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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힘에 대한 작은 저항

1996년 11월 1일

이 소설은 졸업작품전 준비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제대했을 무렵 써두었던 소설을 교내문학상에 응모해서 당선된 작품입니다. (30만원짜리임) 뭐 딱 세 작품 중에서 당선된 거긴 하지만서두…

그 날도 다른 어떤 날과 전혀 다름없이 공군 ××부대의 아침이 시작됐다. 정훈관실에서 튼 기상 나팔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 비행단에 울렸고, 이불을 집어던지고 복도로 뛰쳐나가 받은 일조 점호도 아무 이상없이 끝마쳤다. 그리고 일병이나 이병 같은 쫄병 녀석들은 내무반 청소와 작업장 청소를 위해 각자 담당구역으로 흩어졌고, 나 같은 상병들은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 백을 휘두르며 세면장으로 달려갔고, 고참 병장들은 밤새 잠을 안 자고 뭘 했는지 조금이라도 더 자겠다는 일념으로 내무반으로 기어들어 갔다.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고, 그때까지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던 그 아침에, 그 후로도 한참동안 우리 부대를 들끓게 할 그 사건이 이미 터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사건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지원대 식당에서 먹히지 않는 아침 식사를 억지로 대충 먹어 치우고 나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시설대대 행정계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아침부터 똥국(배추나 무우를 대충 썰어 넣고 된장을 진하게 탄 국을 우리는 대개 똥국이라고 불렀다)이 나왔기 때문에 텁텁한 기분을 떨치지 못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미리 내려와서 대대장실과 행정계 사무실을 청소해 놓는 내 쫄병 놈이 사색이 된 모습을 보고 한층 짜증이 솟구쳤다. 사무실의 청소 상태는 전에 비해 결코 깨끗한 편이 아니었고 대충대충 해 넘긴 흔적이 역력했다.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서류철이 그대로 널려 있었고, 의자도 단정하게 책상에 붙여 놓지 않고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난로도 피운 지가 얼마 안됐는지, 아직 사무실이 쌀쌀했다는 점이 가장 나를 짜증나게 했다. 쫄병 놈은 조심스럽게(아마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그랬을 것이다) 입을 열었다.

“저…, 이 상병님. 큰일났습니다.”
“큰일? 무슨?”
군대에서의 판에 박힌 듯이 돌아가는 일과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녀석의 당황한 표정을 짬밥의 부족으로 치부해 버리고 시큰둥하게 물었다. 네가 뭔가 변명을 때리려는 모양인데, 괜한 수작으로 어물쩡 넘어갈 생각이었다면 오늘 아주 혼구녕이 날 줄 알아라…. 속으로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못챘는지 쫄병 녀석은 더듬더듬 뒷말을 이었다.
“주… 주… 죽었답니다.”
“뭐?”
아침부터 느닷없이 나를 덮쳐 온 ‘죽음’이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틈도 없이, 쫄병 녀석이 다시 더듬더듬 늘어놓았다.
“비행대대 보일러실에서…, 저, 직감 근무하던 장 병장이 죽었답니다.”
비행대대 보일러실이라면 우리 시설대대 소속이다. 하긴 다른 대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쫄병이 이렇게 사색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군대에서의 죽음? 입대하기 전에 몸 성히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스쳐 갔고, 구타 근절을 외치던 대대 안전하사관의 목소리가 역시 떠올랐다. 훈련소에서 갑자기 죽었다던 친구의 친구의 형의 친구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육군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공군이 육군보다 훈련도 적고, 생활 자체도 훨씬 편하지 않은가. 전방도 아니고. 보도를 통해서도 육군에서는 가끔 탈영병이 나오곤 했지만, 아직까지 공군에서 탈영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았던 그런 종류의 사건이, 바로 내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왜 죽어? 장 병장이…. 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었고, 나도 쫄병 녀석처럼 더듬거리고 있었다. 내 쫄병 – 심 일병 – 도 박자를 맞추듯 같이 더듬었다.
“저기… 아침에 사관님이… 점호를 끝내고 직감처마다 통신망 점검을 하는데… 비행대 보일러실만 응답이 없고… 이상해서 순찰을 나가 보니까… 근무하던 장병장이 직감실에서 죽은 상태로…”
“어떻게 죽었냐니까! 내 말은 콧구멍으로 듣고 있냐!”
심 일병이 내 질문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자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쫄병에게 소리지르는 것으로 풀어 버린 셈이었다. 심 일병은 내가 성질을 내자 한층 더 쫄아서 더욱 더듬거렸다.

