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
진의 대장으로 조서를 받아 오와의 국경을 지켰는데 군기가 엄숙하고 인의로써 다스렸다. 오장 육항과 비록 대립된 자리에 있었으나 서로 지기가 상통하여, 늙어 자리를 물러나도록까지 서로 경대하였다. 위독하자 진제 사마염이 친히 그의 병석을 찾아 위로하였으며, 죽은 뒤로는 태부를 추증하고 거평후를 봉했다.
육항
동오의 중신. 진동장군으로 강구에 둔치고 있을 때, 당면의 적장인 양호와는 지기로 사귀었던 때문에, 치라는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벼슬이 깎이어 사마로 되었다. 후일 병으로 죽었다.
삼국지를 제법 읽었더래도 양호와 육항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국지의 거의 끝에, 그것도 기껏해야 대여섯 페이지에만 등장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미
촉한은 망해버리고 위의 조씨도 멸망하고, 진과 오, 두 나라만 남아서 대치하던 시기에 두
나라의 국경을 지키던 두 장수였다.
이 정도 프로필이면 우리는 제갈량과 사마의, 강유와 등애, 관우와 조인, 관우와 여몽 등 국경을
맞대고 대치하던 삼국지의 명장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양호와 육항은 그 몇 페이지 등장하지
않는 중에서도 칼 한 번 맞대지 않았다. 오히려 육항은 양호에게 술을 선물하고, 양호는 육항에게
약을 지어 건네주는 등 눈꼴시는 짓꺼리만 골라서 한다.
(참고로 양호와 육항이 서로 대치하기 시작한 해가 273년. 촉한이 멸망한 지 10년만이고, 오가
멸망하기 7년 전이다)
결말을 향해 빨리 달리자!!!
양호가 처음 육항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전에
서릉을 치러왔을 때 우리 장수 보천과 장사 수십 명을 베었으나 내가 구해내지 못했다. 이 사람이
장수로 있을 동안에는 우리는 다만 굳게 지키고 있다가 그들에게 변이 생길 때 비로소 도모해서
취할 것이다.” 거렇다면, 말로만 명장 명장 소리를 듣는 육항이 친히 군사를 몰고 진나라
땅 서릉을 공격해서 항장 보천을 베어 죽이는 스펙타클한 격전의 현장이 있었다는 얘기다.
(정사에 따르면 이것이 272년 11월이라고 한다) 그런데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에서는 (굳이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국내 판본 중에 제갈량 사후의 줄거리가 가장 축약되지 않고
완역해놓은 판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나라 손호가 제위에 오르고, 사치를 일삼다가,
점쟁이의 말을 믿고 위를 치겠다며 진동장군 육항을 강구에 둔병시켰다는 얘기밖에 없다. 271년에
삼국지의 주연급이라면 주연급인, 비록 안락공으로 지위가 격하되었으나 한때 촉한의 황제였던
유선이 죽었는데 그 얘기 한마디 안해줬을 정도니, 저자의 판단에 “별 것 아닌” 육항의 서릉 공격
따위는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었나보다. 다만 양호와 육항의 국경을 넘은 우정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킬 뿐인데, 그나마 몇 페이지 할애해주고 휘딱 육항을 강등시키고 양호를 병사하게
만들어 두예의 오정벌로 발빠르게 넘어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인기가 떨어지는 연재소설을 빨리
끝마치고 싶은 작가의 심정이랄까, 그런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그나마…
별루 재미는 없지만, 그나마 두예의 오 정벌은 제법 격전적인 묘사가 나온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대결하고, 관우와 조인이 맞서는 그런 흥미진진함은 없지만 저자가 삼국통일의 마지막 과정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정성을 들여준 셈이다. 하지만 양호, 육항, 두예라는 인물을 잘만 활용했더라면,
막판 몇 페이지를 다시 한 권으로 묶일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꾸며내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 문제 아닌가. 육항의 서릉 공격을 집어넣되 더욱 흥미진진하게 묘사함으로써 새롭게
오나라의 군세를 진나라가 실감하게 되고, 도독인 양호를 급히 양양으로 파견하여 그에 맞서게
했으나 두 장수의 인품이 너무나 출중하여 그 속에서 아름다운 우정을 맺게 되는 바람에 서로
공격을 망설이게 되자 육항은 억울하게 강등되고, 양호가 기회를 틈타 오를 노리다가 안타깝게
병사하고마는 이야기. 그걸 그렇게 흥미롭게 써내기 힘들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