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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 일기

2007년 2월 8일

그러니까 벌써 8~9년이 된 이야기인데,
모 백화점 전산실에 있다가 어케저케 묘한 인연으로
그 전산실과 모종의 썸씽이 있던 벤처회사의 인터넷사업부로 이직을 한 뒤
9to6라는 직장인사이트를 기획하고
거기서 <봉대리일기>라는 연재물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내 이름을 따서 주인공이 ‘백대리’였는데
(제목은 ‘투명인간 백대리’였다)
당시 영화동호회 회원이던 권봉X 씨가 대리를 막 달았다고
동호회 내에서 봉대리 봉대리 부르던 것에 착안해서
<봉대리일기>로 바꾼 거였다.
(참고로 봉대리는 그후 봉과장 시절을 거쳐 현재는 모 벤처회사의 봉책임-_-으로 근무중인데
하도 오래 봉대리라고 불러댔더니 몇몇 오래된 동호회원은 그분의 본명을 까먹고 실제 성이 봉씨인줄 착각하고 있음)

같은 상황을 놓고 부하직원(대리)과 상사(부장)가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걸 일기형식으로 풀어보자, 가 최종기획안이었고
나름 9to6라는 사이트에서 간판컨텐츠로 대접받았다.

LG텔레콤에서 직장인대상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이 컨텐츠를 서비스해도 되겠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고
(회사차원에서 수락해 사이트 이름걸고 3개월인가 서비스되었다. 나한테 떨어진 돈은 물론 한 푼도 없고)
취업사이트 인크루트에서 역시 우리와 제휴하여 <봉대리일기>라는 제목으로 동시에 연재되기도 했었다.

당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사장이 주변 사람들(주로 거래사)에 물어보면 <봉대리일기>를 포함 몇몇 연재물(내가 다 쓴 건 아니다)이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오기도 했고
회사 내에서는 저 인간(그러니까 나) 아직 사회경험 1년밖에 안되는 친구가 저렇게 직장생활(의 안좋은 면)을 리얼하게 그리는 걸 보니 대단하다, 혹은 모 백화점(예전직장)이 정말 대단한 곳이거나… 뭐 이러질 않나,
이런 대목에서는 나한테 입에 발린 말을 할 리가 없는 몇몇 지인들이
수 년이 지난 후에 <봉대리일기> 꽤 재밌었는데 아쉽다, 뭐 이런 소리도 하고…

문제는, 정작 작가인 나는 매일(정확히는 일주일에 4~5번 연재했다. 주말빼고, 내 맘대로 주중에 아무때나 한 번 정도 빼먹으면서) 써야되는 <봉대리일기>가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재미없었다는 점.

원래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매일(다시 말하지만 정확히는 매일이 아니지만) 뭔가 재밌는 사건을 만들어서 그걸 일기형식으로 풀어야된다는게 말처럼 쉽지도 않았고 (말도 별로 안쉬운 거 같다)
결정적으로 내 성격이 왠만한 일에는 웃거나 재밌어하지 않는 편이라 내가 궁리해서 만들어낸 에피소드들이 별로 맘에 들지도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어영부영 1년 넘게 연재를 하다가 사이트를 접으면서 <봉대리일기>도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물론, 내가 썼던 전편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내가 쓴 글 다시 읽기 싫어서 퇴고도 안하는 습성을 가진 놈이 그걸 다시 들춰서 읽어보거나 할 리가 없었고.
예전에 썼던 다른 글들은 홈페이지에 다시 올린 것도 있고 하지만
<봉대리일기>는 쓰면서 워낙 재미가 없었던 탓에 내 홈페이지에 올릴 생각도 당연히 안했다.

그러다가 엊그제, 우연히 구글링을 하다가 봉대리일기 중 한편을 누가 퍼간 걸 다시 퍼간 웹페이지를 봤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니
오래 전에 쓴 글이라 지금과는 확실히 어투나 문장구성도 많이 다르고
(작가가 아직 어리다,는 느낌이 가장 강하게 왔다)
사이트 성격상 비속어를 일부러 많이 넣어서 그런지 당시 유행하던 PC통신 유머글 느낌도 좀 나더라.
내가 이렇게 글을 쓰던 시절도 있었군, 하며 나름 재밌게 읽었다.

그러고나니 갑작, 옛날에 썼던 <봉대리일기> 전편을 죽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오랜만에 <봉대리일기>를 다시 읽다보니, (뭐 나름 기백이 창창하던 초창기에 쓰던 글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억 속에 있던만큼 재미없지는 않은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하여 홈페이지 귀퉁이를 하나 잘라서 <봉대리일기>를 다시 올려놓으려고 구상중.
읽다보니 소재가 없어서 짜증내면서 썼던 글, 내가 느끼기에 재미가 없었던 에피소드로 억지로 (말장난만 잔뜩 집어넣어서) 썼던 글 등등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것에 간단한 멘트도 포함시켜서 올려놓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한 편씩 다시 읽어보며 멘트 달아 올릴 생각이므로 한꺼번에 올리기는 힘들 것 같고
이번 주중부터 시작해서 되는 대로 조금씩 올려볼 생각.

그냥 잡문코너에 포함시켜야되나 봉대리일기 섹션을 따로 빼야되나 고민중인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