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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열다섯번째

2007년 4월 4일

[봉대리의 일기]

12/14 (화) 날씨… 흐리멍덩…

아침에만 잠깐 기분이 좋았었다 쓰벌…
지난 주말엔가, 뭐더라? 또이 스또리? 그런 영화 시사회가 있따꼬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더라.
그래 별 생각엄시 신청해따. 뭐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라는데 그런 쪽에 특별히
취미는 없지만 그래도 컴도사를 자부하는 본인이… 그런 기술진보적인 영화는
봐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안되는 신청사유를 적어서.
근데 이게 덜컥 당첨이 되부린 기야.
오매 좋은거.
오늘 저녁 8시까지 C극장으로 졸라 나오란다.
8시…? 8시라…
여기서 칼같이 퇴근하면 저녁은 먹고 갈 수 있겄고… 조금 늦더라도 저녁을 매우
늦게 먹거나 빵 정도로 때울 생각을 하면… 가는 데 무리는 없겄군.
하여튼 직원들한테 자랑 무지하며 들떠있었다.
평생 공짜로는 맹물 한 그릇도 생겨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왠 떡이야 싶어서.
하지만 왠 떡은 무슨… 개떡이었다.
피 부장이 도끼눈을 뜨고 나타나더니 내일 아침까지 품의서 작성을 마쳐놓으란다.
얼렐레? 또이 스또리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일찍 퇴근해야 되는데.. 이미 직원들한테 영화보러간다고 광고를
빵빵 때려놓은 상태라 그럴 수도 없고…
개겨봐? 확 날라버려?
아이다. 좋은 일을 겪었는데 그렇게 교활하게 놀면 안돼지.
저 부장님, 제가 오늘은 좀 곤란한데요.
뭐시라?
(지가 무슨 장희빈이라고… 내시도 못하겠다. 육방 주제에…)
영화 시사회에 당첨되갖구… 이거 꼭 가야되는 거거든요. 제가 내일 아침에 서둘러서
내일 오후까지는 꼭…
조까구 있네.
한 마디로 상황 종료되었다.
젠장… 그노무 품의서 작성이 끝나니까 8시반이다 쓰벌…

[피 부장의 일기]

12/14 (화) 날씨… 봉대리 같군…

어제 이사님한테 보고서 땜시 한바탕 깨지고 나서
오늘은 좀 평안할라나 했더니 전산실장이 Y2K 문제로 한바탕 깨지는 바람에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까지 도맷급으로 깨졌다.
당신들말야, 월급 쳐먹으면 쳐먹는 만큼 값을 하란 마랴, 값을! 알가서??
부사장이라는 인간이 재떨이를 치켜들며 외친 소리다.
사장 조카라는데 어디서 조폭하다왔나 꼭 재떨이를 들고 얘기한다.
생긴 거는 불사파 두목 송강호처럼 생겨갖구는…
아침부터 영화처럼 깨지고 나서 영화라면 진저리가 날라구 그러는데
뭐 봉대리가 영화 시사회에 당첨이 됐다며?
황대리가 지나가며 하는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사회? 오늘인가부지?
아마 하늘이 무너져도 칼퇴근을 하겠다구 지금 열나게 일하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봉대리,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졸라 뛰어댕기고 있었다.
불렀다. 봉대리 커몬~
전에 봉대리가 이렇게 빨리 내 앞으로 달려온 적이 있었나. 바람에 넥타이가 뒤집어질
정도였다.
거… 연말행사에 관해서 총무과가 부탁한 품의서 있지, 그거 오늘 중으로 처리해서
내일 아침에 내가 봤음 좋겠는데 오늘 끝내놔.
봉대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샐쭉해졌다.
캬캬캬… 잼따…
오늘도 한 건 해치운 기분으로 즐겁게 퇴근했다아~ 이히~

SIDH’s Comment :
일곱번째 이야기의 에피소드 반복.
실제로 직장인의 애환 중 대부분이 야근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아직도 (혹은 여전히) 수많은 직장상사들은
직장인이 일찍일찍 들어가는 모습을
정신머리가 썩어빠졌다,라고 생각하고들 있으니
명랑사회구현은 한참 먼 이야기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