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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홍콩의 자랑

2004년 2월 17일



어떤 건물인가?

혹시 홍콩영화를 보거나 홍콩을 다녀온 사람들이 찍어온 사진에서 어딘가 모르게 독특하게 생긴 건물을 본 기억이 없으신지? 그냥 뾰족하게 생긴 것이 무슨 탑 같기도 하고, 이무기가 또아리를 풀면서 승천하는 것처럼 어딘가 비틀려보이는 느낌도 주는 그런 요상망측한 건물을 보고 이게 뭘까? 라고 궁금해하셨다면 지금 그 궁금증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름은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Bank of China Tower 인데 중국은행, 뱅크차이나, 차이나뱅크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70층에 높이 369m로 한때 홍콩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측면을 보면 잘 감이 안 올지도 모르지만 이 건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태의 육면체 건물이 아니라 높이가 서로 다른 4개의 삼각기둥이 합쳐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삼각기둥의 끝부분(꼭대기)은 다시 삼각형 모양을 이루듯 사선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4층의 기단 위로 항구쪽을 향한 북쪽 부분은 7층부터 17층까지 삼각형 모양의 아트리움 라운지를 형성하고 있고, 서쪽 부분은 38층, 동쪽 부분은 51층까지 지어져있다. 빅토리아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남쪽부분이 가장 높은 부분으로 지상 70층에 이른다. 이 건물이 지어졌을 1990년 당시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1,000ft를 넘는 건물로는 세계 최초였고 (피트 환산높이는 약 1,209ft)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임과 동시에 미국이 아닌 나라들 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나, 1992년 홍콩에서 센트럴 플라자가 세워지면서 모든 분야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이 건물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미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구조적, 기술적으로도 탁월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내부에서는 기둥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 삼각기둥의 꼭지점 부분(5군데… 왜 5군데인지는 생각해볼 것)에 철골-콘크리트 복합 기둥이 있을 뿐이므로 건물 내부에서는 기둥을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대신 내부에 대형 브레이스(지주대? 뭐 대충 그런 식으로 번역 가능. 보-대들보와는 다르며 건물의 옆면에 X자 모양으로 보이는 그것이다)가 있어 횡하중과 연직하중을 기둥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구조는 구조적 효과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공사비의 절감도 가져왔다고 한다.

어떻게 지어졌나?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의 설계자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i.M.페이로, 1917년 중국에서 태어났으나 18세부터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여 보스톤, 뉴욕 등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페이에게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의 설계를 맡긴 곳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은행으로, 1983년 홍콩에 자기네 은행 지사 건물을 짓기 위해 특별히 중국계 설계자를 찾은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홍콩이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중국은행 측은 이 건물을 통해 홍콩 주민들에게 중국 본토의 온화한 인상을 심어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또한 고층건물을 통해 중국의 미래, 포부를 보여주고도 싶었다고 한다.
1985년 4월 18일에 건축이 시작되어 1990년 5월 17일에 공식적인 오픈을 했는데, 원래 입면에서의 브레이스들을 순수한 X자 형태로 만들려고 했으나 중국에서는 X자 모양이 죽음을 상징한다며 꺼려 다이아몬드형태로 약간 변형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브레이스는 대나무의 성장마디와도 연관지어보는데, 중국인의 활력, 희망을 쑥쑥 자라는 대나무의 형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페이가 그랬단다. 직접 들은 건 아니고-_-;

시대의 한마디?

홍콩, 이라고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몇가지 이미지가 있다. 주로 고등학교 시절 홍콩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이미지들인데 지금은 세월이 지나 사라진 것도 있고 (아파트 바로 위를 날아 착륙해야했던 홍콩국제공항이 단적인 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다) 예전만큼 대표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는 것들도 있다. 1990년에야 비로소 완공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는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알게 된 홍콩의 또다른 면이었다. 센트럴 프라자, 진마오 타워 등 중국의 숱한 마천루들의 표본이며 시발점이 된 건물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현대적인 고층건물의 본격적인 미학에 감탄하게 했던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솔직히 시어즈타워나 세계무역센터 같은 현대적 마천루들은 그냥 높다란 육면체지 별로 맘에 든다는 생각 안해봤다) 농담삼아 덧붙이자면, 우리가 흔히들 고층건물을 보면서 저게 전쟁이 나면 마징가로 변하네 태권브이로 변하네 우스개삼아 말하곤 하는데,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야말로 정말 뭔가로 변신할 법 하게 생기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