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공업시간이 일주일에 세시간이었는데, 그중 한시간만 빼서 전산시간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애플II 컴퓨터를 접하게 된 것이다. 애플II 베이직으로 뭐 이것저것 배웠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배운 거 별로 도움 안되는 거 같다. (아, 그때 애플 베이직으로 만든 “포쏘기”라는 게임을 수업시간마다 했었다. 그게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포트리스”의 원시적 형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컴퓨터로 하는 짓은 별로 발전한게 없는 거 같다)
사실 그 전부터 소년중앙 같은 잡지에 컴퓨터 광고가 실리면 한번씩 훑어보는 정도의 관심은 있었는데, 아마 국민학교 3~4학년때쯤 (그러니까 80년대 초반이다) 어느 컴퓨터 광고에서 “움직이는 만화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컴퓨터를 사면 만화영화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나보다”라는 쓸데없는 환상을 품었는데, 공교롭게도 아직 그 환상은 깨지지 않았다. 죽기 전엔 할 수 있을라나. (지금 돌이켜보면, 도대체 그당시 개인용 PC – 당시엔 퍼스컴이란 일본식영어가 통용되고 있었다 – 수준으로 과연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했었을까? 싶은데)
결론적으로 대학 들어갈 때까지 나는 컴맹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집에 있는 컴퓨터에 모뎀을 달아서 PC통신을 한다는데 그게 무슨 짓인지 관심도 없었고, 게임을 카피해서 서로 교환하고 하는 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그 수준은 변함이 없었고, 웃기게도 고1때 배운 애플베이직을 할 줄 아니까 나는 컴맹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기 까지했다. (그때 이미 애플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IBM 호환기종 – XT급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는데도) 그 믿음이 언제 깨졌냐하면, 대학교때 친구넘들하고 설악산 놀러가면서 (나를 뺀 다른 넘들은 전부 컴퓨터 도사들이었다) 버스 안에서 계속 컴퓨터 얘기만 해대는 거였다. 나도 애플베이직은 아니까 끼어들라고 했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심지어말이지, “디렉토리”라는 말조차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건축과를 들어가다보니까 아무래도 “CAD”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접하면 뭐하나 아는 게 없는데. 나름대로 컴퓨터를 잘한다는 친구들은 “아기곰(Archi-Com)”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 지들끼리 뭐 공부도 하고 하는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때까지 컴퓨터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컴퓨터 가지고 게임이나 하고 워드나 치는 친구들 보고 게임은 오락실 가서 하고, 워드는 워드프로세서(당시 전동타자기 비슷한 워드프로세서란 이름의 기계가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없어졌지만)로 작성하라고 충고(?)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컴맹 시절이었다.
정확히 대학교 2학년 1학기 중반까지 나는 컴맹이었다. 그무렵 내가 친구한테 동아리 회칙을 부탁했었는데, 이 녀석이 그걸 아래한글로 쳐서 (아마 1.52버전이었을 거다) 디스켓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이런 씨불~ 나는 1학년 후배 중 컴퓨터 잘하기로 소문난 손 모군을 붙잡고 공대 PC실로 끌고갔다. 비록 컴맹이지만 오고가며 친구놈들 하는 걸 구경은 했기에 (친구들은 내가 컴맹임을 이용해 나에 대한 얘기를 워드로 쳐서 저장해놓고 나보고 찾아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하얀게 글이고 dir하면 뭐가 나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쪽팔리다…) 하여튼 손 모군은 디스켓을 컴퓨터 어디에 찔러넣고 뭔가를 막 뚜적거리더니 내가 원하는 그 문서를 화면에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거 인쇄만 하시면 되요” 하고 일어서는 손 모군을 나는 필사적으로 붙잡았었다. “야! 인쇄 해주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