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 마음이 고와야지

강한 효과음과 함께 어둠을 깨고 내리비치는 조명. 그 조명을 받은 사각의 링에는 그럴듯하게 폼을 잡은 사나이가 서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복장에 구레나룻까지 덧붙인 이 남자는, 자신이 사모하는 여성을 위해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다. 공교롭게도 그 노래가 그다지 세련되게 들리지는 않는, 70년대 유행했던 남진의 “마음이 고와야지”라는 것만 빼면 꽤 멋진 장면일 수 있었는데.

<반칙왕>은 묘하게 촌스러운 영화다. 영화의 소재를 이제는 퇴물도 한참 퇴물이 되어버린 <프로레슬링>으로 잡았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필자의 아련한 기억에야 빡빡머리 김일 아저씨의 박치기가 겨우 자리를 잡고 있다지만, 요즘 젊은 것들(?)이야 어디 그런 걸 기억이나 하겠나. 그러나 촌스럽기 그지없었던(지금 생각하니 그렇지, 그때는 뭐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겠지만) 옛날 레슬링 시합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영화 포스터를 보면 <그때 그 시절>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난다.

게다가 주인공은 30대의 회사원. 무능력한 모습으로 허구헌 날 부지점장 에게 헤드 록을 당하는 불쌍한 30대의 표상이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빌빌거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수한 30대이기도 하고, “무서운 10대 ”(엔딩 크레딧에서는 “우울한 10대”라고 나온다)들에게 따끔한 훈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말 우울한 30대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나름대로 순수했고 한편으로 암울했던 70년대의 추억을 간직한 30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 라고나 할까. 386이라고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더니, 이젠 386세대를 위한 영화까지 나온 모양이다.

그런 주인공답게 상상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바치는 노래도 촌티가 뚝뚝 묻어나는 남진 노래다. 허리에 손을 얹고 입술을 삐뚜루 무는 나훈아는 요즘도 찢어진 청바지 입고 나오며 나름대로 활약(?)을 하고 있지만, 전성기에는 나훈아보다 나았다는 남진은 요새 머하나 모르겠다. 거기다 분장은 엘비스 프레슬리. 구레나룻에 너펄거리는 소매와 바지가 트롯트가수들의 빤짝이 의상만큼이나 이질적이다. 이렇게 잊혀진 스타의 흉내에 잊혀진 노래까지, <반칙왕>은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촌스러움의 극을 달린다.

코미디 영화니까, 촌스럽게 보이는 것도 웃기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지 뭐. 그렇게 치부해버리면야 뭐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한때 남진이 다리를 떨면서 (남진도 전성시절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냈었다) 손가락을 죽 뻗으며 노래를 하는 모습에 열광하며 거꾸러지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프로레슬링”과 함께 묘한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향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웃어넘기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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