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무] 대단한 언론플레이

먼저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비천무>를 보지 않았고, 볼 생각도 전혀 없다. 이미 왕가위 영화를 보지 않은 주제에 왕가위를 비판했다고 (무려 두편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왕가위팬들에게 엄청나게 쥐어터진 형편에, 다시 같은 방식으로 물고늘어질 <비천무> 팬들과 소모적인 싸움을 할 생각은 물론 없다. 당연히 이 글은 <비천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앗쭈 꼬리를 내리는걸…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빈정거리면서 이 글을 끝까지 읽어봐라. 그리고 불같이 노하지 말라. 또한 나는 논란의 정점에 있는 바로 그 김혜린의 만화 <비천무> 또한 전혀 보지 않았고, 역시 볼 생각 전혀 없다. 이 정도면 이 글을 써나감에 있어 선입견이 될 요소는 미리 밝혀두었다고 생각되는 바, 본론을 진행코자 한다.

먼저 왜 이 글을 쓰는가, 부터 말해야겠지만 그 전에 비천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부터 기술해보도록 하자.

  1. 2000년 7월 20일 현재, <비천무>의 국내 흥행은 전국 150만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관객은 50여만명)
  2. 제법 머리 굵다고 일컬어지는 영화평론가들치고 <비천무>를 영화 자체로서 높게 평가해준 경우는 거의 없다.
  3. <비천무>를 욕하는 사람들은 주로 원작만화의 팬들이고, <비천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만화와 영화를 일대일로 비교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이상으로 살펴보면 답은 간단하다. <비천무>는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무협액션물이라는 장르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비천무>는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으며, 그러나 원작만화의 팬들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의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몇몇 인용문을 넣고자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천무’의 흥행 목표는 200만 명. 그래야 본전을 건진다. 제작비 41억원에 엄청난 마케팅, 홍보비. 110여개 극장에 걸기위한 필름 프린트 값도 만만찮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현재 140만 명을 넘어섰지만 극장가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개봉 3주째부터 급하락하고 있다. 특히 서울이 저조(50만 명)하다. 디즈니 ‘다이너소어’까지 뛰어들어 전국 40만 명을 빼앗아 갔으니. 200만 명을 가뿐히 넘은 ‘미션 임파시블2‘와 ‘글래디에이터’가 부러울 뿐이다… (후략)
………2000년 7월 21일자 한국일보

위에 적은 첫번째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되겠다.

(전략)…하지만 막상 영화가 끝날 때쯤 시사회장의 열기는 많이 식어갔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때 터져나온 박수도 힘이 빠져있었다… (중략) …애절한 멜로드라마와 비장미 넘치는 무협이라는 양날의 칼날을 만들려다 액션위주의 ‘보여주기’에만 치중하면서 ‘칼틀’ 자체가 휘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중략) …장면과 장면사이 여백속에 흘러들어가야할 극적재미마저 말라붙었다… (중략) …낱낱의 에피소드만 있을 뿐 그 속을 관류해야할 애틋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략)
………2000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

(전략)…영화 비천무는 만화 원작이 진하게 품고있던 ‘비장미’, 안타까운 그리움과 절제, 애절한 사랑을 수십년간 가슴 속에 묻어둬야했던 한, 소박한 꿈조차 파괴해버리는 역사의 피바람, 모든 것이 끝난 뒤의 허무함, 사려깊은 대사의 맛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데 실패했다…(후략)
………2000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 (위와 다른 기사)

(전략)…11권짜리 장편을 2시간 남짓한 영상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비극의 씨앗이 되는 서사적 배경과 이야기 구조가 밋밋해졌다… (중략) …하지만 화려한 외형을 뒷받침하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는 아무래도 실망스럽다… (중략) …피를 토해야할만큼 간절한 순간에도 건조하게 대사를 읊조리는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이고, 연약하면서도 강인했던 설리를 연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후략)
……….2000년 6월 30일자 한국경제신문

(전략)…원작의 방대한 스케일을 모두 영화에 담아내려 욕심을 부리다 산만해지고 진부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모성애가 우러나는 어머니역까지 깊이있는 내면연기가 요구된 설리역에 김희선 연기도 다소 역부족이었다.
……….2000년 6월 29일자 매일경제신문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또 일부 좋은 얘기도 없지 않지만) 이 정도면 두번째 얘기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이야기는 뭐, 안티 비천무 사이트를 찾아가보면 백마디 말보다 빠를 것이고.

