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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와 종회의 죽음

1999년 12월 19일



등애

의양 사람으로 자는 사재(士載). 말을 더듬어 “애애”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다. 장수로서의 그릇임을 안 사마의가 발탁했다. 촉한과 싸울 때 교묘하게 전략을 써서 적도성의 포위를 풀고 왕경 등을 구해내었다. 전후 여러차례 촉한 정벌에서 강유와 좋은 적수로 싸웠고, 뒤에 종회와 길을 나누어 검각의 험한 길을 넘어 성도를 함락시키고 후주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종회가 시기하고 사마소가 의심하여 결국 붙잡히고 낙양으로 호송되는 도중 옛날 수하 전속의 손에 죽었다.

종회

영천 장사 사람으로 자는 사계(士季). 태부 종요의 아들로 장재가 있어 하후패는 촉한에 항복했을 때 그를 일러 훗날 반드시 촉한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등애와 길을 나누어 촉한을 쳤는데 거짓으로 항복한 강유에게 여러 가지로 농락당하고, 뒷날 등애를 쳐없앤 뒤 중앙에서 자신마저 멸하려는 것을 알자 강유의 권고로 모반하였다가 이루지 못하고 난전을 맞아 죽었다.

등애와 종회. 이 두 사람이 바로 삼국지 팬들의 영원한 모국, 촉한을 멸망시킨 장본인들이다. 등애는 강유가 늘 치고나오는 기산을 지키고 앉아서 강유의 위벌을 번번이 막아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용을 겸비한 장수로 젊은 나이에 촉한을 벌하는 큰 공을 세웠는데… 요상하게도 촉한을 멸망시키자마자 차례차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등애, 종회, 그리고 여몽

무엇이 이상한가 하면, 종회와 등애 말고도 비슷한 길을 걸었던 젊고 지용을 겸비한 장수가 또 한 명 있기 때문이다. 바로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함락시킨 오의 용장 여몽이다. “괄목상대”라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한 여몽은, 관우를 죽인 지 얼마 안되어 관우의 귀신이 씌워 죽는다. 물론 이것은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의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여몽이 그저 병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알려져있다.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다. 관우/장비를 차례차례 잃은 유비가 제갈량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군을 이끌고 오를 정벌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촉한이 참패하고 결국 유비는 성도로 돌아와보지도 못하고 백제성에서 죽고 만다. 그대신 소설 속에서는 관우/장비의 두 아들 관흥/장포가 맹활약하며, 관우와 장비의 원수라고 할만한 장수들(반장, 마충, 범강, 장달, 미방, 부사인 등)을 모두 그 들의 손으로 원수를 갚고 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이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최소한 반장은 그 후로도 오나라에서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뭐 미비한 장수들이므로 연의의 저자가 “독자들의 심경을 고려하여” 원수갚음을 마무리지어주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등애와 종회는 주연급 조연? 조연급 엑스트라?

다시 얘기를 처음으로 돌려보면, 삼국지 후반부(아주 최후반부가 되겠다)에서 가장 큰 사건인 촉한 멸망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촉한 멸망과 동시에 너무나도 신속하게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 수상쩍기 이를데 없다. 아직 여타 정사의 기록에서 등애와 종회의 최후가 연의와 다르다는 증거는 찾아낸 바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찾으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러나 많이 양보해서 등애와 종회의 실제 최후가 연의와 비슷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두 명의 죽음이 마치 여몽이나 반장, 마충의 예처럼 저자의 감정이 개입된 최후를 맞이한 것 같다는 심증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그 바람에 등애와 종회, 두 사람은 삼국지 후반부에서 주연급 조연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조연급 엑스트라로 전락해버렸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었다는 사람들 중 태반이 그 이름조차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