“예… 저… 모르겠습니다. 그건… 사관님이 지금… 대대장님께… 저… 보고를 드리고 있는 중이고… 헌병대에도 연락을 했고… 그… 계장님하고… 선임하사님은 지금 출근 중이시고…”
심 일병은 자기 책임은 다했다는 변명을 하고 싶었는지 꾸물꾸물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사후 처리가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죽음 자체가 문제였다. 아직도 그 문제를 남의 일처럼 느끼고 있었는지, 그때 불쑥 내 가슴에서 솟아오른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맞아 죽었냐? 아니면 자살이야?”
“그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중얼중얼 늘어놓을 줄만 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모르고 있군. 괜히 부아가 난 내가 심 일병의 이마에 알밤을 한 대 먹이려는데, 마침 선임하사가 사무실 문을 박차고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출근 전에 심 일병이나, 아니면 당직사관의 연락을 받은 모양으로 이미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나와 심 일병이 경례를 했는데도 받는 둥 마는 둥 넘긴 선임하사는, 모자를 벗어서 모자걸이에 던지듯 걸고(모자는 정확히 걸리지 않고 곧 바닥에 떨어졌다)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엉?”
선임하사야 급한 마음에 선임병인 나에게 묻는 것일 테지만, 사실 나도 심 일병에게 들은 말밖에는 더 아는 게 없지 않은가. 그래도 선임이라고 나한테 물어 보는데, 아는 것까지만 얘기해? 하지만 쓸데없이 아는 체 해봐야 좋을 것도 없고…. 나는 뒤통수부터 벅벅 긁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막 들었는데요.”
“누가 죽었다고 했지?”
다행히 선임하사는 선임병이 그것도 몰라? 라는 식의 추궁은 하지 않았다. 평소 성격으로 보면 그런 꼬투리를 잡을 만도 한데, 선임하사도 갑작스런 소식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누가 죽었는지는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일러실에 근무하는 장 석준 병장입니다.”
“걔 신상명세서하고, 면담 기록부 뽑아 놔.”
“예.”
대답은 내가 했지만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심 일병이었다. 선임하사는 난로를 피워 놨는지 손을 한 번 뻗어 보고는 난로 가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심 일병은 캐비닛 위에 놓인 작은 나무 상자를 열어 장병 개인 면담기록부와 신상명세서 철을 꺼냈다. 마침 면담기록부 정리를 이틀 전에 해 놓기를 잘했지. 나는 선임하사를 슬쩍 쳐다보고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면담기록부라는 것은 대대장, 행정계장, 행정계 선임하사, 주임원사가 분기마다 전 대대원을 상대로 면담을 실시해서 그 결과를 기록해 두는 것이지만, 시설대대 장병이 전 계급을 통틀어 230명이 넘는 대가족인데 바쁜 대대장이 언제 그 인원을 일일이 면담한단 말인가. 결국 면담기록부는 행정계에 근무하는 나 같은 영내병들이 ‘가라’로 면담을 실시한 것처럼 만들어 놓는 게 상식이었다. 뻔히 가라로 정리하는 줄 알면서도 인사처 같은 곳에서는 수시로 검열을 나오고, 가라로 정리한 줄 알면서도 면담 실시가 양호하다고 평가해 주고, 그런 곳이 군대였다. 물론 만약 이런 사건이 터졌는데 면담기록부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지휘관 및 행정계장에게 사병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묻지, 나 같은 영내병에게 정리를 못한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대 자체적으로는 나도 한 소리 듣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이런 사건이 터질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미리 가라 정리를 다 해 놨으니, 선임하사가 면담기록부를 보자고 해도 별로 겁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나와 심 일병은 물론이고, 대대장이나 우리 계장에게도 천만다행인 셈이었다.
“장 병장 것은 옛날 것이니까 다른 철을 봐야지.”
“예…, 예.”
내가 슬쩍 핀잔을 주자 심 일병은 뒤적이던 서류철을 얼른 내려놓고 다른 서류철을 집어들었다. 심 일병은 행정계로 배속 받은 지 아직 3달 정도밖에 안 지났고, 나는 1년 넘게 근무하고 있으니 면담기록부가 어느 철에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서류를 찾아 나선다면 심 일병처럼 버벅거리지는 않겠지만, 나는 쫄병이 자꾸 해봐야 일을 빨리 배운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 꼴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심 일병이 마침내 장 병장의 면담기록부와 신상명세서를 꺼내 복사를 하러 나갔고, 그 빈 자리를 채우려는 것처럼 당직 사관이었던 도 상사가 툴툴거리면서 행정계로 들어왔다.
“에이, 재수 없으려니……, 아이고, 필승.”
마구 욕이라도 뱉어 낼 것 같던 도 상사가 선임하사를 보고 허리는 반쯤 굽히고, 경례는 경례대로 올려붙이며 필승을 외쳤다.
“어떻게 된 겨?”
선임하사가 이번에도 도 상사의 경례는 받지도 않고 물었다. 도 상사가 반은 울상이 돼서 넋두리처럼 말했다.
“미칠 노릇이죠. 어제 밤에 순찰 돌았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것들이, 아침에 가보니 떡 죽어 자빠져 있는 게…”
“뭐? 것들? 한 놈이 아니란 말야?”
선임하사가 눈을 번쩍 치켜 뜨며 캐고 들었다. 나도 ‘들’이란 말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장 병장만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장 병장’만’이라고는 듣지 않았지. 선임하사와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 상사를 쳐다보자, 도 상사는 오히려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빨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 아, 아침에 멀쩡하게 일조 점호 마치고 각 직감처마다 전화로 통신망 점검을 하는데, 딴 곳은 다 응답을 하는데 비행대 보일러실만 응답이 없더라구요. 당직병이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러길래 이 자식들이 아직도 자빠져 자느라 전화 벨이 울리는 것도 모르는구나. 이 노무 새끼들 혼줄을 내줘야지 하고 픽업 운전병을 데리고 직감처로 쳐들어갔지요. 아 쳐들어갔는데, 직감처가 뭐 쥐죽은 듯이 고요하더라구요. 장 병장 장 병장 몇 번 소리쳤는데도 아무도 튀어나오는 사람도 없고, 그래 바로 직감실로 뛰어들어갔더니… 사실 그때까지 누가 죽었을 거라거나 하는 생각은 꿈도 안 꿨거든요. 밤에 몰래 술 쳐 먹고 뻗었거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근무지를 이탈했거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글쎄 장 병장이 이마가 박살이 나서 침구 위에 널브러져 있지 않겠어요.”
“이마가 박살이 났다고?”
선임하사가 이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 상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역시 타살이로구나. 나는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충격을 느꼈다.
“아주 박살이 났습디다. 뭘로 누가 정통으로 내리찍은 거라요. 무슨 개구리 죽은 모양으로 뻗어 있더군요. 사지를 좍 펼치고, 눈을 허옇게 뒤집어 뜨고서 말이죠… 소름이 오싹해서 뒤로 물러서다가 뒤에 서 있던 운전병 놈하고 엉켜서 넘어지고… 나도 놀라고 운전병도 놀라서 소리지르고… 아주 쇼를 했지요. 처음 생각에는 이 놈 – 장 병장이 평소에 비행대 놈들하고 무슨 트라블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누군가가 때려죽인 것은 때려죽인 거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이 놈하고 같이 근무하고 있어야 할 조 이병 생각이 나잖아요. 이 놈이 어디 갔나 찾아 볼라고 급한 데로 보일러실 문을 발칵 열었더니……”
도 상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선임하사와 나도 덩달아 침을 꿀꺽 삼켰다.
“아 글쎄, 이 놈이 문 앞에 매달려서 축 늘어져 갖고 날 짝 꼴아 보잖아요. 그 눈하고 마주치는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 운전병 놈은 내 뒤에서 뭐라고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대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뒷걸음질치다가 또 그 놈하고 다리가 엉켜서 문턱에서 굴러 버리고… 아주 정신이 나갔었다니까요. 찬찬히 보니까 이 놈이 보일러실 배관 파이프에 목을 턱하니 매고 혀 빼물고 죽어 있는 거라요. 그 뒤집어진 눈하며… 그 와중에 보일러실을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 생각도 안 납니다. 다리로 걸어나왔는지 팔로 기어 나왔는지, 거의 구르다시피
허둥지둥 나와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게 헌병대에 알리는 거하고, 그리고 내 모가지가 멀쩡할까 하고…”
“그럼, 그 놈 – 조 이병인가 하는 놈은 자살을 했단 말인가?”
선임하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도 상사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렇지 싶어요.”
“그럼, 사건은 뻔한 거로군.”
선임하사가 명쾌하게 손뼉을 치며 딱 잘라 말했다. 나는 갑자기 선임하사의 목소리가 밝아진 것 같은 느낌에 깜짝 놀랐지만, 도 상사는 나만큼 놀라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다만은 뭐가 다만인가. 아 뻔하지 않어. 쫄병 놈이 헤까닥 돌아 갖고 고참을 때려 죽이고 나서 처벌이 겁나니까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거야. 안 그래 이 상병?”
“예?”
갑작스럽게 선임하사가 묻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때 어느 틈에 들어와 있었는지 심 일병이 쭈뼛거리다가 선임하사한테 복사해 온 신상명세서와 면담기록부를 내밀었다.
“어, 수고했다. 그리고… 아까 누구라고 했지? 조 이병?”
“조 세원 이병 말입니까?”
심 일병이 조금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이 녀석도 조 이병이 자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 녀석 것도 이렇게 하나 복사해 와.”
심 일병은 더 묻지 않고 서류철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처럼 헤매지 않고 바로 조 이병의 서류를 찾은 모양이었다. 선임하사는 여전히 난로 가에 버티고 서서 장 병장의 신상명세서를 죽 훑어보고 있었다.
“이 녀석 봐라. 서울 놈이잖아. 대학도 ㅅ대학이랑 다니고…. 부모님 다 계시고, 집안도 제법이고, 아버지 직장도 괜찮고, 아주 멀쩡한 놈일세.”
“참, 대대장님이 그 두 놈 집으로 연락을 하라고 하시던 데요.”
도 상사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투로 말했다. 선임하사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 상병. 시외전화 신청해서 여기 이 번호로 전화 걸어라. 조 이병 집에도 심 일병이 복사해 오면 전화번호 확인해서 전화하고.”
선임하사가 신상명세서에 적힌 장 병장의 전화번호를 가리켰다. 집에 전화 하라고? 시키는 사람이야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기 부대인데 댁의 아들 죽었소 라는 말을 나보고 하란 말인가? 그리고 무슨 날벼락 맞은 것 같은 부모들한테 얼른 부대로 들어와서 아들 시체 확인하시오 라고 말하고? 나는 도저히 입도 떼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선임하사가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왜 그래?”
“저…, 제가 전화 걸어서… 뭐라고 합니까?”
내가 머리를 긁적거리자 선임하사도 곤란한 입장이 이해가 가는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거…, 에이. 내가 하마.”
선임하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책상에 앉았다. 선임하사가 전화기를 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쩐지 사무실에 붙어 있기가 싫어서 슬쩍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은 갑작스런 사건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당직 사관들은 대개 근무를 서고 난 다음날은 퇴근을 하기 마련인데, 도 상사는 퇴근도 못 하고 계속 우리 행정계 사무실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날 따라 늦게 출근한 우리 행정계장은 대대장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하긴 공군 장교면서도 마치 야전사령관 같은 우리 대대장이 욕을 하는 선에서 끝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테지만 말이다. 작년 가을에 무슨 일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행정계원 전원 집합, 완전 군장(훈련소 이후 처음으로 그때 완전군장이란 것을 해보았다)하고 연병장 열 바퀴, 이런 식의 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난데없는 사건으로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주임원사도 마찬가지였고, 사건을 담당한 헌병대 수사계 사람들은 아예 비좁은 우리 사무실에 진을 치고 앉아 버렸다. 평소에 우리 시설대대로 툭하면 놀러 와서 자재나 얻어 가고, 커피나 마시면서 농담 따먹기나 하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이 일이 보통 일은 아니구나, 큰 일은 큰 일이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려야 했다.
“웃기는 건 말요, 조 이병이란 놈이 그 비행대 보일러실로 배치 받은 게 겨우 어제 저녁이라면서요?”
수사계 김 반장이 내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은 채 말했다. 수사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었을 때,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그 점이었다. 조 이병이 장 병장과 한 1주일 정도라도 계속 근무해 오며 원한을 쌓아 온 것도 아니고, 어제 일과시간까지 중앙 보일러실에서 근무하다가 저녁식사를 먹고 나서야 장 병장이 근무하는 비행대 보일러실로 보내졌다는데, 저녁 6시부터 취침시간인 10시까지 도대체 장 병장이 무슨 짓을 어떻게 했길래 조 이병이 장 병장을 죽일 결심을 했단 말인가. 심 일병의 자리에 앉아 있던 보일러 반장 이 상사가 역시
어이가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러게 말요.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있지만, 하루 사이 뭐가 그렇게 밉고 싫어서 때려죽일 결심을 했는지.”
“시간으로 따지면 12시간도 채 안 지난 거 아뇨?”
“12시간이 뭐요. 딱 4시간이요, 4시간.”
김 반장의 말에 이 상사가 언성을 높였다.
“게다가 조 이병이란 놈을 살펴보니, 뭐 맞아서 멍이 들었다거나 어디 부러진 자리도 없던데, 그럼 구타를 당한 것도 아니란 거 아뇨?”
“그럼요. 장 병장이 누굴 때릴 놈도 아니고.”
이 상사가 장 병장을 두둔하듯 말했다. 선임하사가 그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꺼비처럼 목을 움츠리고 있던 김 반장이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이 상병, 자네가 보기엔 장 병장이 평소에 어떻든가?”
대화를 들으면서 자리를 뺏기는 바람에 하지 못하게 된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대화의 중심에 끌려 들어가게 되자 당황하고 말았다. 게다가 김 반장과 이 상사의 나를 보는 눈길도 나로 하여금 섣불리 말을 꺼내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장 병장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아는 것도 아닌데, 뭘 고민할 게 있다고 머릿속으로 한참을 생각한 나는 더듬거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뭐…, 잘 모릅니다. 장병장은 제가 신병 때부터 계속 직감 근무를 했기 때문에 자주 본 사이도 아니고…”
“아, 그 녀석 좋은 놈입니다. 대학도 좋은 데 다니다가 왔고, 쫄병 시절부터 열심히 일해서 보일러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고, 또 쫄병들이 오면 하나 하나 잘 갈쳐주고, 그래서 내가 신병이 오면 중앙 보일러실 거쳐서 그 놈 밑으로 꼭 보내 주죠. 그 놈한테서 이것저것 많이 배우거든요.”
이 상사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로채서 떠들었다. 장 병장을 감싸는 것 같은 인상이 역력했다. 사실 장 병장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 상사가 2년 가까이 장 병장을 지켜본 사람이니까 나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조 이병이란 놈은, 어때?”
장 병장에 대해서는 그만큼 들었으면 됐다 싶었는지 김 반장이 또 나를 돌아보았다.
장 병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조 이병을 어떻게 알겠는가. 조 이병은 신병으로 전입해 온 지 1달도 채 되지 않았고, 보일러실로 넘어간 지도 1주일이 겨우 되는 정도였다. 비록 3주일 정도 신병 대기를 하면서 주임원사실과 행정계 사무실을 전전했기 때문에 내가 자주 본 처지라고는 하지만, 상병이나 되가지고 갓 신병에게 관심을 가지기도 힘들고, 그래 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 녀석의 성격 같은 것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얼렁뚱땅 둘러대야만 했다.
“글쎄요. 그 녀석은 아직 신병이라서….”
“음, 신병이면 일등병들이 잘 알겠지. 어이, 심 일병!”
김 반장이 커피를 타고 있던 심 일병에게 화살을 돌리자, 심 일병은 깜짝 놀라서 허리를 펴다가 캐비닛에 허리를 찍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아픈 내색도 않고 김 반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예?”
“조 이병 말야. 어떤 놈이던가?”
심 일병은 나만큼 망설이지 않았다.
“조 이병 말입니까…. 저도 잘 모르지만, 성실해 보였습니다. 내무반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말이 없고…”
“그런 놈들이 오히려 무서운 법이지.”
선임하사가 뜬금없이 끼여들었다. 나는 선임하사의 그 갑작스런 말이 괜히 기분나빴다. 선임하사나, 이 상사나, 김 반장이나 사무실의 분위기를 한 사람에겐 동정적이고, 다른 한 사람에겐 조금 부정적으로 흐르도록 이끌고 있었다. 한 사람은 피해자고 한 사람은 가해자였기 때문일까? 나는 더 들을 이야기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고, 자리도 뺏긴 참이라 사무실에서 미적미적 기어 나왔다.

