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루브르 박물관] 박물관이 된 궁전

2006년 11월 20일



어떤 건물인가?

최근 책으로, 영화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다빈치 코드> 덕분에 루브르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아진 모양이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루브르박물관 전시회도 열리고 있는 모양이고… (찾아보니 2006년 10월 24일부터 2007년 3월 18일까지란다) 물론 주제가 “박물관”이다보니 건물 자체보다는 그 건물 안에 들어가있는 세계적인 미술품/문화유산들이 더 관심꺼리겠지만, 여기서는 사이비건축쟁이로서 내가 직접 가본 몇 안되는 세계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루브르박물관에 대해서 철저하게 “건물에 대해서만” 떠벌려 보도록 하겠다. (생각해보니, <건축물이야기> 코너에 소개한 건물들 중 국내에 소재한 건물을 빼고는 내가 직접 가보고 쓰는 첫 번째 건물이 되겠다 – 쓰고 나서 가본 건물은 몇 있다.)

파리의 세느강변 리볼리가에 위치한 루브르박물관은 또하나의 파리 명물인 오르세박물관과 강을 건너 마주 보고 있는 사이다. 단순히 박물관, 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이 궁전의 규모가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전시장 면적만 6만㎡에 달하는데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는 무려 40만여점, 일반에게 공개되어 전시하고 있는 작품 수만 해도 3만5천여점이나 된다. 직접 이 너른 박물관을 두 발로 뛰어다녀본(절대 걸어다닐 여유가 없다) 경험에 의하면, 이 수많은 방 방 방들을 다 들어가서 눈으로 훑고라도 나오려면 최소한 한나절은 걸릴테고, 나름 조금 관심있게 보면서 사진이라도 한두 방씩 찍어주면서 구경하려면 하루로는 모자라다. 그 정도 규모다.

루브르박물관을 건축적으로 접근하려면 이 궁전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야한다. 첫 번째는 원래 궁전이었던 부분, 두 번째는 1980년대에 신축된 궁전 중앙부의 유리 피라미드이다. 고전양식의 건축물에 둘러싸여진 22m 높이의 유리 피라미드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루브르박물관의 상징이 되었다. 220m x 110m 크기의 나폴레옹 정원 지하를 활용하고 박물관의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된 이 유리 피라미드는 중앙에 큰 피라미드가 하나, 주위에 작은 3개의 피라미드가 있고 7개의 분수로 둘러싸여있다. 중앙의 피라미드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면 매표소와 안내소, 루브르박물관의 세 전시관인 쉴리관(Sully), 드농관(Denon), 리쉴리에관(Richelieu)으로 통하는 입구가 나온다. (그 외에 각종 회의실, 서점,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이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피라미드를 유리로 만든 덕분에 지하층에도 자연채광이 가능해졌고, 색이 없는 보통 판유리를 썼기 때문에 지하에서 루브르궁전을 올려보아도 자연색 그대로 볼 수 있다. (이야, 이러이러했단다, 라고 쓰지 않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유리피라미드 이야기는 그만 접고 다른 부분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 처형당했던 콩코르드 광장에서 동쪽으로 가면 튈르리 공원이 나온다. 왠지 금빛으로 번떡거리는 듯한 철문을 지나 튈르리 공원 안으로 들어오면 팔각형의 인공연못과 오랑주리 미술관을 볼 수 있고, (이상한 관람차도 보인다) 거기서부터 한참을 걸어들어가면 짝퉁 개선문 같은 문을 하나 볼 수 있다. 이게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카루젤 개선문이고, 그 앞에 펼쳐진 소규모의 정원이 카루젤 정원이다. (카루젤 개선문은 파리에 있는 세 개의 개선문 중 가장 작은 개선문이다) 카루젤 개선문을 지나치면 바로 나폴레옹 정원과 유리 피라미드, 그리고 루브르 궁전이 나온다. 나폴레옹 광장과 유리 피라미드를 ㄷ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의 루브르 궁전은, 중앙의 건물과 좌우의 건물이 상당히 비슷하고 자세히 보면 좌우의 건물은 서로 대칭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별다른 의미가 있다는 소린, 못들어봤다)

