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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일흔여덟번째

2009년 6월 7일

[봉대리의 일기]

10/19 (목) 날씨 여전히 이상함

아침에 사장님이 쓰러졌다.
왜 쓰러졌을까?
어젯밤에 싸모님과 너무 무리를 해서?
회의시간에 피부장이 너무 열받게해서?
(그것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회의시작하기 전에 쓰러졌다니까)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건 진짜 아니지. 내가 기획실에
있는 사람으로서 회사가 어떤 형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아직
잘 나가고 있다니깐.
이유는 모르고 하여튼 건강이 심각한 상태라 쓰러진 것만큼은 틀림
없지 않겠는가.
모기업에서 운영하는 모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야… 그룹에서 분리된
게 언제적 이야긴데 아직도 병원이라면 글루 찾아가냐) 뭐 위독한
상태는 아니고 응급처치가 늦었으면 큰일날 뻔 하기는 했단다.
그래두 잘나가던 회사에 사장이 쓰러졌으니 주식시장에 악재가 될까봐
부지런히 그쪽 챙겨주느라 오늘 죙일 바빴다.
바빴는데… 뭐 또 총무팀에서는 사장님 문병 스케쥴을 짜고 어쩌고
한답시고 오늘은 몇시에 어느팀 누구… 하는 식의 사발통문을 돌리고
있지 않은감.
쟤네들은 충성떨 기회만 생기면 어쩔 줄을 모른다니까.
아 대개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절대안정이 필요할텐데 개나소나
다 입원실로 몰려가서 어쩌자는 거야.
하긴 총무팀에서 저 지랄을 떨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찾아댕기는 인간들
많이 있겠지.
나? 안간다. 총무팀 괴문서에도 기획실은 모주라씨와 피부장이 오라고
되있으니까. (죽어도 여자는 델구 다녀야되지. 발상하고는.)
가서 충성떨고싶은 마음도 별반 없고.
이러다 짤리면?
…그건 좀 문제가 있는걸.

[피부장의 일기]

10/18 (수) 흐리멍텅함

아침 회의를 하려고 들어서는데 갑자기 사장실에서 난리가 났다.
한창 열받아서 전화를 받던 사장이 전화기를 집어던짐과 동시에 자기
힘을 이기지못하고 책상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누구랑 전화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자 목소리인걸루 봐서 어디
세컨드라도 숨겨놨나부지 뭐.
(훨씬 능력없는 남자들도 다 바람피우던데, 우리 사장정도면야 그래도
피울만 하지 뭘)
이 여자가 난데없이 임신을 했는지 아파트를 사내라 했는지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사장이 앞으로 호되게 고꾸라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실신을 했다는 기야.
게다가 평소 다혈질로 고혈압이 항상 염려되던 사람인데 흥분상태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즉각 119를 불러서 모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옮겼다.
(이런 것도 내부거래 아닌가 몰라)
가까운 병원 놔두고 조금 멀리 가느라 사장이 조금 위독해질 위험이
있었지만, 나중에 위에서 한소리 듣는 것 보다야 낫겠지.
어쨌든 병원에서 진단해본 결과 한 일주일이상 푹쉬면 되겠다는 진단이
나오기는 했지만서두.
일주일이라… 일주일을 아주 입원실에서 살아버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두는게 여러모로 편할텐데 말이지.
그래도 부장체면에 뭐 환자시중들고 뭐 그런 건 안시키겠지.
…… 시키고도 남을 인간이라는게 좀 걸리는데.
하여튼 회사가 요즘 승승장구하는 판인데 악재라면 악재가 터진 셈이라
주위단속에 좀 신경쓰라고 해야겠다.
거 아파트 사달라면 사주지 뭘 화를 내고 그랬을까?

SIDH’s Comment :
간혹 회사 사람들이 안좋은 일을 당하곤 하는데
동료나 약간 높은 사람 정도라면 별 거 아닌 일이라도 신경쓰이고 그러지만
아주 높은 사람(특히 사장)이 그러면 목숨이 왔다리갔다리 해도 별로 신경 안쓰이는 게 솔직한 심정.

그러나 현실은
병원에 입원한 직장 동료 면회 한 번 가려면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봐야되고
사장이 별 거 아닌 일을 당했을 때는(이를테면 검찰에 출두한다거나…) 회사 로비에 도열해서 “사장님 힘내세요” 뭐 이런 지랄이라도 해줘야된다는 거.

요즘 “별 수 없어 세상의 이치니까” 라는 유행어가 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