“이 상병님!”
운영중대 사무실에 근무하는 김 상병이 조르르 달려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휴게실로 가고 있었고, 그런 쪽으로 지나치게 눈이 밝은 김 상병이 냄새를 맡고 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대단한 놈이다, 너는.”
내가 약간의 존경심을 담아서 김 상병에게 말했다. 김 상병은 별 소리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굶어 죽을 팔자는 아니란 말야.”
내가 조금 짜증을 섞어서 내쏘았다.
“아… 무슨 말씀을. 제가 뭐 식충입니까. 게다가 지금은 먹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행정계 난리 났겠네요?”
김 상병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고가 난 보일러실이 운영중대 소속이라, 운영중대 사무실도 행정계만큼이나 난리가 났을 터였다. 김 상병도 그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빠져 나온 모양이었다.
“말도 마라. …에이, 말하기도 싫다.”
“수사계 사람들, 거기 있죠?”
“내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
내가 특히 기분 나쁜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기 때문에,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침을 칵 뱉어 냈다. 김 상병이 침을 피해서 껑충 뛰어올랐다.
“뭐래요? 사건을……”
“조 이병이란 놈이 자살하면서 자백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수사한답시고 수사계에서 설치고 있지만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지 뭐. 범인을 잡을 것도 없고…. 오히려 지금은 빈소 만들고, 영정 만들 준비하느라 바쁘다. 연락병이 사진 확대하러 갔어. 조 세원이 녀석은 갖고 있는 자기 사진도 없어서 훈련소에서 찍은 수료 기념 사진을 겨우 찾아서……”
“하지만 조 세원이가 유서를 남긴 건 아니잖아요.”
유서? 나는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일면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수사계 김 반장이나, 선임하사나, 주임원사 누구 하나도 그 점을 지적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유서보다 더 확실한 자백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유서가 없다는 사실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김 상병이 옆에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장 병장이랑, 조 이병 부모님들이 다 부대로 들어 왔다죠?”
나는 유서에 정신이 팔려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데, 정작 유서 이야기를 꺼낸 김 상병이 또 딴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유서 생각을 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응. 조금 전에 들어와서 시신 확인하고… 지금 빈소에 있을 걸.”
“억장이 무너지겠네. 자식 잘 키워서 군대 보내 놓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내가 잘은 모르지만 만약 나라면 따라 죽고 싶은 심정이겠네요. 게다가 타지에서 죽었으니…. 집 밖에서 비명횡사한 사람은 시체를 집으로 들이지 못한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그건 그렇고, 장 병장을 때려죽인 흉기는 도대체 뭐래요?”
“흉기?”
신기하게도 김 상병은 내가 모르는 것만 꼭꼭 집어서 묻고 있었다. 따발따발 떠들면서 떠오르는 데로 지껄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핵심을 꼭꼭 집어내는지 신기했다. 나는 흉기가 뭐라더라… 하고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전 내내 이 사람 저 사람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지만, 유서 얘기도 마찬가지고 흉기가 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조 이병이 목매단 줄은 나일론 노끈이라고 정확히 들었는데, 장 병장을 때려눕힌 흉기는 뭐랬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비록 내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과연 누가 흉기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무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유서며… 흉기며… 내가 그 동안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인가, 당연히 밝혀졌어야 할 내용이 한 마디 언급도 없다는 것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만들어 만든 김 상병은 콧잔등을 긁으면서 또 딴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돌려 연병장 쪽을 보고 있었다.

“조금 빡씨게 되겠죠?”
김 상병이 걱정스레 물었다. 빡씨게 되는 게 문제냐, 대대장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하여튼 행정계만 죽어 나가게 생겼어…. 나는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구타사고만 가지고도 큰일 난 것처럼 난리들인데, 그것도 아니고 살인사건에…, 자살까지. ……지금은 사건 수습하느라 정신들이 없어 그렇지, 어떻게든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불똥이 우리에게 떨어지겠지. 저녁마다 교육이다, 훈련이다…. 뭐 그렇게 안 되겠냐. 군차려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고.”
“지겨워서…”
김 상병도 투덜거렸다. 김 상병이나 나나,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대장의 성질이 얼마나 불같은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시설대대는 단기병들이 많은 편이었고, 또 우리 대대 소속 단기병들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부류들이었다. 훈련을 마친 단기병들이 대대 배치를 받을 때 밖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판단된 놈들은 ‘노가다 부대’인 시설대대로 몽땅 몰아 버리는 탓이었다. 다른 곳에 있어 봐야 귀찮으니까 시설대대에서 노가다나 하라는 것이 단기병 배치계획의 취지였다. 그놈들은 퇴근 후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제 패거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놈들이 다수라서,
아니나 다를까 수시로 그놈들이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취중폭행이나 집단 패싸움은 다반사이고, 좀 심하면 강간사건도 있었고 작게는 무단결근(단기병의 무단결근은 현역병의 탈영과 같다)까지 문제의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 그때마다 대대장은 무섭게 성질을 내면서 행정계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꼬리를 물자, 단기병들이 사고를 치기만 하면 계장은 죽겠다를 연발하며 정말 죽는 시늉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아직은 대대장도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는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였고, 폭풍을 기다리는 심정인 우리들은 더 죽을 맛이었다.
“부모님들, 봤어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 상병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장 병장 부모님이야 멀쩡한 아들을 군대에서 잃었으니 내 자식 살려내라고 펄펄 뛸테고, 조 이병 부모님은 전후 사건이 어찌됐건 간에 아들이 남의 자식 죽였으니 찍소리도 못 하겠네요. 어디 가나 피해자가 대접받는 다니까.”
“그래, 대접받는 게 좋아서 맞아 죽고 싶어?”
말은 그렇게 툭 내쏘았지만, 내 생각도 김 상병과 마찬가지였다. 장병장 부모님들이 대대장실 아니라 단장실까지 쳐들어가 내 자식 살려내라고 소리지르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했고, 조 이병 부모님들 멱살을 붙잡고 이놈 저년 난장판을 벌일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계장도 아예 두 사람의 빈소를 멀찍이 떼어놓아 두 부모들이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로 돌아온 뒤 상황을 파악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빈소를 둘러보고 온 계장과 주임원사의 말에 따르면, 장 병장의 부모는 의외로 조용한 편인데 조 이병의 부모가 그렇게 날뛴다는(?) 것이었다. 주임원사는 서울에서 사는 장병장 부모님들이 아무래도 도시 사람들이라 점잖고, 촌사람들인 조이병 부모님들은 예의도 없고 점잖지도 못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장의 말은 주임원사의 이야기와 조금 달랐다.
“장 병장 부모님들은 그런 입장이더군. 아무리 내 자식이라지만 쫄병한테 못할 짓을 조금은 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쫄병이 고참을 죽인 것 아니겠느냐, 물론 내 자식이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임은 조금 있을 것이다, 우리로선 조 이병이란 사람 부모님께 솔직히 미안한 입장이다, 이렇게…
그런데 조 이병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다고 막 사는 놈 취급하는 거냐, 내 자식은 어릴 때 쥐새끼도 못 잡았을 정도로 마음이 여린 놈이다, 그런 내 자식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 자식이 자살을 했다고 해서 범인으로 몰아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바깥 언론기관에 알리고 문제를 크게 터뜨리겠다, 이런 식이야. 장 병장 쪽이야 피해자로서 동정을 받는 입장이고 살인범도 자살을 해 버린 상태니까 마음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는 것일 테고, 조 이병은 자식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살인범으로 몰리니까 정말 필사적으로 진실을 밝혀 내겠다는 입장인 것 같아. 다른 가족 중의 한 명은 진짜 자살을 한 것이 맞느냐, 혹시 조 이병이 구타당하고 죽은 것은 아니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거든. 우리 부대로서는 사건이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하고…”
계장의 설명을 듣자 그것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봐서야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자살을 하면 아 자살한 놈이 살인을 하고 자살을 했구나 라고 판단이 서겠지만,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을 그렇게 간단하게 살인범으로 몰아치는 것을 납득하기도 어렵고, 참을 수도 없을 것이다. 조 이병의 부모들이 조 이병 시체의 부검을 반대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진상을 밝히려는 입장이라면 왜 부검을 반대하는 걸까? 아는 게 많은 심 일병이 예로부터 부검은 사자(死者)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꺼려 왔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조 이병의 부모님들은 혹시 진상이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조 이병의 부모가 반대를 하건 말건, 부검은 실시되었다. 형사 사건이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 없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부검 결과, 조 이병에게 자살을 하면서 입은 상처 외에 다른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장 병장이 조 이병을 구타하거나 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는 일단 벗겨진 것이고, 결국 조 이병만 철저하게 나쁜 놈으로 몰리게 된 셈이었다. 조 이병의 부모님이 부검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도 어쩌면 이렇게 되리라는 짐작 때문이었을까.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일과가 끝났다. 하지만 계장과 선임하사, 주임 원사를 포함한 몇몇 영외자들은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대대장도 물론이었다. 나는 심 일병에게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내려오라고 하고, 일과 끝나는 나팔이 불자마자 내무반으로 도망치듯 올라가 버렸다. 내무반 복도에 걸린 연락용 칠판에는 ‘빈소를 지킬 사람’ 명단이 적혀 있었다. ‘동원’을 좋아하는 통제실장 – 대대에서 대대장 다음이다 – 이 빈소를 지킬 사람을 내무반에서 차출해서 4교대로 ‘근무’시키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불침번 따로 세우고, 빈소를 지키는 불침번까지 근무시키고, 우리가 무슨 슈퍼맨인 줄 아나 하며 고참들이 투덜거렸지만,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군인의 신세였다. 게다가 통제실장의 ‘엄명’으로 ‘고참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불평은 더 심했다.

