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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 반전이 영화의 전부?

2000년 5월 10일

나는 영화 막판의 반전을 좋아한다. 추리소설을 어려서부터 읽어와 몸에 붙은 습관(?) 탓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악! 소리를 내면서 상황을 뒤집어엎어버리는 영화, 그것도 내 예측을 철저하게 빗나가는 영화들을 개념없이 좋아한다.

숨막히는 반전 –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영화가 몇편 있다. <침묵의 목격자>(제목이 확실치 않다), <프라이멀 피어>, <유주얼 서스펙트> 등이다. (본인이 영화 매니아가 아니다보니 이 정도밖에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식스센스>는 지금까지 열거한 영화들보다 이상이다! 라는 격찬(?)을 받으며 라스트씬의 반전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뭐 그것까지는 좋다.

영화 개봉 당시를 생각해보면, 모든 관심은 미국 개봉당시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던 그 마지막 장면! 마지막 장면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가지 않아 두번 세번 보았다느니, 그 바람에 흥행성적이 가파르게 올라간다느니 하는 얘기들은, <유주얼 서스펙트>에 나오는 케빈 스페이시의 변신장면(?)에 필적할만한 반전이 나온단 말인가, 하는 기대감을 조장하기에 충분했다.

원래 삐딱한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어쩌구 하면 그걸 예측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본인이 바로 그렇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저런 리뷰를 읽어보았다. 그 결과 나는 결론을 내렸다.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라고.

그 결론이 나온 경로를 밝히면, 모든 <식스센스>의 리뷰 첫머리에 정신과 의사인 브루스 윌리스가 한 환자에 의해 복부에 총을 맞는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런 식의 설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총을 맞았는데, 왜 그 다음 설명이 없이 막바로 몇년 후로 넘어가는가. 그리고 분명히 영화의 기둥 줄거리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소년’과 ‘정신과 의사’의 교감일텐데 치료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가 영화 초반에 난데없는 총알을 맞을 이유가 무엇인가.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험한 직업임을 알려주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는 마치 자신의 무성의한 치료로 앙심을 품고 자신을 죽이려한 환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브루스 윌리스가 소년의 치료에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소년이 치료를 무성의하게 해준다고 총을 들이대지도 않을텐데.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죽었음을 암시하는 사전 포석이라는 것밖에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소년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유령이라면… 그 이상 확실한 반전이 어딨겠는가? 게다가 어느 신문에 실린 “브루스 윌리스마저 놀라버린 마지막 장면…”이라는 문장을 보면, 브루스 윌리스는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유령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여기까지 예상하고 나는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어디까지 맞았나 볼라고.

영화 보는 내내 나의 천재성에 몸을 떨어야했다.

잡스러운 자기 자랑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앞서 말했지만 다시 강조하기 위해 되풀이하는데, 내가 그 “예측 불가능한 장면”을 추리해낼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첫번째 장면 때문이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총을 맞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을 볼 때까지는 왜 저런 장면이 삽입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내가 처음 브루스 윌리스의 죽음을 예상하고도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은, 첫번째 장면이 혹 영화 중간에 다른 내용과 연관성을 가질 경우 내 추리의 근간이 흐트러지기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괜한 회상씬으로 중간중간 삽입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필연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첫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 즉 브루스 윌리스가 총에 맞는 장면과 유령임이 밝혀지는 장면, 이 두 장면을 확 빼버리자. 덩달아 중간중간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임을 암시하는 장면도 빼버리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줄거리가 성립한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유령을 볼 수 있는 소년과 그를 주변에서 살피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한 소녀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고, 이제 소년은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영화 된다. 다만 문제는 어딘가 흔해보이고 밋밋해보인다는 점이다.

자! 영화를 밋밋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의사 죽여! 유령으로 만들어! 그리고 영화 막판에 충격을 주기 위해 유령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설정해! 갑자기 주인공이 유령이다! 그러면 설득력이 없으니까 처음에 총맞는 장면도 집어넣어! 이렇게 탄생한 것이 마지막,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 오열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이었다.

왜 이 점을 지적하냐 하면, 내가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임을 짐작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두 개의 줄거리로 따로 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령을 보고 무서워하는 소년의 이야기와 별도로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임을 충분히 암시해주려는 스텝들의 노력이 헛바퀴처럼 계속 어긋나고, 돌출되고, 삐꺽거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령을 볼 수 있는 소년이 이제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어머니와 화해하는 이야기와, 어딘가 모르게 방황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이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나쁘지는 않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의 능력은 박수를 쳐줘도 모자라다. 다만 영화의 사실상 기둥 줄거리가 너무나도 독특하고 뛰어난 마지막 5분에 파묻혀버려, 도대체 감독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했는지 한참을 심사숙고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기분나빠서 딴지를 건 것뿐이다. 영화는 반전만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