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2일



항상 입으로는 “나만의 홈페이지”를 외치면서, “방문객에 대한 배려 없음”을 지향하는 홈페이지 운영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은근히 방문객들에게 신경쓴다. 그것은 내 홈페이지의 방문객들이 불특정다수(예전엔 그렇기도 했지만)의 네티즌들이라기 보단 내 주변에서 대충 나를 아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있는대로 다 까발리면 좀 뭐하잖아.

그러다보니 블로그형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도, 남들은 (감수성 차랑차랑한 여성분들이 주로 그렇겠지만) 블로그에 거의 일기를 쓰다시피 하더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개봉예정영화 씹는 거라도 꼬박꼬박 올리지 않으면 올릴 글이 전무하다시피한 그런 상태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거다. (이럴까봐 개봉예정영화 씹는 코너를 일부러 만들어놓기도 했다. 뭔가 고정적으로 업데이트할 꺼리가 되잖아) 아싸리 쓰려고만 마음먹으면 회사 사장 씹는 이야기, 아침에 설사한 이야기 등등 못 할 이야기가 무에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다보니,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덥다”는 말 한마디 그냥 홈페이지에 툭 던져놓을 수도 있을텐데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고, 다시 더 대가리를 데굴데굴 굴리다보니 내가 그동안 내 홈페이지에 너무 뭐랄까 “좀 길고” “내용있는”(<-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동안 내용있는 글이 몇 편이나 되겠는가) 글만 올리려고 바락바락하지 않았던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던 거다. 따져보면, 영화이야기에도 작년 12월 이후 글이 하나도 없는데 뭐 좀 폼나게(?) 뽑아낼만한 꺼리가 없나 고민하다보니 그후로 본 영화가 전혀 없지 않은데도 (근데 뭘 봤나 기억은 잘 안난다) 업데이트 전혀 못하고 있는 거고, 건담이야기나 영화음악이야기도 사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영화음악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이야기하자면 짧은 한두 줄이라도 쓸 말이 없겠냐마는 그렇게만 끄적거려서 올리기가 좀 뭐해보여서 안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건축이야기 같은 경우는 허이고, 오늘 곰곰이 생각해보니 (건축이야기에 본문으로 쓴 적도 있다) 내가 우습게도 고층빌딩 몇 개, 모 건축가의 작품 몇 개, 특정지역에서 몇 개 하는 식으로 유형별 지역별 건축가별 안배를 하느라고 쓸 말이 무진장 많은 건축물들을 죄다 무시하고 있더라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파리에 있는 노틀담 성당이나 꼬르뷔제의 구세군회관, 루브르박물관 등은 내가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건물들인데 이미 파리에 소재한 건물을 세 개나(에펠탑, 베르사이유궁, 퐁피두센터) 올렸다는 이유로 전부 업데이트에서 제외한 것들이다. 누가 파리에 있는 건물을 너무 많이 올렸네, 라고 지적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지랄하면서 그것들을 빼놓고 있었다는 말이다.

삼국지이야기도(업데이트한 지 가장 오래된 섹션) 곽가나 가후 등에 대해서 벌써 몇 년전부터 쓰려고 쓰려고 했었는데 (반쯤 쓰기도 했다) 각종 삼국지 관련 서적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면서 곽가나 가후에 대해 (내가 처음 삼국지섹션을 만들었을 때에 비해) 엄청나게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내가 쓸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도 웃긴 게, 남들이 이미 해버린 말이니까 쫀심 상해서 내가 되풀이하기 싫다고 얘네들을 안 다룬 거다. 뭔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곽가나 가후랑은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업데이트하려고 애껴놨다는 말이다.

자꾸 되풀이하는데, 여기는 내가 맘대로 운영하는 내 홈페이지다. 예전엔 아버지가 가져다주시는 직장인용 수첩 등에 뭔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마구 끄적거리다가, 컴퓨터가 생기고나서는 HWP로 끄적거리다가,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으니까” 내가 듣고싶은 음악도 올리고 이미지도 올리고 글도 올리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원칙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은연 중에는 내가 남들한테 좀 폼나게 보이려고 했는지 어쨌는지, 같잖게도 공정하게 보이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튀어보이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그런저런 원칙 하에 업데이트를 해왔다는 거다.

까놓고 말하면, 앞서 말한 그런저런 원칙들이란 내가 폼나고 잘나게 보이려고 만든 원칙이라기 보단 “업데이트 하기 싫어서 만들어낸 핑계”에 가깝다. 따져보면 내가 업데이트에 얽매이는 것 자체가 폼나고 잘나보이려고 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머리가 쌩쌩하게 돌아갈 때는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매일 글 한편을 쭉쭉 써갈길 정도였던 녀석이, 나이도 솔찬히 먹고 배도 나오고 움직임도 둔해지면서 책 한 권 읽는데 일 년이 걸리고 글 한 편을 써도 한두 단락 끄적이다 말아버리는 수준이라는게, (요거 자각한 지 몇 년 됐다) 그게 한심해져서 나에게 스스로 채찍질을 하려는 거다. 씨봉, 앞으로는 개뿔이나 아니나 되는대로 끄적여서 아무거나 막 올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