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에 성공하기는 할 영화. 유감스럽지만, 비트를 보고나서 그 이상의 좋은 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삼성에서 제작을 했다더니 아주 손해보지 않으려고 작정한 영화같다고 할까.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우선 눈길을 끌어야 한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가장 눈길을 끌기 좋은 것은 스타를 간판으로 내세워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비트에서는 신세대를 겨냥한 영화답게 정우성과 고소영을 내세웠다. 그러나 고소영은 미안하지만 두드러지지 않았다. 비트는 어디까지나 정우성을 위한 영화였으니까.
뭐 스타 시스템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스타에 의존해서 스타를 위한 영화를 찍어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데 비트는 정우성을 띄우기 위해서 작정한 영화라고나 할까, 정우성이 연기한 민이란 캐릭터를 최대한 미화시키고 있는데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그 미화 작업이 영 비뚤어진 영웅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미화작업으로 인해 민의 성격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아주 불분명하다. 주먹을 잘 쓰는 깡패, 그러나 의리가 있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뭐 이런 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은 냄새가 날 뿐이다. 학교에서 공부로 1등을 하는 로미(고소영)를 여자친구로 두고, 오토바이를 두 손을 놓고도 멋들어지게 타는 사나이. 작위적이긴 하지만 거기까지는 괜찮다고 치자. 그러나 민의 행동에는 우선 일관성이 없다. 어떤 주관이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때 그때의 감정에 의해서 행동하지만 그 감정마저도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 처음부터 살펴보자.
민은 전에 있던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친구 태수와 헤어져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온다. 먼저 학교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말로는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무실에서 폭력적인 교사의 모습을 부각시켜 민의 모습을 기성세대의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사나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알리려고 한다. 학교에서 민에게 처음으로 얻어터지는 환규(임창정)의 모습은 허풍이 심하고 본드를 마시는 학생으로 주먹을 쓰는 학생들끼리의 세력 다툼 차원이 아니라 괜히 민을 건드리다가 당연히 맞을 매를 맞는 역할이다. 나중에 로미를 만나는 장면에서 환규가 애인 경매를 하면서 민을 나오라고 할 때 한 번 빼기도 하는 고상함까지 갖춰, 여기까지 민의 전반적인 성격은 부당한 것을 싫어하는 정의의 사나이, 기성세대의 억압에 저항하는 신세대 그 자체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민이 기성세대에 대해, 특히 부당함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반발하는 정의로운 캐릭터로서는 어설프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된 교무실에서의 난동도, 자신에게보다 타인에게 – 즉 친구인 환규에게 가해진 체벌의 가혹함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을 참아넘길 수 있지만 친구에게는 안된다는 의리를 발휘하는 것인가? 나는 참을 수 있지만… 이러한 성격을 민에게 들씌우는 것은, 민을 좀더 멋진 사나이로 포장하고자 하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민의 그 어설픈 고상함은 영화 곳곳에서 눈에 거슬린다. 개업한 분식집에 쳐들어온 깡패들에게도 반발하는 척 하지만 결국은 환규의 뜻대로 돈을 건넨다. 그러면서도 직접 당구장에 들어가서 깡패들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환규를 시킴으로써 고상함에 한층 빛을 더한다. 아마도 환규가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당구장을 쳐들어가 돈을 되찾는 위험한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식집이 철거될 때도 환규는 칼을 빼들고 저항하지만 민은 공무원과 차후의 대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침착함을 보인다. 친구들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자신에게 닥친 일은 아주 고상하고 담담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민의 어설프고 모호한 멋쟁이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편의점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편의점 주인은 환규가 돈을 훔쳤다고 의심하고 환규를 몰아붙인다. 여기까지 민은 그저 점잖게 말리기만 한다. 그러나 환규가 강하게 반발하자, 민은 오히려 주인을 몰아세우며 판매대를 뒤엎고 편의점을 뛰쳐나온다. 여기까지는 아무 상관없다. 의리에 찬 사나이, 신세대를 몰아세우는 부당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자의 입장으로서.
