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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의 샤야? 샤아의 역습?

2001년 3월 7일

건담 팬이라면 아마 한번쯤은 고민해보았을, 지금까지는 아니라도 앞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역습의 샤아>인가, <샤아의 역습>인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발생 근원부터 따져보자. 일본어보다 영어가 아무래도 익숙하고 일본문화 개방도 전혀 없던 시절, 건담 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초의 오리지널 극장판 건담이 개봉했으니 그 제목이 바로 <逆襲のシャア>였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될 때 <Char’s Counterattack>이라는 영어제목이 동시에 들어오는 바람에,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와 히라가나 카타카나가 뒤섞인 제목은 무시당하고 <샤아의 역습>이라는 번안제목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샤아의 역습>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이 작품을 지칭하던 제목은 <기동전사 뉴건담>이었다. 뜬금없이…)

비슷한 경우로 <섬광의 하사웨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 역시 일어 제목은 <蟾光のハサウェイ>지만 영어 제목은 <Hathaway’s Flash>, 즉 <하사웨이의 섬광>이다. 사람 상당히 피곤하게 하는 영작법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 작품은 일어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있는 사람이 처음 들여왔는지, 아직 <하사웨이의 섬광>이라고 번역된 것을 보지 못했다.

현재 건담을 어설프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본다. 아직 일본어로 된 건담 사이트를 둘러볼 실력은 안된다는 전제에서, 국내 사이트가 아니면 영어권 사이트를 본 사람들은 국내에서는 <역습의 샤아>가 왜 영어권 사이트에서는 <샤아의 역습>인지가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정설은 이렇다. <逆襲のシャア>를 우리말로 바로 직역해서 <역습의 샤아>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왜 영어로 번역할 때 <샤아의 역습>이 되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 <Char of Counterattack>이라고 쓰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는 식의 설명을 덧붙여서 말이다.

그렇지만 내 홈을 죽 둘러본 사람이라면 아마 내가 일관되게 <샤아의 역습>이라는 제목을 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샤아의 역습>을 밀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흔히 <샤아의 역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역습의 샤아>라는 말이 우리말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섬광의 하사웨이>는 그래도 좀 낫지만 말이다. 같은 이유로 영어권에서도 <Char’s Counterattack>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여기서 의문을 던져보자. 우리말로도 영어로도 어색한 표현이 과연 일본어에서는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야 어설프게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니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언어 구조가 우리와 가장 비슷한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逆襲のシャア>를 일본사람들도 <역습의 샤아>라고 이해하고 있는지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샤아의 역습>을 밀고 있는 두번째 이유가 나온다. 일본어에서 の라는 글자는 상당히 활용도가 높은 글자이다. 일반적인 の의 용법은 A와 B의 사이에 위치해서 “A의 B”라는 관계를 설명해주는 조사이다. 물론 뒤의 B가 생략될 경우 ~의 것 또는 ~하는 것이라는 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말하지만 일본의 경우 “井の中のかわず(우물의 안의 개구리)”라고 말할 정도로 조사 の는 A와 B의 관계를 설명해야하는 경우에 반드시, 그것도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の가 반드시 ~의 라는 식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紅の豚>을 아무도 <빨강의 돼지>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빨강과 돼지의 수식관계를 の가 설명해주고 있지만 그것을 ~의 라고 직역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렇기에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번역해서 말할 때는 <붉은 돼지> 내지는 <빨간 돼지>, 혹자는 <홍돈>이라고 아예 の를 빼고 말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굳이 우리말로 어색하게 <逆襲のシャア>를 <역습의 샤아>로 말해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위 제목의 가장 정확한 번역은 <역습해온 샤아>이다. (조금의 의역이긴 하지만 번역이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蟾光のハサウェイ> 역시 <빛나는 하사웨이> 정도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역습해온 샤아> 대신 <샤아의 역습>을 제목으로 밀고 있는 이유는, <역습해온 샤아>가 아직 널리 공인받지 못한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조금 제목으로는 어색하고, <샤아의 역습>과 의미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아무리 들어도 정이 안가는 <역습의 샤아> 대신 영어권 제목의 직역 <샤아의 역습>을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