전에 없이 서설을 길게 끌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시작하자. 자, 질문을 던져보겠다. “왜 작품성이 떨어지는 이 영화에 관객은 대짜로 몰리는가?” 이 질문은 우리 사무실 옆자리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비천무>를 보고 온 후 분노에 차서 허공에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김희선 신현준 주연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비천무>는 올여름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일간스포츠)
“비천무 예매 신기록 세운다” (스포츠투데이)

이런 식의 스포츠신문들 바람잡이는 뭐 영화 한편 개봉할 때마다 흔히 있어온 일이니까 냅두자. 물론 <비천무>에 유독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넘어가야겠지만, 그거야 마케팅부서의 능력 문제일테니. 그런데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비천무 ‘너만 믿는다'(제목)
(전략)…<비천무>가 올 한국영화의 흥행판도를 좌우할 핵심변수로 떠올랐다… (중략) …한국영화는 올 상반기 <반칙왕>을 제외하곤 뚜렷한 흥행성공작을 낳지 못했다… (중략) …위기감이 영화인들 사이에 팽배해있다. 또 27일엔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이 발표돼… (중략) …이런 시기에 <비천무>가 개봉된다. 당연히 영화계 전체가 <비천무>의 흥행성공을 갈망하고 있다. <비천무>가 관객 사랑을 독점해야만 이후 개봉될 영화들이 후광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후략)
………2000년 6월 30일자 일간스포츠

기가 막히지 않는가. 논조를 보면, <비천무>가 망하면 적어도 올해 한국영화는 망한다는 말이다. 단일민족 대한민국 국민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영화까지 끄집어내면서, 또 영화계 전체가 갈망하고 있다면서, <비천무>를 보는 것만이 한국영화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은근히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더군다나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만든다.

(전략)…과연 <비천무>가 한국영화 흥행전체를 좌우할 만한 작품 수준을 갖췄을까.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영화인들은 “힘이 넘치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시사회를 통해 미리 접한 일반팬들도 “액션장면이 홍콩영화 수준을 능가한다. 거의 예술에 가깝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 김희선이 톰 크루즈를 이길 수 있을까.

눈물 나지 않는가. 이쯤에서 내가 왜 전에 없이 글의 앞부분에 여기저기 신문에서 인용문을 갖다 붙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영화인이 힘이 넘치는 영화라고 했다지 않는가. 시사회를 본 팬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인용해온 기사를 쓴 사람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내가 인용해오지 않았지만 시사회에서부터 <비천무>는 비관적이었다. 좋게 말해준 사람들도 “흥행은 되겠다”였고, 나쁘게 말한 사람들은 일관되게 정신없는 편집과 허술한 플롯, 욕나오는 연기를 꼽고 있었다. 그건 다 어디루 사라지고 예술에 가까운 영화만 남았단 말인가.

독자들에게 가급적 객관적인 얘기를 해주어야할 언론에서, 이 영화를 띄우기 위해 작정을 하고 나섰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위의 인용기사가 가장 심한 경우고, 흔히 말하는 4대 일간지에서는 개봉전 짧게나마 <비천무>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지만, 권위적인 일간지가 “무협물”을 좋게 써주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누가 귀담아나 듣겠는가. 게다가 내가 즐겨 보는 <출발! 비디오 여행>의 요즘 신설 코너인 <뜰까?>에서도 <비천무>를 다루면서 액션과 멜로가 잘 조합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과연 뜰까? 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왜 안뜨겠남? 이쯤 몰아세우는데야 한국영화를 살리기 위해 너도나도 비천무를 보러 갈 수밖에. 아 예술에 가까운,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잖아. (요즘 <출발! 비디오여행>이 싫어지는게, 이 <뜰까?> 코너 때문이다. 전부터 <왜?>라는 코너로 신작을 좋게 소개해주는 분위기는 있어왔지만, 요즘은 아예 작품성과 담을 쌓은 영화들만 모아다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뜰까?가 아닌 띄우자!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주에도 이렇게 나오면 인연을 끊어버릴란다)