먼저 언급한 루브르 박물관의 3관은 루브르와 관계가 깊은 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쉴리(Sully)와 리쉴리에(Richelieu)는 프랑스의 재상으로 루브르의 대규모 증축을 책임졌던 사람들이고,(리쉴리에는 뒤마의 <삼총사>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다) 드농(Denon)은 루브르의 초대 관장이며 나폴레옹의 뒤를 따라가 이집트의 수많은 유물을 파리로 가져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떻게 지어졌나?

원래 루브르박물관의 터는 1190년 프랑스 국왕 필립 오귀스트가 성채를 쌓고 재화나 무기 등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루브르 Louvre 라는 이름이 요새/성채를 뜻하는 라틴어 루파라 Lupara에서 비롯된 것이다) 1500년대 프랑수아 1세 이후 이곳이 왕궁으로 조금씩 탈바꿈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도 제대로 된 궁전이라기 보단 왕이 외국에서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들(당시는 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품)을 수집/전시해놓는 곳이었다고 한다. 1563년 앙리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궁의 서쪽에 튈르리궁전을, 앙리4세 시대에 ‘물가의 장랑’을, 루이13세~14세 때에는 남관, 북관, 동관을 증축하였다.

그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전에 밀려 18세기에는 거의 버려진 궁전이었고, 덕분에 프랑스 혁명 이후 민중들에 의해 접수(?)되어 1793년 프랑스 공화국에 의해 박물관으로 공개되었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후 잠시 황제의 집무실/사저 역할을 한 적도 있지만, 나폴레옹 1세는 박물관의 전시품목을 늘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나폴레옹 3세는 거듭된 증축공사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을 총면적 약 160,106㎡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로 완성시켜놓았다.

유리피라미드는 앞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1981년 루브르궁 전체를 박물관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 정책에 의해 1983년 착공되어 1989년에 완공된 현대건축물이다. 설계를 담당한 사람은 중국계 미국 건축가인 I.M.페이(먼저 소개했던 뱅크 오브 차이나타워의 설계자)로, 베르사이유의 정원을 설계한 르노르트(루브르궁 앞의 튈르리 공원도 설계했다)의 ‘풍경적 정원’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말했단다. 하지만 에펠탑이 지어질 당시에도 파리 시민들이 쌍수를 들어 반대했듯 이 유리 피라미드도 “파리 시민의 90%는 반대했을 것”라는 페이의 언급처럼 엄청난 논란에 시달려야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나리자’나 ‘밀로의 비너스’만큼이나 루브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으니… 다만 최근 루브르의 연간 입장객이 예상보다 너무 많아져 입구 확장을 위해 이 피라미드를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파리 여행 기간 동안 루브르를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바깥에서 건물 구경만 했고, 두 번째는 낮에는 베르사이유 구경을 하고 와서 야간 개장하던 루브르에서 전시품 구경을 했었다. 두 번째 방문 시에는 (그래도 문 닫을 때까지 4시간 가량 시간이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서 유명한 작품 위주로 대충대충 구경하긴 했지만 덤으로 루브르의 야경도 볼 수 있었다. (루브르의 야경, 에펠탑이나 개선문 못지 않다) 베르사이유를 보고 왔더니 건물의 모습이나 규모가 많이 시시해보였던 것도 없지 않았는데, 야경을 보고 났더니 그런 생각 싹 사라지더라.

처음 루브르궁전이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야, 쓸모없어진 건물 하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구나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실은 루브르궁전이 오래전부터 박물관으로서 기능해오다가 그것이 왕의 소유에서 민중의 소유로 넘어왔을 뿐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어떤 식으로 이 시대에 맞게 활용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순리대로 풀어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