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인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같은 걸 보면, (영화에서나 보지 평생 뉴욕 가보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들만큼이나 자주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이 하나 있다. 의외로 이 건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얘기다. 미국사람들이 그걸 모를리가) 1930년에 완공된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이란 놈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931년에 완공되기 전까지, 불과 딱 11개월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높이 319m / 77층)
크라이슬러 빌딩은 그저 한때 세계 최고의 건물, 이렇게만 불리기엔 많이 섭섭한 건물이다. 첨탑부와 연결되는 상층부의 디자인은 아르데코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실 요즘 높게, 높게를 외치며 솟구치고 있는 최고층 마천루들에게선, 이렇게 낭만적인 미감을 느껴보기 힘든 게 사실 아닌가.
크라이슬러 빌딩은 맨하탄 42번가와 렉싱턴거리 교차점에 위치한다. UN본부와 중앙역 사이인데 중앙역에 많이 가깝다. 양쪽 다 걸어갈만한 거리. (뭐 맘만 먹으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도 걸어갈 수 있겠다만)
약 382만6천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보통 알려져있다. 그러나 철골구조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벽돌로만 지어진 건물은 아니고, 순수한 벽돌건물 중 가장 높은 건물은 약 130m 높이의 독일 성마르틴성당이다.
2007년 미국건축가협회(AIA)에서 선정한 “미국의 유명건축물 150선”에서 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1위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위는 백악관)
어떻게 지어졌나?
크라이슬러 빌딩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윌리엄 반 알렌. 크라이슬러 빌딩 말고는 별로 알려진 건축물이 없는 것 같다. (뒤진다고 뒤져봤는데-_-;;) 건물 이름에서도 유추가 되겠지만 원래 목적이 유명한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의 뉴욕 사옥이었다. 크라이슬러의 회장이었던 월터 크라이슬러가 반 알렌의 초기 디자인에 간섭을 많이 하면서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디자인을 집어넣기도-_- 했다고 한다. (덕분에 독특한 장식이 많이 들어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건물이 착공된 것은 1928년 9월 19일. 상당히 빠른 공기에도 불구하고 공사 도중 사망한 근로자가 없다는 점도 이채롭다고 한다.
당시에 건설 중이던 40 월스트리트(현재는 트럼프빌딩이라고도 부른다)가 283m로 높이를 확정하며 세계 최고층 건물을 선언하자, 반 알렌은 건물 상층부 설계를 변경해 약 56m의 첨탑을 세우면서 최종 높이를 319m로 높여버렸다. 결국 1930년 4월 완공된 40 월스트리트는 불과 한 달 뒤인 5월 28일 완공된 크라이슬러 빌딩에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칭호를 빼앗기고 말았다. (뭐, 크라이슬러 빌딩도 그 타이틀을 고작 11개월밖에 가지지 못했던 사실은 앞서 얘기했고)
그후 크라이슬러 회사는 1950년대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현재는 중동의 부동산투자회사 소유라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나는 어느 쪽이냐면, 건물들이 높이 경쟁 들어가서 뭐가 세계에서 가장 높고 그런 싸움(?) 벌이는 거 참 어이없다 생각하는 쪽이다. 고층빌딩이 쭉쭉 치솟아서 도심을 삭막하게 만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건물 지붕 위로 하늘 보기가 너무 힘들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삭막한 마천루들도 이렇게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진 건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장식적인 디자인,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