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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기억이 지워져도…

2006년 11월 21일

미리 경고하는데 영화를 안본 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이터널 선샤인>을 본 지는 좀 됐다. (좀이 아닌가. 1년이 다 돼가는걸) 원래는 전혀 볼 생각이 없는 로맨틱코미디류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던가 뭐라던가 하는 바람에 볼 생각이 났더랬다. (각본이 탄탄한 영화는 또 놓치기 싫은 욕심이 있어서…) 하지만 게으른 탓도 있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도 않아서 홈페이지에 이 영화를 놓고 뭐라 끄적일 생각은 없었는데, 얼마 전(생각해보니 이것도 얼마 전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오래 된 느낌이… 2주가 지났구나) <환상의 커플>이라는 TV드라마를 보다가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사를 듣는 바람에 이렇게 주절주절하게 되었다.

평소 내 성향대로 마구 써갈기다보면 이야기가 드라마쪽으로 한참 흘러가버릴 소지가 다분하므로 요점만 빨리, 짧게 쓰겠다. <환상의 커플>에 등장하는 나상실(원래는 안나 조)은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자신이 원래 부자집 마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가난뱅이(?) 장철수를 좋아했던 촌뜨기인 줄 알고 있다. 그래도 기억 저 밑바닥에는 싸가지없던 귀부인 시절의 기분이 남아있는지 “잘못 주입된 기억”을 계속 부정하는데, 티격태격하면서도 어쨌거나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는 장철수에게 결국 사랑을 느끼게 되자 이런 대사를 날린다.

“아무래도 얘(가슴)는 기억이 돌아온 것 같아”

(<환상의 커플> 이야기는 이제 끝) “머리로 하는 사랑”과 “가슴으로 하는 사랑”의 차이,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데, 하다보면 그렇게 될 것 같다-_-. “기억”, 특히 “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영화는 상당히 많이 있었고, 이런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기억과 함께 사랑도 날아가버린다는 상황 설정이었다. 뭐, 당연한 거겠지. 사랑하던 사람이 앞에 있어도 누군지를 모르는데, 그 사람을 어케 사랑하겠는가 말이지. 그런 덕분에 어떤 놈은 결혼도 두 번씩 하고, 제 정신이 들고 나서는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고민도 해야되고, 요렇게 이야기를 무궁무진 풀어가기 좋은 것이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였던 거다.

<이터널 선샤인>은 이런 기억상실증(?) – 병은 아닌데 – 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랄까, 하여튼 그런 식의 접근을 보여준다. 과학의 힘을 빌어 필요한 기억만 지워버리는 모 회사와 그 회사에 얽힌 두 남녀의 이야기. (얽힌 걸로 따지면 다섯이어야 하나…-_-) 일단 발상부터가 남달랐던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기억이 지워지는데 성공하고 서로 헤어질 꺼야, 아니야 결국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다시 사랑하게 될 꺼야… 요렇게 이분법으로만 결말을 예측했을 관객들에게 전혀 예상 못했으면서도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제3의 결말을 내놓는 수완을 발휘한다. (약간의 메멘토식 기법을 사용해서) 그 오묘한 결말을 한두 단어로 풀어놓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최근에 술만 좀 작작 먹었어도…) 그냥 상투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려다보니 앞서 말했던 “가슴으로 하는 사랑” 어쩌구가 나오고 만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한다” 정도가 될라나.

…라는 식으로 이 글을 맺어버리면 <이터널 선샤인>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인터넷 홈페이지들에 곱게 써내려간 영화평들과 뭐가 다르겠나. 꼭 뭔가 남들과 다른 말을 써서 잘난 척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남들 다 하는 말을 뭐하러 굳이 내 홈페이지 용량 잡아먹어가며 올려놓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뻔한 이야기하려고 <환상의 커플>까지 들먹여가며 글을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라고 써놓고 나니 남들 다 하는 이야기 써놓은 글도 제법 있기는 하다만,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야한다)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영화의 두 주인공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극적인 재결합 – 사실 영화 초반에 이미 다 까발려놓은 거지만 – 을 보면서 그 수많은 관객들이 “아 쓰바, 역시 사랑은 위대해서 기억을 지우는 것만으로 지워지지 않는 거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버렸다는 점이다. 그럼 아니라는 말이냐고? 당연히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따져보자. (오랜만에 써본다 이 단어. 한창 날이 서있을 때는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던 말이었는데)

물론 영화 전반에 걸쳐서 “기억으로 사랑은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기는 한다. 각본을 쓴 카우프만도, 연출을 한 공드리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각본쓰고 감독했을 거다. 그런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재회는 두 사람의 예전 연애시절의 어떤 사소한 추억이나 서로의 밑바닥에서부터 공감하는 어떤 무엇, 이런 것과 아무 상관없다. 특별한 이유없이 출근하다말고 기차를 바꿔 타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을 보면 오히려 “가슴 속의 사랑”보다는 “운명적인 사랑”을 말하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기야 큰 주제는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제 아무리 기억을 지우고 또 지워도, 이 두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다시 만나서 사랑을 하고 말 운명이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식이라면, “기억을 지운다고 사랑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가 주제가 아니라 “기억을 지운다고 운명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가 되어야 맞는 거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게 그거라고 대충 넘어갈 거면 “따져보자” 이런 소리 안하지.

사랑=운명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한, 위의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운명이라는 대충 보편적인 등식에 유난히 쌍심지를 돋우는 본인으로서는 저 문장의 차이로 인해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145도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미안하지만 만약 “기억을 지운다고 운명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 영화의 결론이라면, “니들이 별 지랄을 해봐라.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라는 식의 결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싸움은 사랑=운명이 성립하는 등식이냐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데, 에이 이건 귀찮아서 관둘란다. 싸운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닐테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