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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베스트셀러 독자들을 위해!

2003년 4월 20일

요즘 들어서, 영화의 러닝타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쓸데없이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영화를 종종 만나게된다. 보통,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1시간반에서 2시간 정도로 생각하면 무리없고, (한때 3시간짜리 영화들이 유행처럼 나온 적도 있긴 했지만) 관객들도 그 정도 러닝타임을 그냥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긴 한데, 과연 그 시간이 “감독이 하고싶은 말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겠느냐, 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하게 만든단 말이다.

내가 느껴왔던 수많은 영화들이 감독이 하고싶었던 얘기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넘어가고 맺어지고 했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나처럼 스토리텔링 중요시하고 이런저런 전후사정을 완전히 납득해야 만 비로소 주인공한테 감정이입이 가능한 곤두선 신경의 소유자라면, 엉덩이만 버텨낼 수 있다면(신체적 구조와 국내 영화관 구조를 감안하면 “무릎”도 버텨낼 수 있다면) 극장에서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주구장창 주저앉아서 얼마든지 버텨줄 각오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극장수입과 관객들의 통념이 영화를 러닝타임 두시간 선에서 가위질해대는 악순환(순전히 내 입장에서 악순환이다)이 되풀이되더란 말이다.

하지만 간혹, 이런 나의 심정에 일반관객들도 왕창 동조해주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들이 되겠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장편소설들은 아무리 우겨넣으려해도 2시간이란 러닝타임에 쑤셔넣기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므로 중요한 스토리와 핵심인물만 추려내서 영화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베스트셀러 애독자들이 어디 그 입장을 십분 이해해줄 수 있겠나. 막상 영화화되지 못한 장면, 인물, 사건 등에 대한 아쉬움이 크고 작고의 개인차는 있을지언정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심장을 여지없이 후비고 지나갈터, 그 순간만큼은 러닝타임이 세시간이건 네시간이건 왕창왕창 늘여서라도 못본 거 다 보고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바로 이 곤두선 신경의 소유자, 나처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라고 감히 칭해도 될만한 동화 – 과연 동화기는 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 의 첫번째 편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면에서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낼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라 하겠다. (칭찬인지 불평인지 잘 모르겠네 -_-; 그런데 의외로 그런 불평하는 인간 없더라 -_-;) 물론 이 작품은 긴 시리즈의 첫번째 편이라는 점에서 약간 눈감아줄만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긴 해도 해리 포터가 머하는 넘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되고 머글이니 호그와트니 볼드모트니 하는 주위 환경에 대한 설명에 너무 많은 러닝타임을 소요하고 있더란 말이다. (책을 나중에 읽었는데, 책도 그렇긴 하더라만-_-) 베스트셀러 독자들이 대부분일 관객들에게 그런 주변설명적인 내용을 시시콜콜 늘어놓기는 좀 글치 않은가.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은 관객들을 존중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것이, 책에 있는 내용 일부를 들어내고 스토리를 짜다보니 (그렇다고, 책과 다르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롤링 여사께서 한사코 반대하셨단다-_-) 몇몇 부분은 “아 대충 넘어가~” 이런 식으로 충분한 설명없이 빨리빨리 넘어가서 “책을 읽고나서 극장에 앉은 관객”과 “책을 읽지 않고 극장에 앉은 관객” 간에 순간적인 괴리감을 유발시키는 장면도 여럿 있더라는 말이다. (혹시 책을 더 팔아먹기 위한 수법이었다면… 손들겠다 -_-;)

베스트셀러 – 특히나 해리포터 정도 되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린 작품이라면 – 를 영화화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 “원작의 훼손”이니 “관객들의 기대감”이니 하는 것들이다. 원작을 쓴 작가라는 양반은 내 작품을 영화화라는 명목으로 마구 왜곡하고 비틀어댔다간 가만 두지 않겠다며 도끼눈을 뜨기 마련이고, 관객들은 자신이 글로만 보고 상상해왔던 인물이나 장면이 진짜처럼 살아숨쉬기를 바라는, 딱 그만큼만을 기대하고 극장에 온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중간에 끼인 “제2의 창조자”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께서 이거 어디 영화 만들 기분 나겠나 말이다. 자신들이 할 이야기는 정해져있고, 더군다나 시간도 정해져있고, 뭘 짤라서 붙이고 할 여유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책을 읽은 사람만 영화를 보러 오는 것도 아니니, 왜 이렇게 되는지는 책에서 읽으셨죠? 하는 식으로 불성실하게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어찌 딱하지 않을소냐.

더욱 걱정되는 점은, 이러한 우려가 2편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도 별로 개선된 바 없었고, (뭐 러닝타임을 늘이지않는 한 개선이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개봉예정인 3편에서는 책의 분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 많은 내용이 영화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점점 책을 읽은 관객들과 책을 읽지 않은 관객들 모두에게서 불평을 들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냐구? …뭐, 베스트셀러의 영화화라는 건 어차피 책을 읽은 독자들을 한번 더 벗겨먹으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나한테서야 답은 뻔하지 않겠나. 거 뭐하러 만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