그뿐인가? 위에 인용했지만, <비천무>가 개봉한 뒤에도 옹호는 여전하다. 위에 관객 200만, 150만 운운하는 기사를 봤을 것이다. 물론 “전국 기준”이다. 전국 100만… 자, 묻노니,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전국관객”을 따졌단 말인가?

우리가 최다흥행작을 얘기할 때는 언제나 “서울관객”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탈세를 하려고 그러는지 뻥뛰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극장과 영화사의 관객 발표가 일치해본 적이 별루 없고, 외국에선 다 하는 (후진국은 안한다) 전산시스템도 안도입하고있어서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거다) 우리나라 관객 수치는 솔직히 “추정치”다. 그나마 서울은 지정좌석제나 되있지, 지방은 그나마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전국관객 얼마라는 건 그야말로 대충 그럴 것이다라는 무당의 예언과도 같은 것이란 말이다. <장군의 아들>, <서편제>, <쉬리>가 최고 흥행기록을 깬다고 차례로 발표가 난 것도 모두 서울관객 기준으로 발표된 것이다. 전국관객으로 따지자면 <영구와 땡칠이>를 깰 수 없다. <장군의 아들>도 나오기 전에 벌써 전국 200만 관객을 모았으니까.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추정치다. 그래서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비천무>는 전국 관객을 논하고 있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극장시스템이 그렇게 정확한 관객집계를 해낼 수 있을만큼 발전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하지 않은가? 관객수 뻥튀기다. 이렇게 많이 봤는데 너는 안볼테냐? 라는 심리전인 것이다. <쉬리>가 그랬고, <타이타닉>이 그랬다. 남들 다 보는 영화기 때문에 어 나도 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군중심리를 유발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흥행에서 대박달리는 영화는 미리 노리고 있던 영화가 아니라면 절대 극장가서 보지 않는다. (일종의 똥고집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서울과 지방의 관객 비율은 1:1 아니면 1:1을 살짝 넘는 수준이다. 작품성이 높은 작품일수록 지방관객의 비율이 떨어지고, 그렇지 않을수록 지방관객의 비율이 높아진다. (지방관객의 수준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가 그렇게 나오는 걸 어쩌란 말인가) <영구와 땡칠이>가 그랬고, 일련의 성룡 주연 홍콩액션물이 그랬다. 반대로 <초록물고기>같은 경우는 서울에서 선전하고도 지방에서 서울관객만큼도 못들어와 수입이 짭짤하지 못한 영화의 예가 되겠다. 그런데, 지금 <비천무>의 관객동원을 보면 서울:지방이 1:2를 넘고 있다. 위의 사실을 믿어준다면 <비천무>를 <영구와 땡칠이>와 같은 부류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 되겠다.

그래도 언론이 책임감은 있어서, <비천무>가 개봉한 뒤 안티 비천무 사이트가 생길 정도로 비판이 거세지자 어느 신문에서 (일부러 불확실하게 적었음) 옹호성 내지는 해명성 기사를 실었다. “비천무 왜 뜰까?”라는 제목으로. 그 기사를 다시 인용해서 인용문에 지친 여러분을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부분부분 인용과 동시에 반박을 하도록 하겠다. 물론 이 반박은 비천무의 작품성과 무관한, 그 기사를 쓴 기자의 논리적 허구에 대한 반박이다.

