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일기 서른두번째

[봉대리의 일기]

1/5 (수)

아침부터 회의가 길어졌다.
음… 보통 회의가 길어지면 나쁠 거 별루 없다.
나쁘다면야 사무실 분위기 개떡처럼 되는 거하고…
어떻게 된 건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져서 빠른 시일 내에 이것들을 수습해야한다는 거하고…
뭐 그런 것만 빼면… 나쁠 거 별루 없다…
오전내내 회의랍시고 일 안하고 쭉 빨아버릴 수 있고…
주로 피부장이 떠들지 우리들은 조용히 앉아있으면 되니 정력낭비도
별반 없고…
지화자 씨가 커피도 계속 리필해주니 피부장만 무시해버리면 다방
분위기를 낼 수도 있고…
그런 명언이 떠오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나는 어느새 피부장의 잔소리를 비창교향곡 정도의 클래식 음악화하여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지화자 씨가 타준 설탕없고 프림만 탄 느끼한 커피를 마시며 그런
느끼한 생각도 해봤다.
연말에 신년업무기획서를 올린게 엊그제인데, 벌써부터 이행독촉을
하면 뭐 할 말 없잖아?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보고를 하라니, 이제 출근 시작한 지
사흘 지났다 씹탱구리야.
음… 뱀눈 피부장한테 씹탱구리는 좀 심한 욕인가. 역시 씹탱구리는
황소개구리 황대리에게 붙여줘야…
어쨌든 그런 말 같잖은 일로 야근하다가 택시타고 들어왔다…
야근수당을 주기는 주는데 말야… 맨날 택시타고 들어오게 되니
수당 받아서 택시비해버리면 늘상 삐까삐까더란 말야…
그런데 총무부 주차장은 야근수당 타먹을라고 쓸데없이 야근하는
인간들이 있다며 올해부터 야근수당을 없애자고 해?
살다살다 별 주차장에 리어카 주차하는 소릴 다 듣네…

[피부장의 일기]

1/5 (수)

아침부터 회의가 길어졌다.
진짜 회의 한번 하면 정력 옴팡지게 소모된다. 아그들은 고개 푹
숙이고 앉아서 내 지껄이는 소리나 경청하고 있고… 아니지 경청할
리가 없지… 저것들 생리를 내가 모를 줄 알고… 봉대리는 어깨가
들썩거리는 걸 보니 어디 나이트클럽에서 흔드는 상상이나 하고 있는
게 틀림없고… 황대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는 모양을 보니 또 스페이스
에이의 “괜찮아 나의 걱정은 하지도 마~” 고거 부르고 있는 모양이고…
오과장은(아 이 인간 승진했다. 내 덕분에 승진해놓고 감사함다 말
뿐이라 이거지… 이요~ 오과장~ 많이 컸구먼~) 늘상 그렇듯이 부동
자세를 지키고 있지만 내가 안다… 저 인간 지금 속으로 국민교육헌장
외우고 있다는 거… 전유성 씨는 탁자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분명히 지금 탁자 위에 스타크래프트 맵을 펼쳐놓고 상상 속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게다… 지화자 씨는 여기가 무슨 까페라도 되나…
회의 도중에 무슨 커피 리필을 한다며 궁둥짝을 의자에 가만히
붙여놓고 있지를 않는다… 궁둥짝이 토실토실해서 내가 참는다
진짜…
아침 회의에서 사장이 느닷없이 신년업무기획서의 세부진행방향을
따지고 드는게 아무래도 주전자 물풍선 사건의 파장인 듯 싶다…
신년부터 재수 오지게 없구먼…
하여튼 정말 힘이 아니라… 뻗쳐오르는 깡다구와 주체할 수 없는
울화로 회의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점심까지 쫄딱 굶어가며…
그러구서 또 씨 야근까지…
부장급은 야근수당 안준다는 거 법적 근거 있는 거냐… 그런 법이
있다면 폐지하라! 위헌심사내라!
수당이래봤자 차 기름값도 안나오겠지만 씨불…
없는 것보단 낫잖아…

SIDH’s Comment :
일전에 같이 근무한 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회의를 하지 않는 회사는 빨리 망한다.
회의를 너무 많이 하는 회사는 더 빨리 망한다.”

그냥 관찰해본 바로도,
업무시간에 회의나 하고 앉아있는 회사는 배가 산으로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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