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라디오로 영화음악을 듣던 시절, 귀에 익은 영화음악 작곡가가 몇 명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영화라도 그 사람들이 작곡했다고 하면 일단 자신있게 녹음 버튼을 누를 수 있을만큼 (그랬다가 실망한 경우도 있긴 있었다) 내 귀에 익숙했던 이름 중의 하나가 바로 모리스 자르였다.
일단 그의 대표작으로 꼽힐만한 <닥터 지바고>가 연말 영화음악 순위발표에서 10위권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맨발의 이사도라> 같은 작품 역시 라디오에서 숱하게 들려줬던 음악이었고, <지상 최대의 작전> 같은 경우는 아예 MBC에서 가사를 붙여 회사 로고송으로 쓴 적까지 있었으니…
그런데 세월이 제법 흘렀다고 생각되는 요즘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OST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는 솔직히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최근 그의 음악은 전자음악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지면서 자기 음악 스타일만 고집하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물론 그의 아들이 3대 전자음악가로 평가받는 장 미셀 자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뭏든 80을 바라보는 작곡가가 그 정도로 깨어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단순히 신디사이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그의 음악적 색채를 전혀 잃지 않고 악기만 신디사이저로 바꿔버린 듯한 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모리스 자르
2002년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