기사에 따르면 만화는 정보의 밀도가 높지 않은 핫미디어로서 그만큼 몰입을 요구하고, 독자는 만화를 보며 자기만의 진하, 설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수용자가 개입할 폭이 적은 쿨미디어인 영화를 보면 어느 경우라도 만화적 상상력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자. 소설이 만화보다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소지가 더 작은가? 훨씬 클 거다. 그렇다면, 위의 논리대로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원작소설의 독자들로부터 적지않은 배신감을 유발했어야 옳다. 과연 그랬나? 입달린 사람들은 전부 소설 속의 스칼렛이 걸어나와서 비비안 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판국인데, 쿨미디어가 어쩌구 핫미디어가 어째? 아니, <바람과…>뿐인가? 원작소설이나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 어디 한두 개였나? 그 중에서 <비천무>만큼 만화팬들로부터 욕을 먹은 영화가 있었나?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자기 나름의 설리를 만화를 보며 그려냈다면, 영화를 본 만화팬 중에 어쩌다 한명이라도 영화 속의 설리와 자신의 설리가 일치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관객들은 모두 똑같은 소리를 하는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나마 설리 같지만, 입만 벌리면 바로 환상이 깨져버립니다.”

또, 이 기사에서는 영화가 만화 원작의 거대한 서사구조와 복잡한 삶의 모습을 모두 생략하고 액션과 멜로만 취했음을 강조하고, “만화를 영화와 평행적으로 비교하면 당연히 혹평이 나올테니 절대 만화를 먼저 보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고있다. 엄청난 시간적, 정신적 손해라는 협박(?)성 멘트까지 곁들여서. 그렇다면, 만화를 옛날에 이미 봐버린 사람은 영화를 보지 말라는 말인가? 그런데 왜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홍보물마다 이 영화가 김혜린의 대표적 만화인 <비천무>를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머릿글에 휘갈기고 있는가? 자기들이 만화와 영화를 비교하게 만들어놓고, 왜 비난이 쏟아지니까 이제와서 “비교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무지하게 이율배반적이다. 더 웃기는 것은 따로 자료를 모아 대체적으로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은 원작자나 관객에게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부연해주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비천무에 대한 면죄부가 되나? 우리는 만화의 재미를 영상으로 옮기는데 실패한 영화들을 그저 “실패작”으로 기억할 따름이다. 다들 그랬으니 그 정도면 잘했다고 칭찬해준 적이 없단 말이다.

게다가, 그래, 많이 양보해서, 여러가지 여건상 만화에서 액션과 멜로 (캬… 우리나라 영화에서 흥행하려면 액션과 멜로는 필수요소다. 그러니까 인기만화에서 흥행이 될만한 요소만 빼냈다는 말이네. 인기없는 서사적 스토리는 홱홱 날려버리고…)만 취했으니까 그것만으로 만족하자고 치자. 그럼, 뭐하러 중국까지 날아갔는가? 왜 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쓸데없이 외화 날리고 왔는가? 액션과 멜로만 있고, 비천무란 이름(네임밸류)과 변형된 캐릭터만 필요했다면, 차라리 고려시대 어쩌구를 무대로 삼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바꿔서 영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냈어도 되지 않나? 왜 발을 양쪽에 담그고 이쪽 물고기 저쪽 물고기를 다 움켜쥐려고 하느냐 말이다. 국내에서 찍었으면 돈도 덜 들었을 것이고, 아니 적어도 외화낭비는 안했을 것이고, 무대 자체가 달라짐으로써 만화와의 직접비교가 어려워지면 만화팬들로부터 비난도 상대적으로 덜 받았을 것이다. 왜 어설프게 만들어놓고 딴소리냐 말야.

지금쯤 상당히 열받아있을 <비천무>의 팬들께 다시 한번 강조하노니, 나는 <비천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천무>의 작품성을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윗 글에서 언급한 <비천무>의 작품성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인용한 것뿐이다. 나의 관심사는 왜 이렇게 욕을 먹는 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을 거듭하고 있느냐에서 출발한 것일 따름이다. 내가 씹은 것은 <비천무>가 아니라 상업적 논리에 놀아가 정도를 잃은 언론이다. 그 점 정확히 알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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