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 1982년 프로야구를 추억하며

인터넷이라는 최첨단매체가 발달하면서, 역으로 인터넷을 통해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하는 작업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딴지일보가 주동이 되어 시작했던 태권브이의 복원이라거나 (개인적으로 태권브이 부활프로젝트 사이트에 자주 출입했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다) 삼국지 등 고우영 만화의 복간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렇듯 인터넷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팔아도 구매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업계에서 추억마케팅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란 말이다.

전형적인 조폭영화 <친구>께옵서는 사실 줄거리로나 연기들로나 그렇게 대박을 터뜨릴 영화는 아니었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친구>가 대박이 났던 이유는 영화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70~80년대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기에 아주 좋은 소재를 다루었다는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1년에 극장 한 번 가실까 마실까 하시는 40대 어르신들께서 너도 나도 손잡고 <친구>를 보시러 가실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올해 흥행 3위를 했다나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도 결국 그 수준이고 말이다. (물론 추억 마케팅을 동원해서 다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같은 처참한 실패작도 있긴 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을 떠돌던 꽤 재밌게 쓰여진 글 한 편이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추억하며> 뭐 대충 이런 제목의 그 글은, 인천에 살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해야만 했던 거의 내 또래 젊은이의 가슴시린(?) 이야기를 적절한 유머로 풀어놓은 희대의 명문이었더랬다. 이 글이 히트친 탓인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책도 나오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왼손 중간계투였던 투수 감사용의 이야기를 다룬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까지 개봉하게 되었더란 말이다.

솔직히 내 기억 속에 1982년의 프로야구는 상당히 단편적이다. 프로야구가 개막한다고 당시 소년중앙 잡지에 특집기사가 마구마구 실려대던 기억이 나고, 누가 삼성하고 짝짜궁인 중앙일보사에서 나오는 잡지 아니랄까봐 삼성라이온즈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써갈겨대는 걸 보면서 그냥 막연히 삼성이 젤루 쎈갑다 생각하던 기억, 일본에서 활약하던 그 말로만 듣던 백인천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뛴다는 뉴스를 보던 기억, 대망의 개막전 – 극적인 만루홈런의 기억, 그리고는 난데없이 붕 뛰어서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김유동의 만루홈런을 직접 봤던 기억, 이 정도다. 미국에서 돌아온 박철순이 22연승을 했는지, 백인천이 4할을 쳤는지, 김성한이 투수로는 10승을 하면서 타점왕을 거머쥐었다는 엽기적인 기록을 냈는지 도통 알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개막전 피켓걸로 원더우먼 복장을 한 여성이 나왔었다는 것과 프로구단 6개팀 중 유일하게 국가대표 출신이 한 명도 없었고 결국 꼴찌를 했다는 사실, 이렇게 두 가지였다. 감사용이나 양승관 인호봉 같은 이름도 솔직히 단편적인 기억 속에 그냥 묻혀있는 이름이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제작 소식을 듣고 개봉하면 한 번 보러갈까 망설였던 수많은 – 특히 내 또래의 – 사람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어쩌면 나처럼 단편적이 되어버린 1982년의 그 추억이 생생하게 스크린에서 살아나 숨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변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스탶, 제작진 모두 그런 꿈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젠장,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고나서 영화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를 보기가 무척 드물었다. 영화를 봤다는 대부분 사람들이 왠 박철순의 투구폼이 어쨌네, 신경식의 다리찢기가 어쨌네, 사실은 감사용이 잘 던지는 투수였네 어쨌네 이런 소리나 해대고 있더라는 것이다. 정말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는 그냥 그렇게만 봐주면 되는 영화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랬다. 보기 드물게 주인공이 패하면서 끝나는 영화, 결국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이런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등장했다는 것만큼은 평가해줘야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워낙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그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서 홍보질 해대는 바람에, 실제 영화를 볼 때는 바로 “그 주제”에 대해 감동이 먹힐 꺼리가 전혀 없어졌다는 말이다. “이건 마지막에 남녀주인공이 모두 죽는 슬픈 사랑을 다룬 이야기야. 정말 슬플 것 같지? 자, 그럼 볼까?” 이러구서 영화나 드라마를 봐봐라. 퍽이나 슬프겠다. 오히려 삼미 슈퍼스타즈가 평범한 땅볼도 빠뜨리는 형편없는 야구실력의 선수들로만 채워진 엉터리 팀인양 묘사하는게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명색이 프로야구인데 말이다. 이게 무슨 동네야구팀도 아니고… 물론 초창기 프로야구가 영 개판이긴 했지만) 차라리 그러다가 막판에 이기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괜히 웃기기 위한 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되어버리지 않았나 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 1982년 프로야구를 추억하는데는 참 소중한 영화다. 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인생에서 주연으로 사는 사람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도 가치있는 영화다. 문제는, 이건 딱 기획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다. 영화 자체가 자기 힘을 가지고 저런 이야기를 명쾌하게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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