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군대에 있을 때는 치마만 두르면 고개가 절로 돌아가고,
심지어는 할머니-_-를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악의없는 농담을 하곤 한다.
“농담”이라고 내가 스스로 토를 달긴 했지만,
실제로 나물캐는 할머니를 보며 가슴 두근거렸던 친구의 증언까지 확보하고 있는 관계로,
군대를 갔다온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부분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것만큼은, 인정해야겠다.
한창 펄펄 끓을 나이에 남자들만 잔뜩 모아서 가둬놓고 키우니
그 수많은 욕구불만이 어떤 방식으로 터져나올지, 그걸 우찌 알겠나.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은 없어졌지만 <우정의 무대>를 대표로 숱한 군위문공연프로그램에서도
섭외 1순위는 항상 미모의 여가수,
그것도 기왕이면 발라드 계열보다는 섹시하게 입고 나와서 제대로 흔들어주는,
뭐 그런 가수들이 아니었나.
(참고로 내가 군대 있을 때 <우정의 무대>를 촬영했었는데,
초대가수로 온 미모-_-의 여가수는 다름아닌 최진희였었다.
입달린 군인은 다들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었다지 아마.)
최근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려볼 심산인지 노래도 아닌 야한 옷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엄정화 누님.
기억하다시피 그녀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도 바로 군인들 아니었나.
그녀의 데뷔 초기였던 1993년,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최진실을 물리치고
당당 대한민국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으로 뽑혔었으니.
내 기억으로 그때 같은 소속사(고 배병X…)였던 최진실과 엄정화를
의도적으로 같이 몰고 다니며 엄정화를 띄우려고 했던 시절이므로
당 여론조사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해석이 없진 않았지만,
그때 군대에 있었던 본인이 확실히 증언하는 바
적어도 그 여론조사 결과만큼은 진실이 담뿍 담겨있다는 말씀.
1992년 말인가, 1993년 초던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영화와
그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한 <눈동자>라는 노래 하나 달랑 내놓은
(당시 내 기준에서) 별볼일 없는 신인이었던 엄정화.
그런데 1993년 5월, 군에 입대해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훈련소 교관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연예인 이름이
다름 아닌 엄.정.화.였던 것이다.
(참고로 그때 가요톱텐 1위는 아마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였던 걸로 기억…)
더군다나 그 엄정화가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서
자신의 첫사랑이라며 초등학교(?) 친구를 찾았을 때
바로 그 친구가 우리 부대 하사관이었던 바람에 부대가 발칵 뒤집어져버렸던
(그렇다고 엄정화가 우리 부대로 오거나 한 건 아니었음에도)
그런 기억도 있고 말이지.
자자, 본론에 앞서 사설이 한참 길었는데,
요컨데 군인들이 연예인을 대하는 시각은 일반인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제목에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솔직히 아주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설령 우리 또래라고 해도)
“칼라라는 여성그룹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거의 기억하는 사람 없을 거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부대에서는 (참고로 공군제16전투비행단, 더 자세하게는 시설대대)
“칼라”를 모르는 게 이상한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칼라”가 부대위문공연이라도 왔냐고? 천만에.
혹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칼라”는 1993년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여성4인조 보컬그룹이다.
강변가요제니까 당연히 대학생들이었겠지.
내 기억으로는 모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4학년 학생들이라고 했었다.
(그때는 연영과가 지금처럼 많아지기 전이기도 했지만, 연영과라 그러면 괜히 이쁜 애들만 모여있을 것 같고 그런 느낌 분명히 있다)
강변가요제는 당연히 군바리들이 봤을리가 없고
아마 토요일 저녁에 임백천이 진행하던 버라이어티쇼프로그램에 얘네들이 나와서
문제의 그 노래, <후회하고 있는 거야>를 불렀을 때부터
우리 부대는 “칼라”에 환장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youtube]http://www.youtube.com/watch?v=qZi4BExkDH4[/youtube]
※ (문제의 그 노래) 후회하고 있는 거야 – 칼라
일단 애들 몸매 좋고, 얼굴 되고,
노래야 상관없고,
어두운 톤의 단색 옷도 왠지 야시시해보이는데
약간의 율동을 곁들여 부르는 노래가 왜 그리 쏙쏙 귀에 들어오던지.
그날 이후로 부대에서는 (누가 사왔는지) 칼라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가 닳아없어지도록 돌고 돌고 돌고
점심시간엔 식당에서 사가(군가의 반대말)를 틀어주는데
이것도 죽으나사나 후회하고 있는거야~ 후회하고 있는거야~
딱 TV 한 번 나온 걸 봤는데 이렇게 열렬하게 좋아해줄 거라고 걔네들은 믿었나 몰라.
아무튼 너무나 선풍적인 인기였기 때문에(우리 부대에선)
나는 사회(군대의 반대말)에서도 칼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조만간 가요톱텐 같은 순위프로그램도 얘네들이 휩쓸어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요상한 게, 얘네들을 그 이후로는 TV에서 볼 수가 없는 거라.
물론 당시 나의 계급은 이등병 – 일등병.