내무반은 이미 어제의 내무반과 같을 수 없었다. 고참은 고참대로, 쫄병은 쫄병대로 여기저기서 수군수군거리고 있었다. 각자 자기 작업장에서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사건을 종합적으로 그리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사건에 대해서 꽤 자세한 것을 주워들은 입장인 나도 잘 감이 안 잡히는 데, 저렇게 떠들어댄다고 뭘 아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당직실에 혹시 편지라도 왔나 싶어서 들어가자, 당직병이 큰 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필승!”
“오야.”
나는 경례를 대충 받은 뒤, 당직병은 쳐다보지도 않고 편지함만 뒤적거렸다. 당직병이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먼저 말을 걸었다.
“사건이 어떻게 됐습니까?”
“뻔한 거 아냐. 조 세원이 장 병장 때려죽이고 자살한 거.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알겠다.”
퉁명스럽게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이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당직병은 그 말은 맞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헌병대는 수사한다고 바쁘던데요.”
“바쁘긴, 우리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있기만 하드라.”
나는 내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 있던 김 반장을 떠올리고 이빨을 갈아붙였다.
“왜요. 오늘 내무반에 올라와서 조 이병 관물함 뒤지고, 직감실도 살펴봤다던데.”
“그야 의례히 하는 거지.”
나는 마치 김 반장이 눈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진짜 김 반장이 눈 앞에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면서.
“그리고 시설대대 일병하고 이병들은 전부 조사받았다구요. 수사계로 끌려가서요. 제가 명단을 뽑아 줬거든요…. 심 일병도 갔다 오지 않았어요?”
물론 심 일병도 갔다 왔다. 그런데 수사 규모가 모든 일병과 이병인 줄은 모르고 있었던 나는 당직병의 말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가서 구타당한 적이 있냐, 구타한 적이 있냐, 요새 신병들이 새로 전입해 오면 뭘 가르치냐…, 아주 꼬치꼬치 캐물었대요. 그래도 애들이 단결이 잘되니까 미리 맞춰 보지도 않았는데 입들이 딱딱 맞아떨어졌다나요…. 요새 군대에 구타가 어딨냐, 전입 신병이라고 괴롭히는 건 80년대 얘기다. 지금은 대망의 90년대 아니냐. 화목한 내무반을 이루기 위해 고참 쫄병이 모두 애를 쓰고 있다…”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
내가 믿어지지가 않아서 쏘아붙였다. 약간 흥분해서 떠들던 당직병은 헤헤헤 웃어 넘겼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렇게 물어 본다고 예, 구타합니다. 고참 기수 외우게 하고 목적암기 시킵니다, 그래도 요새는 민주화가 돼서 고참 애인 이름하고, 나이, 학력 외우기 같은 것은 안시킵니다, 이렇게 말할 놈이 어딨겠어요? 그런 걸 묻는 사람들이 한심하지. 신병들이야 물정 모르고 떠들 수도 있지만 하나뿐인 신병은 죽어버렸고…”
당직병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그런 걸 묻는 사람들이 한심했다. 물어 본다고 대답할 정도면 군대가 아니지. 그렇다고 구타가 없어질 것도 아니고. 나도 지금은 고참이 된 편이라 편하게 지내지만, 일병 때까지만 해도 내무반은 거의 공포였다.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에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죽고 싶을 정도로 싫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내 쫄병인 심 일병도 그렇고, 고참인 나도 그렇고 행정계원만이 아는 비애가 있다. 행정계에 근무하면 자동으로 대대장 따까리가 되는데, 대대장실 청소 문제도 있고 전화도 대신 받아야 하고, 가끔 전투화도 갖다 주면 닦아야 하고, 퇴근하고 나서 문도 감금해야 하기 때문에 대대장이 퇴근하기 전에는 절대로 퇴근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런 조항이 법에 규정되어 있다거나, 군인복무규율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다 대대장보다 먼저 퇴근했다고 내무반으로 전화해서 불러 내리는 일을 한두 번 당해 보면, 그 지겨운 짓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고참이 된 나는 물론이고 아직 쫄병인 심 일병도 이렇게 일과 후까지 사무실에 붙들려 있는 것을 결코 내켜 하지 않는데, 문제는 내무반에서 고참들 눈치 살피면서 뺑이치고 있는 일병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대장이 퇴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개기고 있는’ 우리들을 ‘청소하기 싫어서 대대장 핑계로 사무실에서 노닥거리는 놈’으로 치부해 버리고, 어쩌다 일찍 내무반에 올라오면 조금이라도 더 부려먹으려고 덤벼들곤 했다. 어쩌다 점호라도 빠지고 불침번까지 제껴버리는 날엔, 밤 11시나 12시에 올라와도 동정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때껏 자지 않고 기다려 준 일병 고참에게 끌려 들어가 화장실에서 귀싸대기를 얻어맞아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나야 이제 상병이니까 그런 세월은 지났지만, 내가 당했던 경우로만 비춰 봐도 심 일병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래도 심 일병은 조사하는 헌병대 사람 앞에서 ‘절대로 구타당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조 이병 그 놈이 보일러실로 안 가고 내무반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기왕 아무나 죽일 바엔 장 병장보다야 김 형관이 같은 놈을 죽였어야…”
“쉿, 듣겠다.”
나는 슬쩍 눈짓을 하고 주위를 쓱 살폈다. 사실 김 형관이 욕을 한다고 해서 그걸 듣고 김 형관 병장에게 고자질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재수 없게 김 형관 병장이 옆에 있다간 뼈도 못 추릴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김 형관 병장’하면, 시설대대 현역병이라면 누구나 인상을 쓰면서 무슨 재수 없는 소리라도 들은 것 마냥 귀를 후벼 댈 게 틀림없었다. 김 형관이라면 옛날부터 전입 신병이 새로 오면 어디서 개새끼 주워다가 괴롭히는 것처럼 인격적으로 모독 주기를 밥 먹듯이 하기로 유명한 꼽창이었다. 나도 그 새끼(순간적으로 감정을 발산해 버린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한테 걸려서 더러운 꼴 많이 보았으니까. 지금은 제대가 얼마 안 남은 왕고참이 되어서 열외하고 내무반 구석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지만, 저 놈 제대할 때 멀쩡한 다리로 걸어나가지 못할 거라고 이를 갈고 칼을 가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 결과가 주목되는 중이었다. 맞는 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가 없고, 좀 심한 경우는 한창 잘 타고 있는 난로에 머리를 박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고(그러나 전설은 아니다. 머리를 박으라고 한 사람 – 김 형관 병장 – 이나 머리를 박은 당사자 – 연관반의 조 병장 – 나 모두 제대하지 않고 현재 내무반에 있으니까.)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꼴하며, 자기 사무실 쫄병(불행하게도 나다) 월급 떼먹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휴게실에 영외자 이름 대고 외상을 그은 뒤 떼먹은 돈도 다수라 영외자들까지 김 형관이라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이런 고참을 모시고 사는 쫄병은 대한민국 군인 중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모두 입을 모았고, 바로 그 쫄병이 나였다. 사람 같지도 않은 고참을 모시고 1년 넘게 군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성격이 더러워지고 꼽창이 다 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이고 보니, 나도 처음 장 병장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적이나마 젠장 김 형관이나 죽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직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용기는 없었다.

대충 씻고 내무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병장들은 병장들끼리 내무반 위쪽에 모여 앉아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무반장인 서 병장이 조금 큰 소리로 말을 해서, 내무반원 모두가 그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장 석준이가 참 착한 녀석이었어. 내가 그 놈을 자주 보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 두달 전인가 B.X(공군은 P.X라고 하지 않고 B.X라고 한다) 앞에서 만났는데, 음료수라도 하나 사 달라고 엉겨 붙더라고. 물론 특별한 의미는 없이, 그냥 고참이니까 사 달라고 한 거겠지. 그땐 야야, 돈 없어, 너도 병장이나 되가지고 고참을 뜯어 먹냐, 이러면서 그냥 도망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때 음료수라도 사줄 걸, 이런 생각이 든단 말야.”
“맞아요. 장 병장이 영외자들한테도 신임 얻고, 군 생활 잘 한 사람이죠.”
김 병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상병 최고참 백 상병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참들이니까 저렇게 말하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백 상병을 돌아보았다. 백 상병도 내 눈치를 알았는지 내 쪽을 쳐다보았다.
“너도 잘 모르겠지? 이건 나 같은 보일러실 사람 아니면 모르는 거니까.”
“장 병장이 꼽창이었나 보죠?”
나는 약간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백 상병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김 형관 병장처럼 아주 내놓은 꼽창은 아니지. 알려지지 않은 꼽창이야. 보일러실 애들한테는 아주 공포지. 처음에 보일러실 신병이 오면 중앙 보일러실에서 우리 비행단에 있는 보일러들에 대한 대략적인 교육을 받고, 보일러 작동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거든. 그리고나서 가는 곳이 장 병장 밑이라고. 내가 왔을 땐 장 병장이 아직 일병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대단했으니까.”
“대단해요?”
“중앙 보일러실이 보일러실 근무를 위한 직무교육을 받는 곳이라면, 장 병장이 버티고 있는 비행대 보일러실은 군기를 잡는 곳이야. 거기서 한 사흘 지내고 나면 정신이 알딸딸하지. 뒤지게 맞고, 또 대가리 박고, 또 터지고, 뺑뺑이 돌고…. 이틀이면 보일러실 그 많은 고참 이름, 기수, 다 외워서 나온다.”
“요새는 기수표 같은 거… 안 외우잖아요.”
“너 신병 때까지만 해도 외웠잖아. 그래, 요즘은 안시킨다고 하더라. 하지만 최소한 보일러실은 직감처가 많아서, 그 직감처 전화번호는 다 외워야 돼. 그것도 장난이 아니다.”
중앙 보일러실을 거치면 장 병장에게 보낸다…. 그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오래 생각하지 않아서 그 말을 보일러 반장인 이 상사가 낮에 사무실에서 했음을 떠올렸다.
“반장도 그걸 알아요?”
“이 상사가? 뭘?”
“장 병장이 꼽창이라는 거…”
“남의 속을 어떻게 알아. 반장이 아는 거라야 애들이 장 병장 밑에 있다가 나오면 빠릿빠릿해지고 다루기 편해지는 정도지. 반장으로서야 애들이 그렇게 변하는 점이 나쁠 게 없으니까, 계속 장 병장 밑으로 애들을 보내 주지.”
백 상병이 슬쩍 웃었다. 백 상병은 평소에 잘 웃는 편이었는데, 그 웃음은 기쁘건, 슬프건, 씁쓸하건, 화가 나건 항상 튀어나오는 표정이었다. 물론 감정이 다를 때마다 그 웃음도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장 병장이 꼽창이라는 백 상병의 말은 의외이긴 했지만, 사실 짐작도 못했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작업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겐 인간적으로 대해 주고, 평소에 만나면 뭐 먹을 거라도 사주고 하는 고참들이 자기 작업장 쫄병들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게 되면, 저 녀석이 일을 잘 해야 내가 열외를 하고 좀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의식이 작용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나만 해도 일 잘하고 착한 심 일병을 틈나는 대로 갈구고 닦달해 오지 않았는가. 내가 내 고참에게 당했던 그대로.
“그렇다고 해도…, 고참 병장이 다 되어서 이제 갓 전입해 온 신병을 건드리겠어요?”
내 말에 백 상병도 그 점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검해 보니까 가혹행위 흔적은 없었다면서. 아마 장 병장이 조 세원이 그 놈을 때리거나 기합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내 생각엔…, 이 새끼 군기가 엉망이라느니, 까졌다느니 하면서 내일 날 밝는 대로 밑에 놈들한테 이야기해서 줄빠따를 맞게 해야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신병이니까 바로 위 고참들인 일병들이 한창 무서울 때 아니냐. 일병들이 신병이 오면 가장 주의시키는 게 뭐냐. 실수를 하거나 찐빠를 내도(잘못을 저지른다는 군대 은어) 고참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우리가 지적해서 고쳐 주겠다고 하잖아. 그리고 보일러실 군기의 화신인 장 병장에게 조 세원이를
올려 보내면서 엄청 주의를 줬겠지. 너 장 병장에게 찐빠 잡히지 마라. 장 병장한테 찐빠 잡혀서 우리 닦달당하면 너 가만 안 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 병장에게 걸리면 너 죽을 줄 알어. 이렇게 겁을 잔뜩 먹여 올려 보냈는데 장 병장이 찐빠를 잡았단 말야. 내일 일병들에게 추궁 당할 생각을 하고 겁먹은 조 세원이가 장 병장의 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저지른 게 아니겠는가… 이게 내 짐작이다.”
백 상병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쫄병 때는 높은 고참들보다 바로 위 고참이 몇 배 더 무서운 법이다. 비단 쫄병 시절만이 아니라, 고참이 되도 가장 무서운 고참은 한두 기수 위의 고참들이다. 전입신병이 처음 오면 일단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겁을 주며, 내무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숙지시키고 나서 신병이 교육받은 데로 똑바르게 하나 독수리 눈을 부라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바로 한두 기수 위의 고참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잘못 보이면 일생에 한 번뿐인 쫄병 시절이 영 괴로워진다. 코미디 프로를 보다가 슬쩍 웃어도 바로 이 사람들에게 끌려나가서 개처럼 얻어맞아야 하고,(졸병이 웃는 것은 금기되어 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도 이 사람들이 멱살잡고 끌어내면 화장실로 끌려가서 역시 쥐어 터져야 하는 것이다. 조 이병이 특히 밑에 녀석들에게 밉게 보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조 이병도 신병이니까 일병, 이병들이 무척 조심스럽고 무서웠을 것이다. 조 이병이 잘했건 못했건 그 점은 누구나 다 똑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장 병장이 일병들을 들먹이며 겁을 줬다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몽둥이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도 그 전날과 다름없이 기상 나팔이 울렸고, 점호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날의 일조 점호는 어제와도, 그 전날과도 달랐다. 점호를 마친 당직 사관이나 우리들은 마치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은, 안도의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다행히 어젯밤엔 아무 일이 없었다는 안도감.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가 지금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병 이병들이 청소하기 위해 흩어지는 모습이나, 상병들이 세면장으로 몰려가는 모습은 여전히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단지 병장들은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려고 내무반으로 기어 들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아침 메뉴를 장식한 똥국을 건드리지도 않고 밥만 퍼먹은 뒤, 사무실로 터덜터덜 내려갔다. 심 일병이 전에 없이 깨끗하게 닦아 놓은 사무실을 보고도 칭찬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선임하사와 계장이 아주 일찍 출근했고, 대대장도 새벽같이 나와 대대장실을 지키고 있었다. 일과가 시작되자 오늘도 역시 헌병대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서도 나와 심 일병은 밀린 일을 해치워야 했다. 다행히 오전엔 사건 처리 문제로 조금 바쁜 듯하면서도 어제 아침 같은 혼란은 없었다. 사람들은 익숙해지기 마련인가. 대대원 두 명이 죽는, 크다면 큰 사고가 터졌는데도 하루만에 그럭저럭 정상을 되찾고 있다니, 솔직히 배신감 같은 것도 조금 느껴졌다. 죽으면 자기만 서럽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정말 뼈저리게 느껴졌다. 헌병대에서도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는 모양으로, 주임원사는 벌써 장례에 대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장 병장은 ‘순직’으로 처리될 것 같고요, 장례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걸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들도 동의하고 있고요. 하지만 조 이병은 국립묘지에는 힘들고…, 살인 혐의를 배제하더라도 자살한 사람을 국립묘지에 묻기는 좀 어렵죠. 부모도 원하고, 그냥 화장을 하는 게 편하다고 봅니다.”
끝까지 편파적일 수밖에 없군. 나는 주임원사의 말을 들으면서, 왠지 조 세원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살아 있지. 살아서 영창을 가더라도 당당하게 살아 있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며 계장을 돌아보았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나이는 나보다 겨우 2살 많은 계장은, 하룻밤 사이에 팍삭 늙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장례 절차를 주임원사와 상의하고 있으면서도 가끔 넋이 나간 것처럼 말의 줄거리를 놓치고 있었다.
장례는 내일 출상하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지어지고 있었다. 3일장이니 뭐니 따지지 않고 오로지 부대의 편의만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도 후딱 끝내고 부대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유골을 집에 가져가지도 못할 테고, 장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드러눕더라도 우선 마무리를 지으려는 게 아닐까.

