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보다 많이 들어왔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최고흥행기록이 어쩌구 저쩌구하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지금 시점에선… <친구>가 지존이겠다) 평단에서도 호평을, 관객들로부터도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어낸 작품이다. 대체적으로 이 영화는 액션영화라는 한계에서 출발한 <쉬리>보다 작품성에서 점수를 따기 좋은 환경 또한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공동경비구역 JSA>는 나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평소 흥행 대박인 영화는 절대 개봉관에서 보지 않는다는 삐뚤어진 영화관을 갖고 있는 내가 개봉 다음다음날 좀 허름하긴 하나마 개봉관을 직접 찾아가 보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비싼 돈 써가며 (6천원이 어디냐…) 이 영화를 본 소감은, 유감스럽게도 좋은 얘기만 못해주겠다는 거였다. “너라는 인간이 워낙 그렇잖아. 어디 영화보고 좋은 소리 한 적 있어?” 라고 받아넘기면 상관없지만서도.
씹어보자. 이 영화의 전개는 처음 사건 발생, 수사관의 도착, 사건 수사, 사건 회상, 다시 사건 수사, 사건 해결(?)의 순서를 밟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나 짐작하듯 스릴러영화의 전형적인 편집방법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중 자막을 통해 이 영화가 세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있음을 관객은 알 수 있는데, 그 장의 제목은 각각 Area, Security, Joint 였다. 즉 영화의 제목인 Joint Security Area의 순서를 뒤집어서 배치한 것이다. 결국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는 시간 진행임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공동경비구역>은 스릴러물이냐? 어림없음이다.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본인이 스릴러물의 전형적인 편집을 보고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던 것은 그 영화가 스릴러물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수사관인 소피 장이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범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가 죽였는가?”는 소피 장의 관심사 밖이었고, 소피 장이 이병헌, 송강호와 대질심문까지 하면서 알아내고자 했던 것은 “왜 죽여야만 했는가?”라는 사실이었다. 그 뒤에 분단조국의 현실이라는 비장함까지 풀어내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남북한 4명의 병사들 사이에 흘렀던 우정이 덧칠되면, 이 영화는 영락없는 휴먼드라마의 냄새를 풍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인 남북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으니. (그 덕분에 때마침 개최된 남북정상회담과도 맞물리면서 분위기에 편승해 흥행에도 대박을 터뜨렸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래서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그곳에서 총성이 울려야만 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공동경비구역>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놓았단 말인가. 그것도 초반에는 스릴러물의 전형적인 냄새까지 풍겨가면서 말이다. (같은 현장에 있었음에도 남북간의 엇갈리는 증언, 진실에 접근해가는 수사관에 대한 이유모를 압박 등)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를 세개의 장으로 나눔으로써 스릴러물에 대한 기대감을 전반부로 압박해버리고,(사건의 발생과 결론을 짧은 시간에 몰아버림으로써) 그 사건이 발생해야만 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과거의 사건들을 뒷부분에 몰아넣어 휴먼드라마성으로 맺음을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영화의 고질병(시각에 따라선 좋은 시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인 “장르의 대책없는 혼합”이 빛을 발한다고나 할까. 그냥 남북문제를 다룬 휴먼드라마로 만들자니 주제가 너무 무거워져서 재미가 좀 떨어질 것 같고, 스릴러물다운 냄새를 조금 씌우면 흥행에, 재미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런 발상. 한국영화가 발전하는데 이만저만한 걸림돌이 아니라고 혼자 단정하고 있는 바이다.
뭐 어쨌거나 거기까지 용서해주자. 영화는 재미가 있어야되니까 그런 냄새 피울 수 있다고 하자.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스릴러적 재미는 떨어지고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를 높인 것은 휴먼드라마적 재미였기 때문에 제작진의 그러한 시도가 비뚤어진 당구큐대처럼 어긋나버렸다고는 해도 일단 재미는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었으면 내가 뭐하러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겠는가? 이 영화는 막판에 내 뒤통수를 야멸차게 쌔려버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소피 장이 뭔가 수수께끼같은 말을 이병헌에게 던지고, 분위기 갑자기 험악해지더니 호송되던 이병헌은 헌병의 총을 뺏어 자살해버린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도대체 이게 뭔 짓이란 말인가. 이제 모든 걸 용서해주려고 마음먹은 판국에, 스릴러물적인 냄새는 전반부에 밀어놓고 후반부에 휴먼드라마로 맺으려고 했나보다고 다 양해해주려는 판국에 왜 난데없이 “누가 죽였느냐”는 문제를 영화 전반에 내세워서 그걸로 결말을 지어버리는 것이냐 말이다. 그냥 가던 데로 그렇게 맺어버리면 심심하다고 누가 그러더나. (여기서 누가…란 돈은 많고 머리는 떨어지는 영화제작자들이 되겠다) 어디서 영화는 많이 봐서 그런 냄새 막 풍겨가며 사람이 죽으면 관객들이 어머 재밌다 이럴 줄 알았더나. 편집으로 사람 짜증나게 하더니 결말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소리를 기어코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더나. 장점도 많은 영화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이렇게 내 눈에 시퍼렇게 드러나니 본인은 때려죽여도 좋은 소리 못해주겠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워낙이 스릴러물이다. 작가 자신은 남북문제를 다뤄서 뭔가 있어보이는 냄새를 피우려고 애썼지만 기본적으로 스릴러물이다. “그래서 누가 죽였는데?”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영화는 “그럼 왜 총성이 울렸을까?”에 집착하여 이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는데 성공했으나 스릴러적인 냄새를 개칠하는 바람에 사람 짜증나게 했다. 소설이나 영화나 요즘 우리나라에서 좀 제대로 된 작가를 찾아보기가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되겠나 이거?