TV를 맘대로 볼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냥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휴가 나오면 (우리 부대에서처럼) 거리의 리어카들이 온통 얘네들 노래만 틀어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가 9월엔가, 휴가 나왔는데,(아마 입대 후 첫휴가였을 거다)
“칼라”를 아는 사람, <후회하고 있는 거야>를 아는 사람,
개뿔도 없더라.
나는 하도 지겹게 들어서 아직도 가사를 외우고 있는데.
그렇게 해가 바뀌고
상병 달고 신세 편안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던가.
국군방송의 위문프로그램인 <위문열차>가 우리 부대에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TV가 아니고 라디오인 관계로 뭐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으나
이제는 짬이 좀 되는 탓에,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서 연예인을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드넓은 활주로에 소박하게 모인 장병들 사이에 끼어앉았더랬다.
그날 나온 연예인들이 트롯가수 김혜연(지금만큼 뜨기 전이었다),
서울패밀리 여성보컬이었다가 솔로로 전향했다는 김승미(그날 보고 그후 소식을 모른다),
기타 등등 많았는데 잘 기억 안나고.
그날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은 환호성을 받은 가수가
그날 무대 위에 오른 가수들 중 유일하게 립싱크로 무대를 소화한
S.O.S라는 여성4인조보컬그룹이었다.
처음 나왔을 때는 4명이 색색으로 다른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무릎이 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앙증맞게 춤을 추는 것이 그냥 귀여웠을 뿐.
진행자도 얘네들 이름을 몰라서 인터뷰하면서 “빨간모자” “노란모자” 이렇게 부르더라.
문제는 아마도 좀 짖궂은(?) 진행자가 그녀들 중 한 명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네??” (무척 당황한 목소리로)
“아이, 여기 장병들이 모두 원한다니깐요. (나는 처음에 저 MC가 왜 갑자기 저러나 싶었다) 자, 앞에 6자리만, 시~작.”
“7602…”
오오, 여기서 짐승같은 남성들의 기나긴 포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정리해본다면,
내가 아까 1993년에 입대했다고 그랬고, 그 해에 “칼라”가 강변가요제 대상 받았다고 그랬고,
지금은 그 이듬해라고 그랬다.
그렇다. 1994년.
1976년생이면 1994년에 몇 살?
그렇다. 미성년자!! (정확히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맨 위에도 썼지만 때로는 할머니를 보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인종들이
또래도 아니고, 19살 꽃띠 미성년자를 보면서 갑자기 회가 동한 그 마음을 어찌하면 좋더란 말이냐.
노래도 필요없고, 좀 심하게 말해서 생긴 것도 필요없었다.
미성년자라는데!!!
여기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회가 동했네 어쩌네 하는 표현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뭐 이런 지적을 들을 수 있겠으나,
본인도 그게 옳다거나 바른 생활태도라고 생각해서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그럼 남의 집 할머니를 보고 가슴 두근거리는 건 바른 생활태도겠는가…?)
여자가 너무 좋아서 짐승 같은 함성을 질러댔던 것이 자랑스러워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시절에 느꼈던 순간의 그 감정, 그리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쓰는 거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식당에서는
그 전날까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몰랐던 SOS의 노래가 앨범 통째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아마 2집으로 팝송리메이크앨범을 내놓고 막 활동을 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은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노래는 아마 그날 무대에서 불렀던(립싱크했던) <100%의 여자아이>라는 곡.
꽤 유명한 팝송인 <Stupid Cupid>를 번안한 노래라 일단 멜로디가 귀에 익다보니
가사까지 절로 외워지고 말았다는 말씀… -_-
그런데 그 노래를 같이 들어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2집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은폐된 것 같은…)
1집에 나온 노래 중에서 제법 유명한 거 하나 그냥.
[youtube]http://www.youtube.com/watch?v=Q1RvvtSC2Dg[/youtube]
※ 처음 느낌 그대로 – S.O.S
지금 다시 들어보니 노래는 진짜 못부르는구먼.
하여튼 그렇게 S.O.S는 우리 부대식당에서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을 뿐
사회에서는 2집 자체가 흐지부지되면서 활동 접고, 해체하고
그렇게그렇게 되었나 보더라.
그런데 우연히도
“칼라”에서도 나머지 3명은 뭐하는지 모르는데
문지윤이라는 한 사람만 개그우먼으로,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최근까지 TV에 나왔었고
S.O.S에서도 문제의 그 76년생, 사현진 양만
영화 <비트>에 뜬금없이 등장해 제대후 아직 군바리 습성을 채 못벗어난 내 눈을 사로잡더니
몇년 전에는 <튜브>라는 영화에서 조연으로 또 잠깐 등장한 걸 보았다.
역시 나머지 3명은 뭐하는지 모르고.
퇴근하다가 정말 갑자기
칼라의 <후회하고 있는 거야>가 떠오르는 바람에
생각났을 때 정리 좀 해보자고 이렇게 끄적이고 앉아있다.
ㅋㅋ 생전 첨 듣는 노래인데…ㅋㅋ
이런 노래도 있었군요…무지 쉽고 좋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