점심시간이 지나서, 고참 병장 몇 명이 병원으로 차출돼서 보내졌다. 두 사람의 시체를 염을 한다고 했다. 차출돼 간 병장들이 시체를 닦고, 옷을 약복으로 갈아 입혀서 입관을 시켰다. 염을 하고 돌아온 병장들은 얼굴이 사색이 돼서 말도 없이 내무반 구석에 앉아 있었다. 죽음이란 것을 실제로 보고 돌아온 충격이 커서일까. 장 병장을 맡았던 사람들은 더 심했다. 장 병장의 상처는 이마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아래턱을 맞아 턱이 빠졌으며, 목에서 오른쪽 가슴으로 푹 패인 상처가 길게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 상처를 바로 코 앞에서 보며 시체를 닦고, 옷을 입혔으니 저 사람들이 지금 제 정신이겠는가. 병원에서도 시체를 닦는 사람은 소주를 몇 병 마시고 들어간다고 하던데.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식사를 하러 가 버리고, 나와 심 일병 둘은 일찍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신문을 보고 있었고, 심 일병은 뭔가 딴 생각을 하면서 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쫄병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이, 심 일병.”
내 말이 그렇게 위협적이라거나 무섭게 들리지는 않았을 텐데, 심 일병은 정신이 번쩍 드는 표정으로 허리를 쭉 펴면서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마 살짝 졸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될 수 있으면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이번 사건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이번 사건 말입니까…”
심 일병은 쉽게 말을 꺼내지 않고 말끝을 길게 늘였다. 아무래도 같은 사무실 고참이라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부드럽게, 별로 부드럽게 생기지 않은 얼굴에 억지로 미소까지 머금고 다시 말했다.
“그냥 너희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이번 사건으로 고참들도 새삼 느끼는 것이 많다구. 군대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구타나 가혹행위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사실 우리가 너희들에게 해준 것이 너무 없다고 말야. 사건이 조금 정리되면…”
“저희들은 그리 싫을 것도, 좋을 것도 없습니다.”
심 일병이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상냥하게 말을 걸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어차피 군대란 제대하면 그만인 곳이니까요.”
군대란 제대하면 그만이라…. 만고의 진리를 읊고 있구먼. 평소에 똑똑하다고 생각해왔던 심 일병이 이런 말을 하자 솔직히 실망이 앞섰다. 내 목소리도 저절로 퉁명스럽게 변했다.
“네 말은 무사히 제대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지. 장 병장이나 조 이병은 무사히 제대하지 못한 경우 아니냐. 좀 심하게 말하면 개죽음이지. 한창 나이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봉사하겠다고 몰려와서 이렇게 죽어 나가면, 뭐 나오냐?”
“바로 그겁니다. 군대에 대해서 어차피 제대할 곳이니까,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사는 게 별다른 사고없이 무사히 제대하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심 일병의 어투는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웠다. 하지만 말 자체는 아까보다 훨씬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쳐 왔다. 그의 말은 내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고, 내 질문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기도 했다.
“네 말은 말야…, 조 이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 병장을 죽였다, 그런 뜻인가?”
“좁은 의미로 국한시키면, 그런 뜻도 되죠.”
“좁은 의미라구? 그럼, 넓은 의미로 보면 어떤 뜻인데?”
역시 똑똑한 놈이라, 말을 요리조리 꼬아서 하는 바람에 책가방 끈이 짧은 나는 금방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자식이 자기 똑똑한 거 티내나? 슬쩍 부아가 치밀었고, 내 어조에도 약간의 신경질이 묻어 나왔다. 심 일병도 그 낌새를 챘는지 얼른 꼬리를 내렸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죠. 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궁금하게 해 놓고 말을 멈추면 어떻게 해?”
내가 아까보다 더 짜증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평소에 내가 짜증을 내면 심 일병이 긴장하는 태도가 역력했는데, 지금은 예전만큼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 일병이 뭐라고 변명을 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훼방꾼이 나타났다.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선임하사가 이빨을 쑤시면서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 바람에 나는 심 일병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고, 더 말을 듣지도 못했다. 말이 없는 편인 심 일병이 제법 많은 말을 한 것으로 처음 내가 듣고자 했던 말을 들은 셈 치기로 한 것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헌병대 수사가 제법 진척이 되었는지, 수사계 김 반장이 꽤 상세한 수사 결과를 들고 우리 사무실로 왔다.
“계장님, 이것 한 번 읽어보시죠.”
김 반장은 결재 서류에서 보고서 한 부를 꺼내 계장에게 내밀었고, 계장은 보고서를 받아 들고 김 반장과 보고서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뭡니까?”
“뭐긴요…. 수사 결과 보고서죠.”
“벌써?”
선임하사가 쇳소리를 냈다. 김 반장이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1차 수사 결과죠. 시설대대장님께 한 부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계장님하고 선임하사님 먼저 읽어보시죠.”
계장은 말없이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보고서를 읽는 계장은 특별한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보고서를 다 읽자 한숨을 푹 쉬더니 옆에 앉은 선임하사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선임하사는 뭐가 신난다고 보고서를 큰 소리를 내서 읽어 나갔기 때문에, 나와 심 일병도 그 내용을 듣고 말았다.

