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인가?
일본의 성곽건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히메지성(姬路城)은 백로가 날개를 펼친 모양을 연상시켜 시라사기성(白鷺城)이라고도 불리며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 위치하고 있다. (히메지는 오사카에서 서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48만명 정도의 소도시이다) 해발 약 45m-_- 정도의 히메야마(산)에 위치한 이 성은 1600~160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인 이케다 데루마사가 건축하였다. 전국통일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 센히메가 살았던 성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잠깐 짧은 잡설을 늘어놓도록 하자.
원래 센히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정략적으로 시집보낸 상태였는데, 히데요시가 죽은 후 오사카성에 고립시킨 히데요리를 공격하면서 손녀인 센히메를 구해오면 센히메와 결혼시켜주겠다고 했단다. 그때 불타오르는 오사카성에서 센히메를 구해낸 장수가 사카자키라는 사람이었는데, 맞다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인지 어쨌는지 센히메는 사카자키가 아닌 혼다 다다마사에게 시집가서 히메지성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센히메의 시집가는 행렬을 사카자키가 습격했다가 실패하고 결국 할복자살했다는, 그런 야사가 있단다. 어렸을 때 사카자키를 일본전국시대에 활약한 조선인 무사로 멋지게 묘사했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잠시 옆길로 샌 점 이해하시라.
본론으로 돌아가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바닥에 약 15m의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세운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으로서, 대천수각과 동·서·북서쪽 소천수각들의 사이를 연결한 천수각군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천수각을 비롯한 모든 건축물에는 회반죽이 칠해져 있어 하얗게 보이는 것이 참 독특하단다.
영주가 거주하고 집무를 보는 일종의 본각인 대천수각은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안은 7층(지상 6층, 지하 1층)인 독특한 구조이며 남아 있는 천수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대천수각의 해발고도는 약 92m에 이르는데 소천수각에서 통하는 복도는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형식으로 되어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배치를 갖고 있어 혹 침략자가 있을 경우 당황하게 만드는-_- 효과를 노렸다고 한다. 지금은 종종 안내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관광객들이 길을 잃고 당황하게 하는-_-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어찌 됐던 성이니까, 바깥에는 소위 “해자”라고 불리는 연못도 파여져있단다)
서쪽과 북서쪽 천수각도 밖에서는 3층, 안은 5층이라는 구조로 되어있고 북서쪽의 것은 2중 팔작지붕과 3중 팔작지붕을 직각으로 교차시킨 형식으로 되어 있다. 동쪽 소천수각은 외관 3층, 내부 4층으로 규모가 작다.
1931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93년 법륭사와 함께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어떻게 지어졌나?
앞선 설명에서 ‘17세기 초 이케다 데루마사가 건축하였다’고 했지만 정확히 하자면 틀린 설명이다. -_- 원래는 1333년경에 이미 아카마츠 노리무라에 의해 지어진 성으로 16세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3층의 천수각을 증축했고, 그것을 다시 이케다 데루마사가 성주가 된 이후 개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다. 이케다 데루마사가 성을 개축하는데 무려 8년이 걸렸다는 사실 역시 앞에서 설명했는데, 현존하고 있는 건물 대부분(약 80채 정도라고 한다)이 이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17세기 초에 이케다 데루마사가 건축하였다”는 말이 영 잘못된 설명은 아니기도 하다. 하여튼 이 당시 성의 개축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지급된 돈만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2000억엔이라고 하니 엄청난 대공사였음은 분명한 것이다.
성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간 이유에는 아무래도 전쟁시 화력의 발달이 꼽힐 수 있겠다. 화살이나 날리던 시절의 성곽과 화승총-대포로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야하는 성곽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또한 병사들의 훈련이나 총포를 든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내부설계의 변경 등도 고려된 것으로 보여진다.
백로성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히메지성을 대표하는 문제의 하얀 회벽칠 역시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히메지성이 돌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나무로 지어진 목성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목성(木城)이다보니 화재나 불로 인한 공격 등에 취약한 점이 있어 불에 강하고 보강재로도 쓸만한 회반죽을 칠한 것이란다.
시대의 한마디?
일본 성곽 건축이라고 했을 때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실 히메지성이 아니라 오사카성이다. 소설 <대망>(원제 :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은 불멸의 성으로 묘사된 오사카성(결국 도쿠가와에게 함락되긴 하지만)에 대한 인상이 더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오사카성이 규모로나 역사성으로나 히메지성보다 더 낫다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오사카성이 아닌 히메지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는 개축이나 증축된 것이 아니라 예전의 구조 그대로 살아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사카성처럼 역사의 현장에 나선 적이 없는 건물이라 부서지고 자시고 할 거리가 없었단다. 물론 메이지시대의 폐성령이나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의 대공습 등 험한 여정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나) 특히나 부러운 것은 히메지성의 건물은 거의 내부 출입이 가능하며, 다만 신발을 벗고 제공되는 슬리퍼(?) 같은 것을 신고 들어가면 된단다. 우리나라에서 건물 내부 관광이 가능한 문화재가 뭐가 있더라. 갑자기 화날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