 올까 해서 그런 가수들 공연 집어넣는거 절대 아니다. 썅 영화인들끼리 졸라 나와서 상 주고 상 받고 그러는 것만 보여주면 시청률 절대 안나오니까, 중간에 유명한 가수라도 집어넣어서 쇼타임을 좀 가져주자 뭐 이런 발상에서 한치도 발전 안한 거란 말이다.

기본전제가 이따우다 보니 시상내역도 영 메가리가 없다. 옛날에 대종상 이런 거 TV 중계하던 거 보면, 촬영상 음악상 이런 거 시상하면 수상소감도 없었다. 왜? 시청자들은 무슨 카메라 감독이나 영화음악가는 생판 알지도 못하는 넘들이거든. 그런 넘들이 뭐 상받고 좋아하는 건 별로 관심도 없거든. 물론 영화시상식의 꽃이라 하면 남녀주연상에 작품상 뭐 이런 것임이 분명하지만, 이게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라면 말야 촬영 의상 소품 이런 소소한 것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매우 당연하고 지당한 일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이번 청룡영화상 시상내역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알만한 작품/감독/주연/조연/각본 외에, 촬영/음악/미술/기술(이 막연하기 이를데 없는 “기술”이란 놈은 뭐냐?) 정도가 추가되고는 왠 인기스타상, 최고흥행상이 뒤를 잇고 있다. 최고흥행상… 인기스타상…이라. 솔직히 헛웃음밖에 안나오는, 생뚱맞기 이를데 없는 시상내역이다. 관객 많이 들고 인기 폭발하면 상준댄다 씨바. 내가 왜 씨바라고 하느냐 하면, 걔네들은 관객 많이 들고 인기가 하늘을 찌름으로 해서 자본주의의 꽃인 “쩐”을 두둑히 챙긴 놈들이란 말이다. 그런 놈들한테 뭐하러 상을 더 줘. 물론 작품이 좋고 연기가 좋으면야 다른 차원에서 상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야 너 인기 좋다며? 돈 많이 벌었다며? 옛다 상받아라” 이런 경우가 세상에 또 어딨냐고. 이게 무슨 히트상품 선정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히트상품도 무조건 많이 팔렸다고 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흥행상, 인기스타상을 주는 이유는 뭐 뻔할 뻔자 아닌가. 사람들이 많이 아는 영화, 많이 아는 배우가 시상대에 올라야 시청률에 조금이라도 도움 된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 거란 말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이 상이라는 게 왜 주고 받는 건지 회의가 생길 지경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방송국에서 대놓고 주최하는”, 고로 “누가 봐도 방송용 이벤트에 불과할” 대한민국영화대상이 청룡영화상보다 낫더라. 일단 인기스타상 최고흥행상 이런 거 없잖아. 아카데미를 벤치마킹 잘 한 탓인지 황정순 씨 모셔다가 공로상도 주고 말야. 애매하기 이를데 없던 “기술상” 대신 조명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뭐 이렇게 세분화도 해주고 말이지. 하지만 역시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는 한 대한민국영화대상의 종착역도 대략 뻔하지 않겠나. 특히나 이번 시상식의 후보작들을 보면 오히려 “우리는 이런 영화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영화상”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려던 탓에 <선택> <송환> 같은 마이너 다큐영화를 들러리세웠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차라리 상을 주던지 말야. 줄 것도 아니면서 후보작에는 뭐하러 세워놓나.

암튼 문제는, 그래도 대한민국 영화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대종상 시상식이 오랜 부정시비 끝에 일부 부정이 사실로 드러나버리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권위가 바닥을 친 지 오래 되어버렸고, 청룡영화상 헬렐레하고 있는 사이에 MBC가 과감하게 대한민국영화대상이라는 어마무지한 타이틀을 걸고 치고 나오는 모양인데, 결국 시상식의 난립은 전체적인 권위 추락이나 불러오지 별반 영화계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우습게도 현재까지는 가장 장래성 있어보이는 움직임이 방송국 주최의 대한민국영화대상이라는 사실인데, 다른 시상식들이 중계를 대행해주는 방송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반면 대한민국영화대상은 방송국에서 주최하니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