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어제가 중복이었더만.
중복 이름값을 하려고 그랬는지 어제 좀 덥긴 덥더라.
초복때는 사무실 사람들 우르르 몰려가서 삼계탕이랑 먹고 그랬는데
어제는 대충 돈 모아서(=사다리 타서) 비비큐치킨하고 수박 사다 먹었음.
복날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지난 초복(7월19일토요일)에 우연찮게 마주친(?) 강아지 이야기를 하려고.
그날 토요일이지만 모처럼 일찌감치 출근하고 있었는데
사무실 건물 2층 계단참에 왠 시츄 한 마리가 쭈그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었음.
보아하니 사무실에 내가 1등으로 출근한 것 같은데
이놈시키는 누가 데려다놓은 개시키지?
라고 생각만 하며 그냥 무시하고 사무실로 들어갔음.
뭐 별로 사납게 굴거나 하진 않고 오히려 사람을 반기더라구.
나중에 전소장이 출근하다가 개를 보고는 나보고 누구 개냐고 물었음.
당연히 모르지.
또 나중에 이실장님이 출근하다가 개를 보고는 (일단 한번 기겁해주시고… 개싫어하신다는) 또 누구 개냐고 물었음.
모릅니다, 라고 이마에 써붙여놓을까.
그 후 속속 출근하는 직원마다 개를 보고 궁금해하긴 했지만 뭐 그냥 그 정도.
그러다가 한 10시 쯤에선가.
1층에서 일하는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 와서 저 강아지 여기 개냐고 또 묻더라.
어 1층 개 아닌가요? 라고 되물으니 아니라고.
근데 이게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 아저씨가 어제 퇴근할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거라고.
뭐야 그럼 최소 열두 시간 넘게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단 거네.
갑작 비상.
1층 2층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관찰해보니 이게 계단을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해 계단참에서 끙끙대고 있는 모양.
(좀 짧은;;; 그래도 대충 다닐 수 있겠던데 계단으로 다녀본 적이 없는 것 같았음)
일단 뭐라고 멕이자, 라며 1층 사람들이 일회용 접시에 물부터 조금 부어줬는데
안먹음.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좀 비켜줘도 안먹음.
뭐 다른 걸 좀 멕여볼까 하고 사무실을 뒤지고 있는데
1층에서 카스테라하고 우유를 사와서 다시 시도.
카스테라를 조금 떼서 접시에 놓아주니 입으로 물고 가길래
아 뒤로 가서 먹으려나 보다 했더니 안먹고 내려놓음.
가져간 걸로 봐서 배고프긴 한 것 같은데 눈치를 보나, 싶어서 가만 지켜봤더니
이래저래 정말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먹기 시작.
아이고 됐다 한시름 놨다 싶어 다시 카스테라를 조금씩 떼어줬더니 이젠 접시에 놓고 잘 먹음.
1층에서 잘 보살펴주면 되겠네 싶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잠시후 신과장이 3층에 갔다오더니 강아지가 3층 사무실로 들어와서 똥을 쌌다고.
역시 개는 먹이면 싸는구나.
그 말을 듣고 3층으로 가봤더니 개가 안보임.
최실장한테 물어보니 아까 나갔다고.
근데 2층에도 안보이고 3층에도 안보이고.
1층에서 데려갔나?
그러구 있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건물 꼭대기(5층)까지 올라가봤더니
이게 5층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을 내려오질 못하고 낑낑대고 있었음.
아이고 이 화상아 하면서 안고 내려오려다가
다시 내려놓고 자기 힘으로 계단 내려가게 냅뒀음.
첨엔 좀 겁을 먹더니 한두 계단 내려오면서부터는 잘 내려가더만.
문제는 그러고나서 이 자식이 나하고 신과장만 졸졸 따라다닌다는 거지.
그 바람에 잠시 긴급회의.
털도 깨끗하고 사람도 잘 따르는 걸 봐서는 누가 키우던 개가 분명하고 (씻긴 지 얼마 안됐는지 냄새도 별로 안남)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했던 걸로 봐서는 지 발로 우리 건물 안에 들어온 것도 아닌 게 확실.
그럼 누가 버렸거나 일부러 여기에 놔뒀다는 얘긴데
하필 오늘이 초복날이니 누가 훔쳐다가 저녁에 삶아드실라고 한 건가…?
어쨌든 이놈의 사연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 일요일이라
이 자식을 여기에 놔두고 갈 수는 없다는 결론.
신과장이 분당에 있는 어머니 or 누님에게 맡겨보겠다며 전화.
아들 장가보내고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흔쾌히 데려오라고 콜.
주인이 잃어버리고 찾는 거면 어쩌지? 라는 고민이 좀 되긴 했지만
일단 개부터 살리고(?) 봐야겠기에 건물 유리창에 “개 보호중” 운운하는 종이 하나 붙여놓고
신과장이 차에 태우고 분당으로 튀었음.
그런데 나도 마침 코엑스쪽에 약속이 있어서 같은 차를 탔는데
이 자식이 계단은 무서워하더니 그보다 훨씬 높은 자동차 시트에는 펄쩍펄쩍 뛰어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하는 것임.
계단은 안다녀봤어도 차는 타봤다 이건가?
뭔가 고급으로 키운 냄새가 나는데?
뒷좌석에 놔뒀는데 안절부절 못하면서 막 앞좌석으로 넘어오려고 하길래 손으로 막아 못하게 했더니
(나중에 내가 내린 후엔 정말 넘어왔다고 함;; 계단도 못오르내리던 넘 맞나?)
차창에 앞발을 올리고 -_- 비내리는 풍경을 잠시 구경하시더니 얌전해졌음.
나중에 분당 가서 동물병원 데려가봤는데 딱히 병은 없고 건강하다면서 키우실 거면 개사료를 사가라고 하더라는;;;
(요즘 동물병원은 진찰료보다 사료값으로 돈을 더 번다더니)
요즘도 가끔 사무실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데 잘 지낸다고 함.
복날을 피해서 살아남은 개라고 지어준 이름이 “면복이”.
문제는 면복이라고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
한때 강아지 고양이 열심히 키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딴 건 모르겠고 돈 들어서라도 키우기 힘든
시대가 썼습니다.
PS. 차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서 첨부.
하~ 면복이…
털이 북실북실 넘 귀여워요. 젠 천연색인가요?^^
음… 퍼그를 비롯한 납작코들은 다 좋아
왠지 눈이 슬퍼 보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