“피해자 : 병장 장 석준.
가해자 : 이병 조 세원.
사고내용 : 상기 피해자와 가해자는 공군 ××부대 기지전대 시설대대 보일러실에 근무하는 자들로, 사고가 나기 전날 ××비행대대 보일러실에서 직감 근무 중 21시 40분 경 라면을 끓여서 나누어 먹고(라면은 부검 결과 위장에서 발견되었단다) 22시 정시에 취침을 하다가, 23시 20분 경 시설대대 당직 사관의 순찰시 기상해서 근무중 이상 무 보고를 했으며, 익일(즉 사고 당일) 01시경 가해자가 기상하여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둔기를(구체적으로 흉기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말 흉기가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지고 와 잠자고 있던 피해자의 턱을 가격,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 상반신을 반쯤 일으키자 두번째 가격을 하였으나 피해자가 피했기 때문에 목과 가슴을 스쳤고, 피해자가 완전히 일어서려는 순간 세번째로 이마를 내리쳐 쓰러뜨렸고, 다시 이마를 내리쳐 완전히 숨지게 한 뒤, 02시 40분 경 보일러실 배관 파이프에 나일론 줄을 매어 자신의 목을 매고 자살한 사건임.”
선임하사는 보고서를 소리내어 읽고 나서도 또 눈으로 읽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보고서를 김 반장에게 툭 내던지며 내뱉었다.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더니, 정말인가 보지?”
“발견하지 못했다뇨? 찾았습니다. 보고서에 둔기라고 돼 있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김 반장이 펄쩍 뛰었다.
“보일러실 구석에서 각목을 찾았습니다. 창문을 고정시키는 데 쓴 거라고 보일러실 애들이 말하던데요. 단지 피가 안 묻어 있고 지문도 없어서 확정을 짓지 못한 것뿐이죠.”
“피나 지문이야 씻어 버렸겠죠.”
구경만 하던 계장이 말참견을 했다.
“무슨 소리! 흉기를 감추려면 자살을 하지 말던지, 자살을 하려면 흉기를 숨기지를 말던지. 앞뒤가 안 맞잖아?”
선임하사가 다 아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김 반장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처음엔 발뺌을 하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흉기도 씻어 놨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겁이 난단 말야. 장 병장 사망시간하고 조 이병 사망시간이 1시간 40분이나 차이가 나잖아요. 그 시간동안 고민을 한 거라구요.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목을 맨 거지. 그러면 앞뒤가 맞죠?”
“그래도 보고서에 각목으로 내리쳤다고 안 쓰고 둔기라고 쓴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계장이 다시 끼여들자 김 반장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글쎄…, 상처가 각목으로 내기에는 너무 깊고 각목이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는 군의관의 소견이 나와서, 조금 망설이고 있는 거죠. 하지만 흉기가 각목이라는 것은 의심할 것 없습니다.”
김 반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뭔가 모자라고 허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흉기가 각목이라는 김 반장의 단정은, 단지 그 자리에 흉기로 쓸 만한 것은 각목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다. 각목을 씻어 버릴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각목이 아닌 다른 흉기를 사용했다가 직감처 밖에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현장에 남아 있는 물건 중에서 흉기가 될 물건이 그 각목뿐이니까 각목이 흉기라는 논리는, 현장에서 장 병장을 죽일 수 있는 사람으로 확인된 사람이 조 이병뿐이니까 조 이병이 살인범이라는 논리와 똑같지 않은가? 나는 갑자기 헌병대의 수사라는 것이 몹시 미심쩍어
지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조 이병의 부모들은 조 이병의 부검 결과 신체에 아무런 가혹행위의 흔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조 이병이 장 병장을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병대에서는,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이 한밤중에 그 직감처로 가서 살인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시간에 장 병장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근무하는 조 이병 뿐이라는 이유로 그 주장을 묵살하고 있었다. 야간에 당직사관이나 당직사령이 계속 순찰을 돌 뿐 아니라, 외곽도로를 따라 설치된 초소에 있는 초병들도 밤샘 근무를 하니까 취침시간에 배회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누군가가 취침시간 전에 미리 그 직감처에 와 있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행단 전체에서 일석 점호시 이탈인원이 없었고 또 23시에 당직사관이 사건 현장을 순찰해서 2명만 근무하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은 나일뿐, 대대에서는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려면 조심스럽던 사람들이, 사건 얘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고(도 상사가 장 병장의 시체를 보고 넘어지던 이야기가 특히 웃음을 자아냈다) 농담 비슷한 것도 던지고들 있었다. 주임원사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조 이병이 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무슨 뜻입니까?”
계장이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따지겠다는 건지 하여튼 주임원사에게 물었다.
“아 조 이병이 자살을 하다가 혹시 실수해서 살아났어 봐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솔직히 자백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겠어요? 처음엔 내가 안 죽였다, 이렇게 배짱을 부릴 지도 모르죠. 누가 밤에 찾아와서 장 병장을 때려죽였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부대에 야간 근무서고 순찰 도는 게 말짱 꽝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내가 죽였다, 하지만 장 병장은 죽일 놈이었다, 이렇게 주장했다고 쳐요. 그렇게 되면 우리 대대장, 계장님, 나까지 목이 온전하지 못해요. 공군 전체의 수치가 됩니다, 네. 보일러실 직감처에서 상습적으로 구타가 발생하고 영외자들은 그것을 지금껏 방치하고 있었다고 국방일보에라도 대문짝만하게 실리면… 어이구 끔찍해.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조 이병이야 자신을 보호해야 되니까 어떻게든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조 이병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물고 늘어질 것이 이 군대라는 조직밖에 더 있습니까? 우리는 괜히 그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몰려 나가고. 조 이병이 목숨을 딱 끊어줘서 얼마나 잘된 겁니까.”
주임원사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조 이병이 말없이 자살해 준 덕분에, 남은 우리들이 얼마나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정말 조 이병에게 잘 죽어줬다고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의적으로 그것이 용서가 된다면.

내무반에서는 유독 김 형관 병장만 말이 없어진 가운데, 사건에 대해서는 말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내무반에서 목소리가 큰 편인 병장들은 어저께보다 더 장 병장에게 동정적인 말을 하고 있었고, 내무반에서 숨죽이고 사는 쫄병 녀석들은 전보다 더 행동에 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같은 상병들은 위아래 눈치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참들 눈치보는 것도 지겨운데, 이제 쫄병들도 맘놓고 마구잡이로 대할 수가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에 드는 병장들은 ‘자다가 각목 맞지 않게 조심해야지’라는,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농담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그런 대로 ‘정상적’이었다. 아침 메뉴도 아주 정상적으로 똥국이 나왔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식당에서 도망쳐 나와 사무실로 내려갔다. 심 일병이 전화를 받다가 내가 들어서자 손만 들어 경례를 붙였다.
“예, 예…. 지금 출근했습니다. 바꿔 드리겠습니다.”
심 일병이 전화기에 대고 말한 뒤 나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나는 수화기를 받아들고, 별 생각없이 심 일병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군데?”
“주임원사님이요.”
심 일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했다.
“행정계 이 상병입니다 통신보안.”
나는 일상화된 말을 빠르고 짧게 끊어 수화기에 밀어 넣었다.
“어, 나 주임원사인데.”
“예 필승.”
“오늘 아침에 말야, 장례식에 따라 갈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라고 했지.”
“아, 예.”
이런 것도 시시콜콜 나한테 묻나.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심 일병을 돌아보았다.
“어제 차출한 사람들 연락 다 했지?”
“예. 다 아침에 병원으로 갔습니다.”
심 일병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수화기를 귀에 갖다 붙였다.
“다 보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서 병장이 오늘 조 세원 이병 장례에 따라가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됐어. 나하고 내무반장 간담회에 가야 되거든. 그러니까 이 상병이 좀 가 줘야겠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잠시 그 시커먼 놈을 노려보았다. 사무실에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나보고 어딜 가라고?
“바쁘지 않으면 지금 빨리 와라.”
“예.”
군대에서, 더군다나 상관의 지시에 거절이 어디 있나.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심 일병을 돌아보며 계면쩍게 씩 웃었다.
“오늘 너 혼자 수고 좀 해야겠다.”
“장례식 가십니까?”
똑똑한 심 일병은 벌써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나는 고개만 끄떡해 주고 모자걸이에서 모자를 낚아채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하필 조 이병 장례야. 장 병장 장례를 따라갔으면 국립묘지까지 가볼 수도 있었는데…. 나는 빠른 걸음으로 내무반으로 올라가 전투복을 벗고 약복으로 갈아입었다. 장례식에 따라가서 영정과 관을 들 사람들은 약복을 입으라고 어제 전달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 나름으로는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30분 정도 지나서야 병원 연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 연병장에는 텐트로 만들어진 조 이병의 빈소가 초라하게 차려져 있었다. 사복을 입은 사람들은 유족인 것 같았고, 운영중대장인 김 준위가 정복을 입고 나와 있었다. 다른 영외자들 몇 명도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영내병들은 나 말고도 6명이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나보다 고참이었고, 내 바로 위는 백 상병이었다.
“네가 왔구나. 서 병장이 빠지는 바람에…”
백 상병이 살짝 웃었다. 하지만 빈소라는 긴장감 탓인지, 미소는 맥이 없었고 어딘가 처량하게 보였다. 가장 고참인 김 진수 병장은 커다란 키를 약간 꾸부정하게 수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그 다음 고참인 양 병장은 조금 어색하게 춥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곤 했다. 주변에는 눈물 바다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온했다. 조 이병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잔디밭에 그냥 주저앉아 있었고, 옆에 조 이병의 누나나 이모 같은 여자들이 서 있었다. 텐트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아버지로 보기엔 조금 젊게 느껴졌다.
“들어가자, 추운데.”
김 준위가 자기가 추워서인지, 텐트 입구를 쳐들며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앞다투어 빈소로 들어갔다. 연락병이 뽑아 온 조 이병의 확대사진에는 사선이 두 줄 그어져서 놓여 있었고, 향로가 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훈련소에서 찍은 조 이병의 사진은 작은 사진을 무작정 확대시킨 것이라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릿했다. 희미한 조 이병의 머리에는 계급장도 못 붙인 전투모가 씌워져 있었다. 대개 이런 사진에는 탈모한 사진을 써야 되는데 그런 사진도 없었나 보지…. 영정이 놓인 테이블 뒤에는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아마 커튼 뒤에 조 이병의 시체가 놓인 관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 중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양 병장은 묵직한 분위기보다는 차라리 추운 게 좋은지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한 시간 가량 그 안에서,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양 병장이 텐트를 들추며 그 침묵을 깨뜨렸다.
“중대장님, 관을 내오라는 데요.”
“응, 그래?”
김 준위가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되돌아왔다.
“누가 가장 고참인가?”
“접니다.”
김 진수 병장이 손을 들었다.
“자네가 영정을 들게. 그리고 다른 6명은 관을 들고 나오고.”
김 진수 병장이 느린 동작으로 영정을 받쳐드는 동안, 우리는 아까보다 더 침울한 표정이 되어 느린 걸음으로 커튼 뒤로 돌아들어 갔다. 커튼 뒤에는 태극기에 싸인 관만이 숨죽이고 있었다. 여섯 명이 관에 묶인 끈을 잡고 관을 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 관의 무게가 다시금 우리들을 침울하게 했다. 들어갈 때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텐트 바깥으로 나오자, 관을 본 조 이병 어머니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야아 —”
관을 붙잡고 울려는 어머니를 누나와 이모가 막아서는 것 같았지만, 차마 그 광경을 돌아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영구차 대신 병원의 구급차 뒤에 관을 올려놓자, 김 준위가 백 상병과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 상병하고 백 상병은 말야, 저 뒤에 같이 타서 관을 좀 지켜보라고. 차가 가다가 관이 흔들리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전에 영구차를 타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냥 그렇게 하는 건가 보다 하고 관과 함께 구급차 뒤에 올라탔다. 백 상병도 다른 말없이 나를 따라 올라탔다. 차창에는 죄다 검은 커튼이 내려져있어 바깥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버스에 타는 모양이었다.

관을 사이에 두고 앉은 백 상병과 나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그 침묵은 계속되었다. 함부로 떠드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불경이라는 생각이 내 뇌를 억누르고 있었고, 백 상병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 다 관을 덮어 씌워놓은 태극기만 노려보고 있었다.
“참 작군.”
차가 부대를 벗어나서 어디론가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백 상병이 마침내 우리의 침묵을 깨뜨렸다.
“관이요?”
“음…. 조 이병이 정말 이렇게 작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관 안에 정말 죽은 사람이(나는 백 상병이 일부러 시체라는 말을 피했다고 생각했다) 있을까?”
백 상병의 말은 관 안에 조 이병이 정말 누워 있겠냐는 의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보잘것없어진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관을 들면서 그 가벼움에 놀랄 때 이미 나도 한 번 깨달았던 사실이었다. 관을 들어본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이 가벼웠던 것이다…. 관도 그때보다 형편없이 작게 보였다.

