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괴팍스러운 경우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영화를 볼 때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나가는데 방해가 된다면 방해가 안되는 자리까지 나와서 서서 보더라도 꼭 끝까지 다봐야되는, 싸이코에 가까운 인간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일찌감치 나가는 인간들은 영화를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고맙게도, 몇몇 영화에서 나 같은 싸이코를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해주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성룡 영화에 흔히 나오는 NG 장면 모음이라거나, <피라미드의 공포>에 나왔던 충격적인 장면(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 나온다. 즉 그 장면을 못본 사람은 영화를 다 못봤다는 말이다) 같은 경우가 그렇다. 최근에는 나 같은 싸이코가 점점 늘어나는지 이런 배려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극장에 가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지경이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라는 화장실 코미디는, 엔딩에서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평소에 자막이 올라가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인을 어디 으슥한 장소로 끌고 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궁리에 바쁜 사람들이라도,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아마 거의 다 보고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왜냐하면 시작부터 자막부터 치켜올려주는 수준이 아닌, 진짜 뭔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본 내용에서는 사실 잠깐 지나가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죄수들이 (정확한 표현으로 엑스트라… 가 맞겠다) 나란히 서서 원, 투, 쓰리, 포!를 외쳐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암시하며 시작하는 엔딩 크레딧은, The Foundation 이라는 그룹의 “Build Me Up Buttercup” (영화 못지않게 노래 제목부터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라는 노래에 맞춘 한편의 뮤직비디오라면 맞을까. 영화 내용만큼이나 촌스러운 창법의 노래에 맞춰 영화 출연진이 영화 장면 속에서 춤을 춘다. 일부러 영화 촬영 도중에 엔딩을 위해 특별히 찍었다는 티가 확 나는 장면이다. 그밖에도 NG 장면이나 연습장면 등도 보너스 차원에서 보여주는 이 엔딩 크레딧은 최근에 본 엔딩 크레딧 중에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앞서 말했지만 조금 더 부연하자면, 요즘 어느 가수가 “우우우~ 베이베~” 이런 유치한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겠는가. 노래 자체만으로는 절대 좋은 소리 못해줄 곡이지만 너저분한 유머가 난립한 화장실 코미디 영화에는 딱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50년대 분위기 팍팍 풍기는 이 노래에 맞춘 나레이션과 유치한 춤으로 도배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정말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적절한 엔딩이다. 고상함으로 무장한 많은 여성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다가 나와버리고, 또 혹은 아예 볼 생각조차 안했겠지만, 이렇게 촌스럽고 유치한 음악을 들으며 어깨춤 추는 게 뭐 나쁜 짓도 아니고. 비록 영화는 노래하는 가수에게 총을 쏴서 죽여버리는 황당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지만 유쾌한 영화고,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이 음악과 화면도 영화 본내용 못지않게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