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은 좋아하지만 인간은 싫어하는 가수가 셋 있다. 하나는 듀스고, 또 하나는 유영석(푸른하늘)이며, 나머지 하나가 신해철이다. 뭐 인간을 싫어한다고 해서 가수 자체를 평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혹 이분들의 팬이 있다면 지레 흥분하지 않아주셨음 좋겠다.
상당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신해철의 그룹 N.EX.T가 만화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그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이상하다거나 딴지를 걸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신해철의 팬들이라면 그가 만화영화 음악에 관심을 보여왔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외국의 경우…라고 해봤자 일본이지만, 극장용 만화가 아닌 TV 방영용 만화 – 그것도 슈퍼로봇물 – 에도 상당한 실력의 뮤지션이 참가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작품의 질을 살리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신해철이 음악을 맡은 <영혼기병 라젠카>는 음악에 비해 작품의 인기가 바닥을 긁고 말았지만…
로봇만화 주제가에는 “지구를 지켜라~” 내지는 “용감하다 씩씩하다~” 류의 가사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고리타분한 분들에게는 로봇만화의 음악을 신해철이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긴 신해철이 나와서 “기운센 천하장사~”를 부른다면 꼴이 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신해철의 음악은 아무래도 “마징가”류와는 다르다. 엔딩에서 흐르는 “먼훗날 언젠가”가 인기는 더 끌었음이 확실하지만, 주제음악이랄 수 있는 “Lazanca, Save Us”를 들으면 (음… 제목은 조금… “지구를 지켜라” 수준이다) 확실히 “마징가”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만화 자체로도 확실히 달랐으면 얼마나 좋을까?) 육중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외치는 남성 코러스, 그리고 장엄한 여성들의 허밍코러스. 뭔가 <글래디에이터>류의 액션 대작에나 어울릴법한 곡을 신해철은 일개(?) 만화영화의 스코어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주인공 로봇인 라젠카가 뭔가를 부수면서 등장할 때(왜 슈퍼로봇들은 뭔가를 부수거나 헤쳐나오며 등장해야되는지…?) 나름대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된 이 음악은, 그러나 솔직히 음악적 완성도에 비해 만화 속에서는 잘못 쓰여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아니, 다 좋다. 다른 음악을 써야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다만 요즘 어지간한 OST 앨범은 팝앨범 따로, 스코어 앨범 따로 나오는데, 왜 “Lazenca, Save Us”는 스코어버전과 팝버전을 달리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일 따름이다.
어지간한 로봇만화에서 극중에 가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팝버전을 삽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연주곡으로 재편곡한 스코어버전을 삽입하며, 그것도 다양한 편곡으로 상황에 맞춰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중한 음악에 맞춰 라젠카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신해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버린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아 몇 마디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