차는 한 시간 넘게 달려서 어느 화장터에서 멈췄다. 뒷문이 열리자, 이미 버스에서 내린 네 명의 고참들이 관을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나와 백 상병은 관을 밀어서 밖으로 내준 뒤, 관의 끝을 잡고 영구차 – 구급차에서 내렸다. 화장터는 산 속에 있는 건물이었는지, 주변에 집이나 가게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차로 올라온 길이 비탈져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심해서…, 이리로.”
김 준위가 앞장서서 걸었고, 고참인 김 병장이 영정을 들고 그 뒤에 섰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으로 눈길을 주고 있었다. 새삼 경치의 아름다움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내가 지금, 죽은 사람을 영영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려 한다는 사실도 역시.
버스에서 내린 조 이병의 부모님, 다른 친척들이 이미 화장터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울면서 앉아 있었다. 아주 서럽게, 정말 가슴이 사무치게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 쳐다볼 마음도 없었다 – 계단을 올라가 관을 화장터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의 왼쪽에는 관이 들어갈 문으로 보이는 둥그런 쇠문이 있었다. 화장터 인부들이 일을 하기 위해 관으로 다가왔다.
“수고했다. 너희들은 내려가라.”
김 준위가 한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현관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 화장터 옆으로 돌아가서 쭈그려 앉은 뒤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었다. 담배를 안 피우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조 이병의 친척들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소리내서 우는 사람이 어머니였을 뿐, 모두 울고 있었다. 자식을, 동생을, 오빠를, 조카를 울면서 떠나 보내고 있었다. 그 우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저 사람들 사이에 속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담배를 피우느라고 그랬는지 고참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대신 담배를 어찌나 빡씨게 빨아 댔던지 개방된 곳인데도 너구리굴처럼 연기가 뿌옇게 떠오르고 있었다.

“어이, 이리로들 와.”
화장터 현관 앞에 버티고 서 있던 김 준위가 다시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대충 담배 한 대씩을 다 피운 고참들은 꽁초를 버리고 일어섰다. 화장터 현관으로 올라가자 김 준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관 앞을 막아서라고. 바리케이트를 치란 말야.”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다른 고참들은 알아들었는지 현관문을 등지고 바깥을 보고 섰다. 나도 영문을 모르는 채로 따라서서, 우리 여섯 명은 일렬로 화장터의 현관문을 막아선 셈이었다. 현관을 등지려고 돌아서기 직전, 나는 태극기와 끈이 벗겨지고, 막 불 속으로 밀어 넣어지려는 조 이병의 관을 보았다.
“세원아아!”
조 이병의 어머니가 내 가슴에 강하게 부딪치고서야 나는 김 준위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내가 비틀거리자 옆에 있던 백 상병이 얼른 나를 받쳤고, 양 병장은 조 이병의 어머니를 붙들었다. 조 이병의 누나가 역시 달려왔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끌려 내려가는 어머니는 거의 실신 상태였고, 끌고 내려가는 누나와 이모도 펑펑 울고 있었다. 더이상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어 시선을 돌리니, 버스 옆에서 조 이병의 동생으로 보이는 여고생이 울면서 소리지르고 있었다.
“오빠 얼굴 한 번만 보여주세요. 오빠 얼굴만 보여줘요. 마지막이잖아요. 오빠 얼굴만…”
그렇겠군. 저 여고생에게는 죽은 오빠의 모습을 아마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들이야 시신을 확인한다고 보았겠지만, 아직 어린 여동생에게 보여줘 봐야 좋을 것 없다고 판단했겠지. 그래서 저 여고생은 마지막까지도 오빠의 죽음을 반신반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오빠의 관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오빠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었을까. 뒤에서 불이 강하게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불 속에 누워 있는 조 이병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조 이병의 어머니는 반은 정신이 나간 채로 울부짖고 있었고, 조 이병의 누나는 어머니를 말리며, 자기도 울면서 정말 화가 난 사람처럼 외치고 있었다.
“세원이 이 나쁜 놈의 새끼. 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야. 이 나쁜 놈의 새끼.”
무엇이 그렇게 나쁘고 빌어먹을 놈이란 뜻일까. 살인범이라서? 아니면 남은 가족들을 슬프게 해서? 그 욕을 들으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고,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화장터의 모든 풍경은 살벌하고, 그 자체가 눈물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어이쿠, 화장터의 굴뚝으로 회색 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조차도 똑바로 볼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조 이병의 어머니가 마침내 거품을 물고 모로 쓰러졌고, 조 이병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들쳐업고 버스로 올라가 버렸다. 가장 경계해야 할 어머니가 버스로 옮겨지자, 김 준위가 우리에게 철수하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가 계단을 내려갈 때 김 준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 타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버스에 먼저 타고 있던 영외자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헌병대와 기무부대, 그리고 우리 시설대대 사람들이었는데, 아마 사건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굳이 그 대화를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잘 들리지도 않아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대화 중 조금 소리가 컸던 몇 마디가 귀에 들어왔는데, 누군가가 조 이병의 뼛가루를 강이나 산에 뿌리는 것을 따라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누가 갈 것인지는 듣지 못했다.

화장은 정말 한참 지나서야 끝났다. 나는 버스 안에만 계속 있었기 때문에 화장이 끝나고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볼 수 없었다. 조 이병의 어머니는 그때까지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한 모양이었다. 조 이병의 가족들은 그곳에서 바로 떠나 버렸고, 아까 들은 대로 보일러 반장이 조 이병의 가족을 따라갔다. 우리는 우리대로 버스를 타고 부대로 돌아왔는데, 장 병장의 장례 팀은 국립묘지까지 갔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온 시간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버스는 병원 앞에 섰고, 사람들은 크게 숨을 내쉬면서 버스에서 내려섰다. 텐트로 만들어졌던 빈소는 어느 틈에 치워지고 연병장은 깔끔해져 있었다. 수고했다는 김 준위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일과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가지 않고 내무반으로 바로 올라와 버렸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전에 없이 피곤했고, 만사가 다 귀찮아서 이불 펴고 죽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장례를 끝으로 사건은 정말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범인이야 다 밝혀진 사건이었고, 새삼 조사를 더한다고 더 나올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조 세원 이병. 범죄 동기는 조 이병의 순간적인 정신 착란으로 결론 내려졌다. 조 이병의 관물함을 뒤져서 찾아낸, 조 이병이 밖의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써 놓은 편지에서 ‘군대가 참 힘들다. 못 살겠다.’라는 표현이 발견되어, 평소 군대에 염증을 느낀 조 이병이 순간적으로 정신 착란을 일으켜 옆에 자던 장 병장을 살해하고, 시간이 지나서 안정을 찾자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괴로워하다가 자살했다는 명쾌한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서인지, 특별히 징계를 받은 사람도 없었고 불벼락을 쏟아 낼 줄 알았던 대대장도 조용히 있었다. 단본부 인사처에서는 전입 신병이 군대에 빨리 적응하도록 단계별 전입 교육을 실시하는 계획을 세운다고 떠들었다. 사건 당일 당직사관이었던 도 상사, 운영중대장 김 준위, 보일러반장 이 상사가 시말서를 썼을 뿐 모가지가 날아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말은 아직 무성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의문점만 해도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과, 흉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사건동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 등 세 가지나 있었다. 내가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으므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의혹이 남아 있을 지도 몰랐다. 적어도 내가 들은 수사 결과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특히 우리 시설대대원들은, 조 이병에게 뒤집어씌운 것 같은 수사 결과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김 형관 병장이 제대를 했고, 다리를 분질러 버리네 팔을 부러뜨리네 말만 무성했던 것과는 달리 김 형관 병장은 멀쩡히 두 다리로 걸어서 나갔다. 보일러실 사건 때문에 김 형관 병장이 무사히 제대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고참들은 김 병장이 멀쩡하게 제대한 것은 보일러실 사건 탓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흔히 제대할 때마다 있어 온 제대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대자를 합법적으로 때리고 물 먹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우리 중에 제대식을 하자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대할 때면 고참들이 정문까지 따라나가 배웅하던 일도 이번엔 없었다. 김형관 병장은 혼자서 가방을 짊어지고 정문을 나갔다. 그것을 자신이 다행으로 여겼던 섭섭하게 생각했던 간에.
그리고 달이 바뀌어 또 신병이 왔는데, 이번엔 주임원사와 우리 선임하사가 아예 끼고 다니다시피 했다. 면담도 전에 없이 길어졌고, 보일러실에 새로 신병이 전입해오면 바로 직감 근무를 올리지 말라는 대대장의 엄명도 떨어졌다. 그 신병은 내무반에서 고참들 눈치도 안 보고(물론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단지 일과시간에 여기저기 교육이랍시고 끌려 다니는 것이 조금 귀찮아 보였다.

사건이 나고 2달 가까이 지나서 였다. B.X에 잠깐 들렀다가 헌병대 수사계에 근무하는 친구 녀석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면서 친해진 놈인데 어떻게 자대까지 같이 오게 된 사이였다. 헌병대와 시설대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마주치자 몹시 반가웠다.
“야, 동기야. 오랜만이다.”
내가 녀석의 어깨를 툭 치자 동기는 깜짝 놀라서 돌아보더니 이내 씩 웃음을 지었다.
“상호구나. 반갑다 야.”
우리의 대화는 처음엔 흔한 군바리들의 대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못 살겠다는 이야기, 군대가 영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이야기, 동기를 차 버리고 달아난 여자 이야기, 내가 노래 책을 뒤져서 새로 시작한 펜팔 이야기, 어저께 밤에 몰래 본 포르노 이야기,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제대 이야기 등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가, 갑자기 동기가 바로 ‘그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시설대, 좀 조용해졌겠지?”
녀석의 말이 막연하기는 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만한 눈치는 있었다. 더군다나 녀석은 헌병대하고도 수사계에 근무하는 놈이니까. 동기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네가 고생했겠다.”
“수사계라고 다 고생하냐. 대대 행정계에 있는 너만큼이야 했을라구.”
“글쎄…”
나는 그냥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기는 과자 부스러기를 몇 개 집어먹더니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시설대대에선 수사 결과를 놓고 말이 많겠지?”
동기의 말을 듣자 나는 잠시 이 녀석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기도 귀찮았고, 나는 내 속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너무 빨리… 쉽게 끝낸 것 같아.”
“단지 그 뿐이야?”
“그럼?”
동기가 고개를 들었다. 내 짐작과는 다르게 녀석은 엉뚱하게 비웃는 듯한 미소를 물고 있었다.
“시설대대 사람들 모두가 조 이병이 범인이라고 믿고 있단 말이지?”
나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내가 들고 있던 우유 팩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하지만 동기는 우유 팩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내 눈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동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조 세원이 범인이 아니란 말야?”
내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잦아들고 있었다. 동기의 비웃음 같은 미소는 아직 입가에 서려 있었다.
“아니.”
“그럼, 뭐야?”
나는 약간의 실망감마저 느끼면서 상반신을 동기 쪽으로 바짝 밀어붙였다. 동기는 천천히 미소를 거두어 들였다.
“이 사건은 미제로 남겨 뒀어야 돼.”
“미제로?”
“미해결로 남겨 뒀어야 한다는 말이지. 조 이병이 범인이라는 것은… 상황 증거밖에 없어. 물증이 전혀 없단 말야.”
법대를 다니다 와서 그런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동기는 뱉어 내고 있었다. 나는 B.X 안을 쓱 둘러보고 다시 동기에게 시선을 주었다. 동기는 그새 과자 부스러기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내가 보채듯 말하자 동기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섰다.
“왜?”
“여기선 곤란해.”
동기가 짧게 끊어 말했고, 나도 그 점에 충분히 동감했다. 우리는 B.X를 나와서 B.X 맞은 편의 나무 벤치에 앉았다.
“그래. 얘기해 봐.”
내가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또 재촉했다. 동기는 누구 애간장을 태우려는지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사실 동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수사 도중 이런저런 미흡한 부분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서가 없다거나, 흉기가 없다거나 하는 문제들 말이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했던(하긴 영내병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계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뭔가 다른 말이 나올 것을 그때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너도 행정계에 있으니까 대충은 짐작은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만…”
동기가 미끼처럼 던진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 이병을 범인으로 볼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자살이야. 조 이병이 자살을 했다는 점은 100% 확실해. 조 이병이 직접 파이프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려 자살한 흔적 – 지문과 발자국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직감처 안에 조 이병밖에 없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도 조 이병을 범인으로 몰고 있지.”
“그렇지.”
너무 아무 말도 안하면 흥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동기는 담배 연기를 한껏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하지만 조 이병이 장 병장을 때려죽였다는 물증은… 하나도 없어. 정말 신기하지. 흉기도 발견하지 못했어. 보고서에는 창문 받침대로 쓰이던 각목이 흉기로 보고되었지만, 그 각목은 군의관이 흉기로 사용되기에는 가볍다고 분명히 말했어. 우리는 그 말을 무시했고. 그리고 각목에 핏자국이나 조 이병의 지문은 전혀 묻어 있지 않았지. 씻어 버렸다고 하지만, 너무 잘 씻었어. 아무리 씻었다고 그렇게 아예 묻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씻었다면 원래 묻어있었을 먼지들도 역시 씻겨졌어야 하는데…”
동기의 마지막 말은 커다란 망치가 되어 나의 뒤통수를 쾅쾅 두들기고 있었다.

