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11 (화) 맑음
어제 오후에 외근을 좀 나갔다 왔더니
그 사이에 피부장이 전유성 씨를 아주 잡아먹었다고 하더라.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켰는데… 쪽지 적어준 거를 잊어먹었다나 어쨌다나…
아니… 시골 고향집에서 소포 올려보낸 걸 꼭 부하직원을 시켜서 찾아
와야 되나?
피부장 나 신입사원때는 자기 차 주차시켜라… 차 빼라… 뭐 그런
심부름 밥먹듯이 시키더니…
내가 사장님 벤쭈에다가 이뿌게 박아버린 후로 절대 그런 심부름 안
시킨다…
사장이 그래도 부하직원한테 수리비 받아내는 쪼잔한 인간은
아니더라구… 다시 봤다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월급에서 깠더군.
하여튼 그 바람에 아침부터 전유성 씨 얼굴이 팅팅 부어있길래 위로
차원에서 술 한 잔 샀다. 황대리랑 셋이서.
근데 이 인간 술 쪼금 들어가니까 기고만장 날뛰는데 진짜
후회되더군.
저 학교 다닐 때 농구 했었다니까요… 그때 이상민이네 학교하고
준결승에서 붙었는데 제가 펄펄 날라서 20점 차로 개박냈었다니까요…
믿거나 말거나… 라고 황대리는 계속 중얼중얼거리고…
하여튼 아그들 쫌만 띄워주면 발랑발랑 기어오르는 거…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
술 취해서 몸을 제대로 못가누는 놈을 택시에 꼬라박아 버렸는데 잘 갔나
모르겠다.
[전유성의 일기]
1/11 (화) 말금
어제 피부장한테 진짜 말도 안되게 혼이 나는 바람에 아침에는 출근하기도
싫었다.
이불 위로 눈만 빼꼼 내놓고 일어날까? 말까? 30분을 고민하다가
회사 지각했다.
지각했다고 또 피부장 이리저리 날뛰고…
(부하직원 야단치면서 사무실을 뛰어댕기는 부장은 피칠갑 이 인간밖에
없을 거다)
지화자 씨가 위로한답시고 바카스를 준다. 유치하다.
지화자 씨 유치한 거는 지방 사무소까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하여튼 기분 드러워서 팅팅 부어있는데 같잖은 선배 둘이 (일명 봉대리,
황대리) 기분풀이삼아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잔다.
아이 싫슴다… 술마실 기분도 아니라니깐요…
사줄께.
얼른 따라갔다.
술이 조금 들어가서 발동이 걸린 김에 나의 화려했던 학창시절 레퍼토리를
좌라락 풀었다.
황대리가 계속 뭐라고 중얼중얼하는데 별루 신경 쓰지 않았다.
술이 많이 취해서 내 스스로가 걱정이 좀 됐는데 다행히 봉대리가
택시비도 줬다.
근데 받아보니 천원짜리 한장이었다. 쓰벌놈…
술취하면 늘상 그렇지만 택시기사 아저씨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택시기사 아저씨는 어느 아가씨가 술취한 채 탔길래 맛있게
따묵었다는 이야기를 스펙타클하게 늘어놓았다.
음… 요즘은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허풍이 심한 모양이군.
내가 여자라면 아무리 술이 개떡이 됐어도 저런 얼굴하곤 같이 안논다.
그래도 재밌는 화술에 감동하야 거스름돈은 가지쇼! 그러구 내렸다.
야밤에 택시는 즐거워~
피부장 본명이 아마 서른번째 일기에선가 처음 나왔을텐데
상당한 임팩트가 있는 이름이었다고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
그런데 그 단어의 원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후문.
하긴 요즘 잘 안쓰는 단어이긴 하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디서 들었는지 잘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