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003년 12월 24일



어떤 건물인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연주곡으로 귀에 익은 이름일테고, 좀 들어봤다는 사람들에게는 “유럽의 마지막 이슬람식 건조물”이라는 수식어로 역시 귀에 익은 이름일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그라나다 지역에 있는 궁궐로 약 13~4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붉은 성”이라는 뜻이라니까 알함브라 궁전, 이라고 부르면 의미가 중복되는 것 같지만 일단 익숙한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자.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건물이라기보단 성채(요새?)에 가깝다.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건물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왕궁과 요새(알 카사바), 정원(헤네라리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성벽의 길이는 약 2km에 달하고, 궁전의 폭은 740m, 면적은 220㎡ 정도라고 한다. 먼저 왕궁을 놓고 보면, 우리가 보통 이슬람식 건물이라고 하면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이슬람성당인 <모스크> 등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처럼 “둥근 지붕”과 “화려한 외벽” 뭐 그런 것들일텐데, 알함브라는 그런 것과 좀 거리가 먼 편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특징은 웅장한 건물(요새)의 외관과 아기자기한(?) 내/외부 디테일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슬람식 건물에 대한 선입견이 심한 사람이라면 실망하기 딱 좋은 외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 두세 시간 잡고 건물 안을 꼼꼼하게 둘러보면 신기하게 볼만한 것들이 참 많은 건물이니 외관만 보고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이슬람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모자이크 타일 등이 외관에서의 실망감(?)을 상당히 상쇄시켜주고, 특히 문양의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높은 종유석 천장의 웅장함과 섬세함에도 한껏 놀랄 수 있다. (뭐 안놀랐다고 나한테 따질 필요까지는 없고…)

왕궁의 바깥은 수많은 연못과 분수로 구성되어있는데 무어식 수로건설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연못이 있는 곳이 ‘미루트의 파티오’라 불리는 곳으로 주거 및 알현장소 등으로 쓰였다던 ‘대사(大使)의 집’과 연결된다. 그곳을 지나면 ‘사자의 파티오’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12궁도를 대표하는 열두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조그만 분수대는 천상에 있는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분수대를 142개의 하얀 대리석 기둥이 빙 둘러싸고 있는데 이 또한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왕궁을 지나면 약간 뜬금없는 르네상스식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 스페인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 왕조를 몰아낸 후 지은 건물로 까를로스 5세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어질 당시에는 이슬람 궁전의 한가운데에 르네상스식 건물을 짓는다는 대단한 상징성이 있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아랍미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네라리페라고 불리는 정원은 뭐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만큼 크지는 않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곳이고, 서쪽에 있는 요새 알 카사바의 탑 꼭대기로 올라가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알함브라-붉은성-라는 이름은 알 카사바의 외벽이 붉은 색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떻게 지어졌나?

서기 711년부터 스페인 지역을 지배해왔던 무어인들의 이슬람 왕조가 1236년에 수도 코르도바를 그리스도교도에게 빼앗기면서 후퇴해온 곳이 바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천연요새 그라나다였다. 이곳에 정착하게된 이슬람인들이 나스르 왕조의 새로운 수도로 짓기 시작한 건물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인데, 13세기 후반부터 계속 증축되고 개수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왕궁이 완성될 당시 왕이었던 무하마드 13세는 “너희(백성)가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알함브라를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은 1492년에 그리스도교도에게 패해 스페인을 물러나게 되자,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스페인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스페인이 그리스도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도 파괴되거나 하지 않고 계속 보전돼왔던 이 궁전은 18세기 무렵에 잠시 훼손되기도 했으나 19세기 이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19세기말의 작곡가이며 기타연주자였던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한 뒤 그 감상을 담아 작곡한 노래가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이제는 마치 알함브라 궁전의 주제곡처럼 되어서 어떨 때는 알함브라 궁전 앞에서 이 노래를 틀어주곤 한다고 한다. (정동진에서 드라마 <모래시계> 주제곡 틀어주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심 되겠다)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려면 당일날 가면 헛탕을 칠 수도 있고 미리 예약을 해야된다고 할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고 하는데, 사실 첫인상이 그리 별 거 아니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이 요새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고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노래가 갖고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관광 수입 중 일정부분을 타레가의 유족들한테 나눠주는 것도 제법 괜찮은 생각 같은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