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때, 그러니까 어언 15년 전 이야기가 되겠는데, 그 당시 우리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모 재재개봉관에 한 편의 영화가 걸려있었다. 뭐 극장에 영화 걸리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겠느냐만, 그 영화가 걸려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그 극장으로 내달려가 본 영화를 보고 또 보았으며, 당시 사진에 취미가 많던 우리 반 모 군은 카메라를 들고 극장에 잠입(?), 그 영화의 장면장면을 사진에 담아 앨범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팔았고,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 대개는 작은 소형녹음기 하나 정도 숨겨들어가 영화의 대사를 테이프에 녹음해 수업시간에도 그것만 줄창 듣고 있었다.
이 영화가 바로 그 전설의 <천녀유혼>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이 영화가 인기를 끌었는지는 아마 귀신도 모르리라. 감히 <천녀유혼>을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하는 나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지 않는가 ^^; 아뭏든 그 영화에 나를 처음 빠지게 만든 동기가 바로 문제의 카세트 테이프였다. 아마 형님이 누군가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그 테이프를 형님이 틀어놓고 듣고 있을 때, 괜히 옆에서 얼쩡거리던 내가 그 쏼라쏼라 하는 소리를 듣고 말았던 것이다. 마침 그 대목은, 바로 연적하가 번개치는 밤에 술먹고 “도도도”를 부르는 그 장면이었다.
처음엔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까 형님의 설명과 쏼라쏼라하는 노래소리에만 의존해서 그 장면을 상상해야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귀신잡는 포도대장”이라는 말에 연적하를 좀 멀끔하게 상상했던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 검무장면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 (오마라는 배우가 원래 칼을 좀 쓰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멋만 부리는 칼질이 아니라 정말 칼을 제대로 갖고 노는 모습이 (이렇게 말하지만 내가 무슨 검도에 일가견이 있다거나 그런 거 전혀 아니다) 사람을 완전히 뿅~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미 영화를 봐오면서 충분히 그 장면에서 뿅~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친구놈을 꼬셔서 <천녀유혼> 테이프를 불법복제로 하나 떠놓은 뒤에도, 수 차례 돌려보고 또 돌려봤던 장면이 바로 이 연적하의 검무장면이었다. (하도 돌려봤더니 나중엔 가사(?)가 외워지더라. 지금은 많이 까먹었지만…) 지금도 나는 왕조현이나 장국영이 아니라 오마가 좋아서 <천녀유혼>을 좋아한다고 약간 둘러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적하의 검무장면은 나에게 특별한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좀 이쁜 배우와 좀 잘생긴 배우 데려다가 <천녀유혼> 비스무레한 귀신+사랑이야기를 얼마든지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마 정도의 칼질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한 그 영화는 <천녀유혼> 발끝에도 못미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