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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여든일곱번째

2008년 1월 20일

[봉대리의 일기]

4/4 (화) 오늘도 날씨가 괜찮네…

4월 4일이라, 참으로 불길한 날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 떼거리로 잡아먹을 듯한 분위기…
(이건 우리 사무실 분위기지만)
내일 식목일이라 노는 날이니 편한 마음으로 일 마무리짓고
퇴근할라는데 피부장이 또 부른다.
아그들아 모여봐라.
예 형님.
꼭 이런 식의 분위기로 직원들을 모으는 건 악취미일까?
내일 그룹 차원에서 나무심기대회가 있으니 우리도 한명을 차출해
내야겠다.
그룹이요? 저희는 그룹에서 독립하지 않았습니까?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그렇군. 우리나라는 법따로 주먹따로 도는 사회였지.
하여튼 누군지 황금같은 휴일을 산 타다가 보내게 생겼구만.
…라고 생각하는데 피부장의 은근한 눈길이 느껴졌다.
봉대리가 가지?
미쳤어요?
…라고 말은 못하고,
곤란합니다. 내일 제사가 있어서요.
이야아~ 순발력있는 거짓말이었다.
제사는 밤에 지내니까 상관없잖아.
무슨 말씀을요, 성묘도 해야죠.
… 피부장 등뒤에 달린 달력에 4월 5일, 한식이라고 뚜렷하게도
쓰여있더군… 흐흐흐… 역시 순발력…
자네가 성묘하면 조상님들이 돌아눕지 않나?
하여튼 좋은 소리는 끝내 안하누만. 지옥에나 떨어져라.
한명 가긴 가야되는데 그럼 누가 갈껴? 황대리가 갈껴?
저도 성묘를…
거짓말아냐?
아닙네다!!!
의심스러운데.
진짭네다!!!
전유성씨도 성묘가나?
………제가 가겠습니다.
결국 짬밥의 승리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신입 여직원을 보낼 껄 그랬나?

[피부장의 일기]

4/4 (화) 따따시…

달력에 4자만 번쩍거리고 있으니 영 기분이 찜찜하다.
아니나다를까 난데없이 총무팀에서 전화가 왔다.
그룹에서 식목대회가 있는데요, 기획실은 실장님 참석하라는 이사님
지시입니다~
뭐여? 아니 부하직원이 쌔고 쌨는데 왜 내가 가야돼?
모르겠습니다~ 이사님 지시입니다~
이사 바꿔! 내 이 인간을 요절내버릴껴!
…라고 말했으면 앞으로 회사 죽 쉬어야 됐을테고.
어쩌지~ 내가 내일 성묘를 가야되는데~ 진작 얘기해줬으면 좋잖아…
어머 그러세요. 이사님께 말씀드려볼께요.
전화가 달카닥 끊어지더니 10분도 안되서 또 벨렐렐레~ 울린다.
네 총무팀인데요, 이사님이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달라고…
뭘?
까라면 까.
아니 깐지가 언젠데 또 까라는 거야. 난 국민학교 3학년때 깠단 말야.
전화를 끊고보니 슬슬 열불이 올라오네.
아니 대기업 구조조정 어쩌구 하면서 우리 회사 독립시켜주네 어쩌네
박수 짝짝짝 쳐줄 땐 언제고 또 그룹에서 하는 행사에는 꼬박꼬박
불러제끼는 거야. 사람 피곤하네 진짜.
씩씩 거리다가 도로 총무팀에 전화했다.
이사님 내일 참석하셔?
아뇨. 부장님이 제일 상급자시구요, 내일 저희 직원들 인솔해야
된다고…
그럼 그렇지! 이놈이 나한테 이거 떠넘길라고 나오라고 하는겨!
내 다음 상급자가 누군데?
영업팀 정과장님…
오케바리!! 내가 정과장한테 얘기할테니까 됐어! 그리고 나대신 우리
부하 하나 딸려보내면 쪽수 맞지? 그럼 됐지? 이사한테 얘기하기
없~기.
네…
좋았어! 바로 정과장한테 전화해서 엑엑거리는 친구한테 인솔 어쩌구
맡겨버렸다.
내 회사생활 짬밥이 얼만데 그런 유치한 자리에 기어나가게 생겼어?

SIDH’s Comment :
이때만 해도 식목일은 노는 날이었는데.
그러고보니 그나마 노는 날일 때는 식목일이랍시고 보험아가씨가 꽃씨도 갖다주고
회사에서도 식목행사한다고 직원 차출-_-하고 그랬었는데
노는 날이 아니니까 그나마 의미도 챙겨먹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식목일을 공휴일로 해야 의미가 살아난다는 사람들 주장이
그냥 공휴일 하루 늘리고 싶어서 하는 헷소리는 아니라는 말.
뭐 이렇게 말해봤자 CEO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실 대한민국에서
공휴일이 줄면 줄었지 늘어날 일은 결코 없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