그런데 편의점을 나와서 환규가 돈을 꺼낸다. 민이 깜짝 놀라자 환규는 “저 새끼가 우리 퇴직금이나 제대로 챙겨줄 거 같애”라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다. 여기서 민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부당하지 않았음을 알고도, 자신의 친구가 오히려 죄를 지었음을 알고도,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음을 알고도 아무런 정의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은 것이다. 뭐야 그럼? 결국 민은 지금껏 감독에 의해서 멋드러지게 포장되기는 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십대 반항아에 지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옳고 그름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가치판단은 그저 처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그렇게 행동하는 반항아. 영웅이 되기는 어설프다.
영화 내내 민은 의리와 사랑이라는 가치기준만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로서의 반발 같은 것은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태수의 깡패 조직에도 환규가 사고를 치자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담한다. 물론 철거민을 상대하러 나갔을
때는 주먹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얻어터지는 고상함은 끝까지 포장된다. 하지만 민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에는 의리보다 사랑이 더 결정적이다. 로미가 준 삐삐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로미가 떠나고 로미를 잊으라는 친구들의 진실한 충고에도 화를 내며 치고받는 싸움을 한다. 로미와의
생활을 위해 태수의 조직에 안주하기도 하고.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민은 지금까지 그나마 일관되었던 사랑마저 헌신짝처럼 버려버린다.
태수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중요한 싸움에 일부러 민을 데려가지 않는다. (처음엔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뒤늦게 연락을 받은 민이 뛰어갔을 때는 이미 태수가 만신창이가 된 다음이었다. 여기서 민은 조용히 태수를 업고 나올 뿐, 주위에 둘러선 전갈의 부하들과 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숫적으로도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토바이로 달리던 도중, 태수가 죽었음을 알자 민은 다시 그들에게 돌아간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로미를 아주 간단하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설마 민이 그 숱한 깡패들을 다 무찌르고 무사히 살아나올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갔다. 전에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 이병헌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런데 너희들 중 한 놈은 나와 같이 가야겠다’. 뭐 거의 이런 심정으로 말이다.
만약 영화에서 태수가 죽는 장면과 민이 주차장으로 쳐들어가는 장면 사이에 민이 로미에게 마지막 전화라도 한 통화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민은 로미를 아주 쉽게 포기했다. 로미가 먼저 헤어졌을 때는 안절부절 못하고 충동적으로 선아와 섹스까지 했던 민이, 태수의 죽음 앞에서 아주 간단하게 로미를 포기한 것이다… 뭐야 그럼? 민이란 캐릭터 자체가, 자신의 판단기준이라는 것도 별반없이 그저 순간순간의 감정에 치중하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가 아닌가.
영화 전체를 크게 보면, 민은 대충 이런 성격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다. 기성세대들에 의해 비뚤어진 세상을 비판하고, 기성세대의 눈에는 일탈행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름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지만, 아쉽게도 친구들과 기성세대의 벽에 부딪혀 마침내
좌절하고마는 한 신세대의 모습으로. 원작인 만화를 보진 못했지만 원작에서는 적어도 이렇게 그려졌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민은 기성세대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도 않고 어떨 때는 타협하며(억지로 고상하게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지적은 피할 수 있었다) 나름의 뚜렷한 주관도 없으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하는 겉멋만 든 어설픈 멋쟁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촬영과 음악에 대해서도 한 가지씩만 얘기하겠다. 스텝 프린팅은 왕가위가 히트시킨 이래 우리나라 영화에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발되는 촬영기법인데, 비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역시 정우성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정우성이 싸우는 장면에서만 나온다. 영화에서 제법 중요한 장면인 태수와 전갈의 싸움 장면은 그냥 펑이하게 찍는데, 정우성만 등장하면 갑자기 화면이 이상해지면서 어떻게 싸우는지 잘 분간은 안 가지만 하여튼 정우성이 이기고 만다. 지독한 스타 만들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이 두 손을 놓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나오고, 비틀즈의 “Let It Be”가 흐른다. 내버려두라고, 나는 자유롭게 행동할테니 죽으러가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인가. 내용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수준인데도 정우성의 어설픈 고상함으로
평론가들의 혹평을 피한 영화, 그의 어설픔에 환호한 관객들에 의해 계속 이런 어설픈 영웅들이 스크린에서 설칠 생각을 하니 갑자기 화가 치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