“흉기만이 아니지……?”
내가 겨우 한 마디 했다.
“역시 너도 알고 있구나. 두번째는 동기가 부족하다는 거야. 조 이병의 부검 결과는 전혀 가혹행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어. 그런데, 차라리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장 병장이 조 이병을 때렸고 그래서 장 병장을 죽였다고 아주 깔끔하게 논리가 성립되지.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그럼 뭐야? 조 이병이 장 병장을 그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바로 그날 근무지가 바뀌어서 처음 본 사람이야. 따로 원한관계가 맺힐 사이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죽였을까? 보고서에는 평소 군대에 염증을 느껴온 조 이병이 순간적인 정신착란으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고 되어 있어. 조 이병이 군대에 염증을 느껴 왔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있을 때 정신착란을 일으켰다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어. 부모님들 주장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까지 말썽 한 번 일으킨 적 없다더군. 뭐, 부모님들이야 의례 그렇게 말하기 마련이라지만 참고할 만한 말이지. 게다가 살인 현장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을 일으킨 사람이 저지른 일로 보기가 어려워… 다분히 계획적이란 말야. 흉기를 – 각목이 아니라고 단정한다면 말이야 – 없애 버린 것도 그렇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면 흉기를 들고 문을 소리나지 않게 비틀어 열고 나서 조심조심 다가가 이마를 내리찍는 방법으로는 살인이 이뤄지지 않겠지. 분명히 장 병장이 처음 가격을 받았을 때는 침구에 누워 있었다고.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조 이병이 군대에 염증을 느껴 왔다는 그 근거가 된 편지 말야. 우리도 신병 때 편지에 그런 말 한두 마디 써 본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아? 군대가 영 맞질 않는다. 못 견디겠다. 죽고 싶다…. 부모님들한테야 걱정을 끼쳐 드리게 되니까 그런 말은 되도록 안 쓰지만, 친구들한테야 허물이 없으니까 그렇게 쓰곤 하지. 혹 ‘누굴 죽이고 싶다’라고 썼다면 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죽고 싶다’라고만 쓰여 있다면…….”
동기가 말하는 사이에 반쯤이나 타 들어간 담배의 재를 털어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동기도 더 말을 잇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동기가 담배를 몇 모금 빨고 나더니, 의외로 말을 계속했다.

“세번째는 말야……, 사건 현장에 조 이병하고 장 병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그 상황증거가 잘못 됐을 수도 있다는 점이야.”
갑자기 동기가 뿜어낸 담배 연기의 냄새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했다. 숨이 콱 막히면서 나는 밭은 기침을 두세 차례 토해 냈다. 내 기침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동기는 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어. 그렇지만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가 없단 말야. 취침시간 이후에 부대 안을 배회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순찰을 밤새 내내 도는 것도 아니고, 초소에 초병이 지키고 있다지만 외곽도로로만 가지 않으면 초병한테 걸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어. 비행대대 보일러실이 제한구역이긴 하지만, 제한구역 근무자들은 얼마든지 출입할 수 있어. 조 이병밖에 죽일 사람이 없다는 그 결정적인 상황증거란 것은 말야…, 절대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단 말야.”
동기가 담배를 벤치에 비벼 꺼 버렸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고,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동기도 이제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유서는 어때?”
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뭔가 할 말이 있겠지?”
“유서…. 글쎄.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딱부러지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조 이병이 자살을 하긴 했지만 말야, 스스로 장 병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조 이병이 장 병장을 죽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조 이병이 장 병장을 죽이긴 했지만 조 이병은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지. 두번째 경우는 좀 설명이 복잡해.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장 병장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살인을 한 것은 자신이 책임을 질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하는 거야?”
“그것은 알 수 없지.”
동기가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불끈 화가 치밀었다. 그것은 동기를 향한 것도, 다른 어떤 특정한 사람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또 살인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면 자살을 하지 말았어야지!”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가 높아졌고, 동기가 갑자기 허리를 쭉 펴면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다행히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동기가 다시 허리를 숙이고 목소리를 아까보다 더 낮게 깔았다.
“조 이병의 당시 심정을 내가 무슨 초능력자라고 다 알고 있을 수야 없지만,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은 틀림없어. 장 병장의 사망시간과 2시간 가까운 차이가 나는 것이 그 증거지. 조 이병이 자살을 하면서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마치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릴 것을 짐작했던 것 같아. 조 이병의 자살은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세울 것이 뻔한 ‘거대한 힘’에 대한 굴복이겠지만, 유서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작은 저항을 한 셈이지.”
“그렇다고 해도 유서를 남겨서 거기에다 최소한의 자기 변론을 쓸 수는 있었을 거 아냐. 내가 안 죽였다거나, 죽였다면 죽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거나.”
“살인범의 자기변명으로 치부될 게 뻔한데,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거야.”
다시 긴 침묵이 시작되었다. 동기가 말한 많은 이야기들은 내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의문이 불쑥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한 마디만 더 해주라.”
긴 침묵을 깨고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 말을 굳이 나한테 해주는 이유가 알고 싶은데.”
“참을 수가 없어서.”
또 뜸을 좀 들일 줄 알았더니, 의외로 동기는 바로 대꾸했다.
“꼭 네가 아니었더라도 상관없었어. 네가 시설대대원이고, 나하고 친한 사이니까 너한테 얘기한 거야. 그리고 얘기하다 보니 맘도 통했고. 하지만, 이 말을 들었다고 네가 어떤 책임감을 느끼거나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아무에게나 얘길 하고 싶었어. 나는 법대생이고, 제대하면 법 공부를 계속해서 내 꿈인 검사가 되려는 사람이야. 검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불충분한 증거로 때려 맞추듯이 완결되는 사건을 보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군인이고, 그 점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항의하거나 반발할 입장이 아니거든. 내가 용기를 내서 수사에 대해
건의나 항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항의나 건의가 받아들여지기엔 군대에서 상병이란 존재는 아주 미약해. 그래서, 이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 얘기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좀 풀리지 않을까 했던 거야. 그런데 너한테 얘기하고 나서도 그렇게 가벼워진 것 같지는 않아.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동기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같은 비웃음이 아니라 씁쓸함이 묻어 나고 있었다.
“가 볼께.”
“그래…. 또 보자.”
동기는 터벅터벅 헌병대 쪽으로 걸어가 버렸고, 나는 잠시 벤치에 머물러 있었다. 동기가 나한테 해준 이야기를 한참을 곱씹고 또 씹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끝나는 나팔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허둥지둥 사무실을 향해 뛰어내려갔다.

그날 밤 나는 불침번 근무였다. 불침번을 서면서 책이나 읽으려고 읽던 소설책을 끼고 나왔지만, 막상 책을 펼쳐 드니 책은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기가 했던 말이 책 속의 글이 되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동기는 나보고 책임감 같은 걸 느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 말 자체가 강하게 내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동기의 말이 옳았다. 조 이병을 그렇게 살인범으로 단정짓기에 수사는 너무 허술했다. 사건이 나자마자 사람들은 – 나를 포함해서 – 바로 조 이병을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조 이병이 살인범이 되었다. 물론 실제로도 조 이병이 살인범일 수 있다. 하지만 동기가 제시한 문제점은 조 이병이 살인범의 누명을 썼다는 것이 아니었다…. 조 이병을 살인범으로 몰아세우기엔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그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결코 몇몇 윗사람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선임하사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바로 조 이병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보일러반장인 이 상사는 장 병장을 두둔했고, 선임하사는 조 이병을 깎아 내렸다. 장 병장의 평소 행실을 묻는 김 반장의 눈초리는 나에게 대단한 위압감을 주었고, 나나 심 일병이 비슷한 평가를 두 사람에게 각각 내렸는데도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반대였다. 조 이병의 몸에 가혹행위의 흔적이 없다는 부검 결과는 조 이병에게 유리한 사실이었는데도, 오히려 장 병장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백 상병이 장 병장이 꼽창이라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지만, 그 말은 공식적으로 증언이 되지 않았다. 백 상병이 나 말고는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나 말고 누군가에게 했어도 그 사람 역시 내가 침묵을 지켰던 것처럼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백 상병이 아닌 다른 어떤 보일러실 사람들도 장 병장이 꼽창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침묵을 지켰던 것처럼. 즉, 우리 모두 공범이었던 것이다. 동기가 말한 ‘거대한 적’은 바로 우리 모두를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조 이병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장 병장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결과를 향해 사건을 몰아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결론을 우리 마음 속에 심고, 정해진 결론을 향해 박수 치게 만들었을까.
우리 모두의 공통점은… 우리가 군대에 몸담고 있는 군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의 조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제 동기가 나에게 떠넘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동기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지만 이 문제가 그런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일인가. 동기가 말한 ‘거대한 힘’에 대해 한 번 맞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동기도 ‘거대한 힘’에 맞서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겨우 나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훌훌 털어 버리려고 했는데 내가 무슨 용뿔이라고 ‘거대한 힘’에 맞선단 말인가. 나나 동기나 기껏해야 유서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 ‘작은 저항’을 한 조 이병만큼도 용기가 없는 것 아닌가.
불침번 근무시간이 다 되고 있었다. 나는 책을 덮어 버리고 다음 근무자인이 일병을 깨우기 위해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남은 시간 푹 자고, 내일 생각해야겠다. 내일은…, 글쎄, 평소처럼 적당히 뺀질거리고, 적당히 일하면서 때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제대하고, 제대하면…, 아마 남들처럼 돈 벌고,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